[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샬롬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1-08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목표
우주에서 가장 매정한 괴물은 시간(時間)이다. 우리는 시간을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다. 시간은 우주가 탄생됐다는 138억년 전 빅뱅의 순간부터 1초도 쉬지 않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을 조용히 소멸시켰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도, 지구가 일원으로 있는 태양계도 시간에 의해 소멸돼 언젠가 멈춰 사라질 것이다.

만물은 서서히 매순간 죽어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이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영원할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먼지처럼 사라지는 운명을 알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시인은 인간을 ‘먼지’, 즉 ‘아담’이라고 불렀다. 이 깨달음은 인류에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기술인 예술을 통해 문명을 선물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정교한 장례문화를 통해 다른 동물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인원들과 스스로를 구분했다.
 
2018년도 2017년처럼 순식간에 흘러갈 것이다. 2019년 초에 2018년을 바라보면서 똑같은 후회를 반복할 것이 십중팔구 분명하다. 나는 2018년을 작년과는 다른 혁신적인 해로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새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로마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평정심에 관하여’ 12절5장에서 목표설정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모든 당신의 노력을 한 곳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항상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곁에 두십시오.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사람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 사건들에 대한 망상입니다.”

목표 설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수련만이 변화무쌍한 환경의 변화와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무기다. 목표설정이 나를 자동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 그 목표를 완수할 수 없다. 스토아철학자들은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상태를 고대 그리스어 ‘오이에시스’(oiesis)란 단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이 단어는 흔히 ‘거짓 개념’ 혹은 ‘망상’으로 번역된다. 오이에시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기획과 계획이 없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혼란에 빠져 주변의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기능장애 상태다.
 
진부와 참신
목표 지점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행위는 현재의 나를 버리는 용기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은 산 아래와 중턱을 과감하게 벗어나 희생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나를 위한 최선은 내가 극복해야 할 ‘현재’라는 현상유지를 버림으로 등장한다. 깨달음은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를 탐닉하는 욕망의 파괴를 통해 생겨난다.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서야 봄이 찾아오듯이 내 나뭇가지에 달린 거추장스런 잎들을 모두 제거해야만 새봄은 바로 그 자리에 새싹을 선물할 것이다.
 
겨울은 봄을 준비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는 행위를 ‘혁신’(革新)이라고 부른다. 짐승의 날가죽은 털과 기름을 제거하고, 특수한 화학처리를 거치는 무두질을 통해 가죽이 된다. 이 가죽은 유연하고 영구적이다. 혁신은 애벌레가 오랜 기간의 고치생활을 통해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과정이다. 자신을 보호해준 고치에 집착하고 안주하는 행태를 ‘진부’(陳腐)라고 부른다. 가난한 시절에는 고기 한 점을 먹을 수가 없었다.

관련기사
어떤 양반이 자신이 고기가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그 고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했다. 이런 전시행위가 그에게 권위와 명성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고기 한 점 혹은 고기 국물을 얻기 위해 그 양반에게 아첨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고기는 점점 썩기 시작했다. 그 부패속도는 감지되지 않았다. 양반은 서서히 진행되는 고기의 부패를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썩은 고기 냄새가 자신의 몸에 배기 시작한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초라한 고기 한 점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에게 습관적으로 모여들고, 양반도 이런 명성이 영원할 줄 착각하고 현재의 자신에 안주한다. ‘진부한 사람’은 과거에 자신이 가진 고기 한 점이 부패하여, 자신의 몸에서 썩은 고기 냄새가 나는 줄 모르는 사람이다.
 
‘참신’(斬新)한 사람은 자신에게 매정하고 단호하다. 자신에게 위대하고 감동적인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정신을 ‘능지처참’(陵遲處斬)하는 사람이다. 능지처참은 고대사회에서 극악무도한 범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는 극형이다. 사지를 말이나 소에 묶어 몸을 분해하는 형벌이다. 참신한 사람은 과거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과감하게 유기하는 사람이다. 참신한 사람은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고유한 임무를 아는 유유자적하며 행복한 사람이다.
 

