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90] 대도의 흔적은 얼마나 남았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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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11-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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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모습이 남아 있는 종루․ 고루

[사진 = 고루]

당시 대도의 건축물로서 아직까지 원형의 모습을 일부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것이 고루(鼓樓)와 종루(鐘樓)다. 큰 북과 큰 종이 있었던 고루와 종루는 사람들에게 시각을 알려주고 비상시에는 위급 상황을 알리는 경보용으로 사용됐다.
 

[사진 = 종루]

원래 종루와 고루 또는 종각과 고각은 절에서 예불 의식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지금도 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것을 국가가 오래 전부터 통치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우리나라 경우 삼국시대부터 별도의 종루와 고루를 세웠다.

▶ 대표적 조선의 종루 보신각
우리에게 남아 있는 대표적인 종루가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는 보신각이다.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차례 자리를 옮기고 새로 지어지면서 우리에게는 종각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종루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각(閣)은 주로 정자처럼 단층의 단출한 건물을 말하지만 경회루처럼 2층 이상의 비교적 규모 있는 건물은 루(樓)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종각은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4개 대문(大門)과 4개 소문(小門)을 닫는 시간을 알리고 인경人定)과 파루(罷漏)를 쳐서 통행금지의 시작과 해제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 복잡한 시장 통으로 변한 고루 주변
쿠빌라이가 설치한 대도의 종루와 고루도 앞의 것들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종루와 고루는 북해 공원과 경산 공원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궁궐 쪽에서 보면 앞쪽에 고루가 있고 고루에서 50미터 가량 뒤쪽에 종루가 서 있다.

고루는 옛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복잡하게 엉켜 있는 시장 통 거리를 뒤로 끼고 앞과 옆쪽으로는 차들이 다니는 복잡한 도로에 둘려 쌓인 곳에 서있다. 붉은 색을 띠고 있는 석조건물인 고루는 길이 50미터, 폭 34미터, 높이 30미터로 일반 건물의 4층 정도 높이가 돼 보였다.

▶ 중심가에서 북쪽 변방으로 밀려나
뒤쪽에 있는 종루는 고루 보다는 크기는 다소 작아 보였으나 건물의 모양은 훨씬 날렵해 보였다. 건물의 색깔도 검은 색으로 고루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종루는 처음 세워진 이후 한차례의 붕괴와 화재로 소실되는 과정을 거쳤으나 1745년에 다시 세워졌다.

통상 종루와 고루는 궁궐의 중심지에 설치돼 많은 사람이 종소리와 북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쿠빌라이 시대 당시에는 종루와 고루 주변은 대도의 중심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북쪽 변방으로 밀려나 서민들이 사는 복잡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명나라 들어 대도를 북쪽으로 밀어내고 자금성이 세워지면서 북경을 전체로 놓고 볼 때 이곳은 북쪽으로 치우치게 된 것이다.

▶ 남아 있는 대도 흔적-북쪽 외성
또 하나의 남아 있는 대도의 흔적은 옛 외성의 성벽이다. 남아 있는 유적은 대도성의 서북쪽의 흙담으로 서쪽 외성에 있었던 화의문 북쪽의 일부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 킬로미터 정도 길이의 성벽 터에는 밤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그 아래에 상당 부분 무너져 내린 성벽 터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폭 2-30미터 가량 되는 성벽 터를 그대로 살려둔 채 양편으로 4차선의 길이나 있어 많은 차량들이 오가고 있었다. 성벽 터의 남쪽 끝자리에는 시멘트로 벽을 쌓아 날림체로 ‘원대도성탄유지’(元大都城坦遺址)라고 기록해 놓아 원나라시대의 유적지임을 알리고 있다. 북경시가 도시를 정비하면서 상당 부분의 옛 유적지를 헐어 냈고 특히 한족이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원대의 유적을 상당수 없앴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성벽 터를 살려 놓고 양편에 길을 낸 것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 헐려나간 화의문

[사진 = 화의문 서 있던 자리]

