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유자柚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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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7-1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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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결정적 순간
하루는 사진 한 장이다. 나는 이 하루를 내 삶의 결정적 순간으로 만들 것이다.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라이카 사진기로 일상을 포착한다. 그는 자신의 조그맣지만 세상을 보는 도구인 라이카를 들고, 그 렌즈를 자신의 오른쪽 눈에 가만히 정렬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찍으려는 대상을 한참 응시한다. 그의 눈, 마음 그리고 머리가 일치하는 신비한 지점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 대상이 보통사람의 눈에는 별 것 아니지만, 브레송의 눈에는 특별하고 간절하다.

그가 사진 한 장에 담고 싶은 장면은 ‘그저 또 한 순간’이 아니라 ‘결정적 순간’이다. 그는 그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영겁의 힘으로 몰입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 검지를 통해 무아 상태에서 셔터를 누른다. 그는 일상 속에서 흘러가버리는 순간들을 삶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결정적 시간으로 만드는 예술가다. 그의 몰입과 통찰은 사진 한 장을 통해 가감 없이 표현된다.
 
언행일치(言行一致)
인류는 하루하루를 결정적 순간으로 만들고, 자신의 고귀한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긴 몇몇 성인들을 통해 진보했다. 이들은 인간 삶의 문법(文法)을 제시한 자들이다. 언어를 언어답게 만드는 힘은 어휘의 무차별적 배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법이다. 이 문법으로 셰익스피어와 단테, 그리고 괴테가 탄생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질문의 힘’을 깨닫고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는 주장으로 당시 지식인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이 인간 삶의 소중한 씨앗이 된다고 생각했고, 사형선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붓다는 인간 내면으로 깊이 내려가 불행의 원인인 욕심을 찾아내고 북적이는 시장으로 내려가 인간 안에 숨어있는 위대한 자신을 발견하라고 가르쳤다. 붓다는 참선을 통해 해탈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탐닉한 것이 아니라, 인간 군상들과 함께 먼지가 나고 고통이 가득한 세계 안에서 발이 붓도록 돌아다녔다. 예수는 ‘인간은 신이다’는 간단명료한 주장으로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의 손과 발에 남겨진 못자국은 그가 보여준 언행일치의 삶의 기호다.
 
성인들은 언행일치의 화신(化身)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한 자들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신화인 '에누마엘리쉬'에는 언행일치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에누마엘리쉬는 기원전 17세기 경 쐐기문자로 기록된 우주창조 이야기다. 혼돈과 바다의 여신인 티아맛(Tiamat)은 다른 신들이 시끄러워 홍수로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신들은 가공할 만한 능력을 지닌 티아맛을 대적할 수 없다. 그러자 마르둑(Marduk)이라는 젊은 신이 등장해 티아맛에 대적하겠다고 선언한다. 다른 신들은 이 젊은 신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어 그를 시험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마르둑에게 주문한다. “하늘의 별들을 ‘너의 말’로 자신들의 자리에서 이탈하게 만들어 우주에 흩어지게 하고, 다시 ‘너의 말’로 그 별들을 원래 자리로 정렬시켜라.” 마르둑이 별들에게 “흩어져라”고 말하니 별들이 흩어졌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하니 별들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신들은 마르둑의 ‘말의 힘’을 보고 그를 혼돈의 여신인 티아맛에 맞설 질서의 신으로 모신다.
 
‘말’은 ‘행동’으로 옮겨질 때 완성된다. 그러나 ‘말’이 말에 그쳐 행동으로 구체화하지 못하면 ‘거짓’이 된다. 고대 히브리어로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가 있다. ‘아마르’(amar)다. 아마르라는 동사의 원래 의미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다'는 의미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위증이 가장 중한 범죄 중의 하나인 이유다. 수련은 자신의 고귀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노력이다.
 

마르크 샤갈, '레몬을 가진 랍비'(1914). 독일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전시관 소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마르크 샤걀의 그림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마르크 샤갈(1887~1985)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상적인 인간을 '레몬을 가진 랍비'라는 유화로 표현했다. 샤갈은 유대인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19세기 말 벨라루스 비테프스크라는 유대인 집단 거주지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독실한 유대인 부모로부터 유대신앙을 물려받았다. 그는 초기에 러시아 민속풍경과 유대교에 관한 그림들을 주로 그렸다. 그가 27살에 그린 이 그림은 ‘이상적인 인간은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기원전 6세기에 잃고 1948년 독립할 때까지 거의 2500년 동안 유럽 여러 곳에 흩어져 떠돌았다.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심지어 중국에서 유대인들만의 집단촌인 게토 안에 거주하면서 지속적인 차별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성은 그들이 반복적으로 지키는 종교의식과 절기라고 생각했다. 안식일 준수와 유대절기 준수 그리고 그들만의 음식법인 '코셔'(kosher)는 이들의 생존을 담보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가건물로 집을 지어 7일 동안 머무는 ‘장막절’을 지켰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새로운 땅에 들어갈 것을 기원한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그들은 10월 말 장막절이 되면 수카 안에서 음식을 먹고 일부 신실한 유대인들은 그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과거 이스라엘인들이 사막에서 40년간 지낸 뒤 가나안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운 것처럼, 이들도 언젠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나라를 독립할 것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이다.
 
유대인들은 장막절에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한다. ‘룰라브’(대추야자나무) ‘하닷사’(도금양나무) ‘아라바’(버드나무) 그리고 ‘에트록’(시트론)이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네 가지 인간 유형이기도 하다. 우선 룰라브는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식물이다. 이는 경전연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박식한 사람이나 선행으로 옮기지 못한 사람을 상징한다. 입으로 좋은 말을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이다. 공자도 '논어'에서 “시경 300편을 외우고도 정치를 맡아서 민심을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전문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고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인간 유형은 하닷사다. 이는 향기는 있으나 맛이 없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천성적으로 착하긴 하나 토라를 공부하지 못해 그 선행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경전을 깊이 연구하지도, 마음을 수련하지도 않아 자신의 선행을 지속적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 번 반짝하는 인간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의 인간은 아라바가 상징한다. 아라바는 맛도 없고 향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하루하루를 닥치는 대로 사는 인간이다. 그는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이 무엇인가 고민해 본 적이 없고 주위 환경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요동치는 인간이다.
 
네 번째는 에트록이다. 이 유형의 인간은 향기도 좋고 맛도 좋다. 그는 자신을 위한 최선을 찾기 위해서 항상 근신하고 토라(율법)를 연구하는 사람이며, 하루라는 결정적인 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자신이 아침에 결심한 생각을 그 날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유자(柚子)
‘유자’형 인간은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으로 생각해 자신의 삶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으로 만든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떤 사진으로 담을 것인가? 나는 오늘 내가 응시할 만한 대상을 찾았는가? 그 대상은 남들이 제시한 나와는 상관 없는 물건인가, 아니면 온전하고 온유한 나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의 것인가? 내가 그 대상을 찾았다면 나는 나의 눈과 마음, 그리고 머리를 정렬해 그 대상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인내했는가?

결정적 순간, 오늘 하루를 위한 간절하고 감동적인 사진은 나도 모르게 누른 검지의 힘이다. 나의 고귀한 생각이 오늘 하루 실천될 때 오늘은 나에게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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