3세기 로마시대 세네카와 소크라테스가 등을 맞댄 흉상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평안
무엇이 나를 참신하게 만드는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항상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광고들에 무방비로 노출돼, 그 광고가 말하는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자본주의는 ‘행복’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들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온다고 설교한다. 이 물건의 소유가 ‘행복’을 쟁취하는 지름길이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1748~1832)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공리주의를 주창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행복’에 관한 담론을 왜곡했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불행’이고 ‘쾌락’을 증진시켜주는 것은 ‘행복’이다. 이 원칙으로 사회를 재단했다.
 
‘행복’은 사실, 요행이며 개인이 자신과 주변을 대하는 마음의 상태이지 외부와는 상관없다. ‘행복’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해피니스’(happiness)는 ‘우연’이란 영어 단어 ‘해프닝’(happening)과 어근이 같다. 이 단어들의 기본의미는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는 어떤 것들'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공화정을 유지하려다 ‘삼두정치’를 주장하는 카이사르에 쫓겨나 결국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로마 광장에 진열된 비극의 주인공이 있다. 스토아 철학자 키케로다. 그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뒤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행운(의 여신)은 장님입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일들에 일일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충고다.
 
로마 시대 스토아철학자이며 네로황제의 과외 선생이었던 세네카도 인간의 육체적인 쾌락에 비관적이다. 그는 인간을 오감을 자극하는 오관을 통해 다양한 것들을 통과시키는 ‘여과기’(濾過器)로 정의한다. “당신은 포도주와 술이 어떤 맛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백 병 혹은 수천 병 당신의 뱃속에 들어가면 모두 같습니다. 당신은 여과기일 뿐입니다.” 세네카의 이 표현은 충격적이다. 사치를 추구하여 행복을 경험하려는 인간의 허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네카는 권력, 부, 명성을 모두 거머쥔 로마의 가장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상한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와인을 마셨는지, 얼마나 많은 학식을 연마했는지, 얼마나 훌륭한 골동품을 소유했는지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세네카는 이러한 소중한 것들을 모으는 여과기가 된 자신을 한탄한다.

‘행복’은 자신에 대한 몰입에서 출발한다. 자신에게 몰입하면 그 안에서 자신에게 감동적인 어떤 존재가 등장한다. 그 존재를 우리는 ‘천재’(天才)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유일한 천재성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최선의 노력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아들 니코마코스를 위해 저술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유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그리스 단어를 이용해 표현한다. ‘유다이모니아’라는 단어가 흔히 ‘행복’이라고 오역·상용돼 왔다. ‘유다이모니아’는 위에서 정의한 대로, 자신에게 숭고하고 감동적인 승화한 자신인 ‘천재성’(다이모니아)를 최선을 다해(유) 매일매일 실천하는 삶이다. 자신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매순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수련하는 사람은 평안하다.

샬롬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면 히브리어로 ‘샬롬’이라 인사하고, 아랍 사람들은 아랍어로 ‘(마아)살라마’라고 인사한다. 히브리어 ‘샬롬’과 아랍어 ‘살라마’는 아주 오래된 셈족어 어근 ‘샬람’(shalam)에서 유래했다. 샬람이란 단어는 기원전 20세기경 고대 바빌로니아 경제문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샬람은 ‘채무관계가 없는 재정적으로 자유롭게 독립적인 상태’다. 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반드시 행해야 할 임무, 즉 자신의 삶에서 완수해야 할 ‘빚’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 빚을 완벽하게 갚은 상태다.

이스라엘인들의 인사 “살롬”은 “당신은 당신이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임무를 알고 있고, 그것을 행하고 있습니까?”라는 뜻이다. 코란에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신이 인간에게 "마아 살라마"라고 인사한다. 이 인사는 “당신은 인생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완수하였습니까?”라는 말이다.

2018년 내가 완수해야 할 나의 고유임무는 무엇인가? 나는 항상 평안할 수 있을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