20년 전까지 남아 있었던 유일한 외성의 성문, 화의문(和義門)은 이미 헐려 나가고 없었고 그 모습은 북경 국립박물관에 걸려 있는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화의문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대도의 11개 성문의 하나였다. 대도성은 남쪽에 3개, 동쪽과 서쪽에 각 3개, 북쪽에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이 11개의 문의 형태를 머리가 세 개에 팔이 여섯 그리고 두 개의 다리를 가진 나타태자(娜咤太子)의 모양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이는 쿠빌라이가 티베트 불교가 인정한 최초의 보살왕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손오공과 삼장법사]

나타태자는 불법(佛法)의 옹호자로서 민중의 우상이 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서유기에 등장한다. 손오공이 천축으로 여행하는 도중 요괴를 만나 싸우다 여의봉까지 잃어버리게 되자 천상계로 올라가 원시천존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때 나타나 손오공을 돕게 되는 인물이 탁탑이천왕(托塔李天王)의 아들 나타태자다.

그는 머리 3개에 팔이 여섯 달린 인물로 변신해 요괴와 싸우게 된다. 대도를 설계한 유병총이 불교와 도교와 선교 등에 능통해 나타태자의 모양을 대도성에 감춰 놓은 것을 비롯해 불교와 힌두교와 관련된 건물을 짓고 조각을 새겨 넣었다.

▶ 윤곽을 잡아본 대도

[사진 = 대도성터 주변의 현재]

11개 성문의 위치를 잡고 남아 있는 옛 흔적을 연결시켜보면 대도성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금성의 오른쪽 담 부근에서부터 시작해 북해공원과 경산 공원 사이가 옛 궁궐의 자리였고 그 뒤에 있는 종루와 고루가 대도성 전체를 놓고 볼 때 중심의 자리였다.

고루와 종루의 서쪽 편은 지금 대부분 흙으로 메워졌다. 그 곳은 적수담이란 큰 인공호수가 있는 자리였지만 지금은 몇 개의 작은 호수로만 흔적이 남아 있다. 적수담이 성 밖으로 이어지는 수로의 아래쪽에는 화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성벽 터는 바로 수로의 북쪽부분의 성벽 터였다. 그 성벽 터의 오른쪽에는 적수담과 이어지는 수로가 북경시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 이민족의 궁궐을 거부한 한족

[사진 = 자금성]

원나라가 나중에 초원으로 쫓겨 간 뒤 들어선 한족의 나라 명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던 대도를 버려두고 대도의 바로 남쪽 옆에 새로운 성인 자금성을 지었다. 명나라가 자금성을 새로 건설한 것은 다분히 이민족이 세운 궁궐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배어 있었다.
 

[사진 = 자금성 청동사자]

그래서 자금성은 호전적인 유목민 등이 북쪽에서 몰아올 수 있는 불길한 음기(陰氣)로부터 명왕조를 보호하기 위해 남향으로 지어졌다. 자금성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대도는 황폐화되기 시작했고 당시의 궁궐들도 무너져 내려 북해 주변에 있었던 황제 오르도와 황태자 오르도 등은 그 자취가 사라져 버렸다.

▶ 플러스 유산을 버린 암흑(暗黑)의 명(明)

[사진 = 자금성 우화각]

중국에서는 왕조가 바뀌면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과 근엄성을 살리기 위해 도읍지를 새로 정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궁궐을 새로 짓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명나라가 대도를 이전 정권, 그 것도 특히 이민족이 정권이 세운 도시라는 이유로 버렸다는 것은 아쉬운 처사였다. 그 것은 대도가 단순히 한 왕조를 상징하는 궁궐로서의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 세계로 나가는 기점으로 공들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했다는 점에서 볼 때 명나라가 이 플러스 유산을 활용하지 못한 것 자체가 마이너스 유산을 남긴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원의 뒤를 이은 주원장은 밝을 명(明)을 나라 이름으로 내세운 한족의 나라였지만 결과적으로 쿠빌라이가 이룩한 중원의 유산을 계승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정책을 수행해 갔기 때문에 명의 치세를 어두울 암(暗), 암흑의 치세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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