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 冬夏閑談] 갑질의 먹이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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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입력 2017-11-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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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덕(德)을 닦는 데는 힘쓰지 않고 지위(地位)로 자신을 귀하게 하는 것은 자신에게 화를 끼치는 것이다.”
- 이수광(李睟光·1563~1628)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남을 업신여기고 그 반대급부(反對給付)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비열한 행위를 우리는 흔히 ‘갑질’이라 한다.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대해 비하하는 뜻으로 붙이는 접사(接辭) ‘-질’의 어감(語感)에서도 이미 느껴지듯이 참으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지위나 돈이 있는 사람 중에 갑질의 꼴불견을 보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갑(甲) 중에도 더 높은 갑에게 갑질을 당하는가 하면, 을(乙) 중에도 더 낮은 을에게 갑질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갑질의 폐단은 자연계의 먹이사슬처럼 구조적으로 서열화하고 있다.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다만 자기의 지위와 돈에 걸맞은 인격과 덕망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이고, 인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갑질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격 수양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위와 돈을 좇는 데만 골몰하라 하고, 그것이 곧 성공이라 부추기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도 그런 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개처럼 번다’는 것은 가장 밑바닥에서 세상의 온갖 갑질을 받으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富)를 축적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또한 ‘개’라는 말은 우리 어감에서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데다가, 개에게서는 인격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그렇게 돈을 벌어 ‘정승같이 쓸’ 입장이 되었을 때, 과연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개는 그간의 피해의식과 보상심리로 거들먹거리며 위세를 부리지 않을까?

그것은 지위와 부에 따른 차별이 일상화되어 ‘덕을 닦는 데는 힘쓰지 않고 지위로 자신을 귀하게 해도 자신에게 화를 끼치지 않는’ 우리 현실이 조장(助長)한 부작용일 터이다. 그 차별을 종식시켜야만 우리 사회의 건강성은 회복될 것이다.

우리 헌법 제11조 1항과 2항에서도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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