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 칼럼] 일꾼들이 일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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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본사 초빙논설위원 ·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입력 2017-11-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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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

 

[사진=조성권 초빙논설위원 ·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일꾼들이 일하게 해야 한다

5는 다른 숫자와 달리 묘하게 생겼다. 위는 각진 모습이지만, 아래는 원형인데 막히지 않고 한쪽이 터져 있다. 6으로 이어주는 숫자이지만, 꺾이며 호흡을 가다듬게 하는 매력이 있다. 공깃돌은 다섯 개다. 다섯 개는 한 눈에 들어온다. 하나씩 일일이 셀 필요가 없다. 여섯 개가 되면 달라진다. 한 개씩 헤아리거나 두 개씩 세 번에 나누어 세거나, 세 개씩 두 번 세거나 해야 한다. 장악(掌握)이란 그런 거다. 한 눈에 들어와야 한다. 주판알도 본디 5개였다. 손가락, 발가락도 5개다. 복잡한 음계를 간결하게 해준 오선지도 선이 다섯 개다. 엊그제 끝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도 5전 3선승제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5는 마의 숫자다. 손님을 5분 이상 기다리게 하면 불평이 터져 나온다. 영업하는 이들이 5분 동안 고객 설득에 실패하면 상품을 팔 수 없다고 한다. 축구도 경기 시작 후 5분 내에 주도권을 잡는 팀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5일장도 있다. CEO들은 취임 5주 안에 업무 파악을 못하거나, 5개월 이내에 조직 장악에 실패하면 임기 내내 휘둘리게 된다는 점을 금언처럼 여긴다. 회사 창립기념 5주년은 꺾어지는 해라서 10주년, 20주년에야 비할 바 못 되지만 성대하게 치른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5는 10의 가운데 균형 잡힌 모습이다. 오뚝이처럼 당당하고 완결의 느낌을 준다.

각기 다른 이전 정부에 참여했던 두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하나 같이 말했다. “정부에 참여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늘공(늘상 공무원)들이 움직여 줘야 하거든요. 어공들이 제아무리 폼 나게 해도 일꾼들이 일하지 않으면 헛수고예요. 어공들은 마음만 바빠 디테일을 놓치기 쉬워요. 정책 집행의 성패는 디테일에 있어요. 늘공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죠. 시급성 업무야 그런대로 하지만, 중요성 업무는 서랍 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더라고요. 손 안에 든 공깃돌 돌리 듯 해야 하거든요.”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어공이 목표 지향적이어서 저돌적 투사형이라면, 늘공은 과정과 수단을 따지는 명분 중시형이에요. 늘공은 체제 유지의 버팀목이지만 어공은 변화를 이끌어낼 추동력이죠.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어요. 그런 그들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일이 돌아가요.”
완력으로 늘공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오래된 폐습이다.
“어떻게 마음을 얻었느냐?”는 물음에는 웃기만 했다. 사람 사는 동네인데 늘공인들 다르랴 싶다. ‘다른 이의 말을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聽以得心)’는 게 우선이다. 어공은 선이고 늘공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을 버리는 일도 함께해야 한다. 자동차 옆자리에 앉은 이가 차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건 문제다. 듣지 않는 건 더 문제다. 운전자가 책임은 지지만 옆에 앉은 이도 절반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공은 떠나지만, 오래 남아 있어야 하는 늘공에겐 곤욕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떠난 다음 정부에서 지금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받을 것이 뻔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건 당연하다. 마음을 얻는 길은 결국 교감에 있다.

“한 5개월쯤 걸린 거 같아요. 움직이는 게 보이더군요. 늘공 설득이 안 되는데 국민들이 따르겠어요? 정부의 분위기는 공무원에게서 나옵니다. 늘공이 민심의 척도입니다. 6개월이 지나면 업적을 얘기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쫓기기 시작했죠. 5개월이 골든타임입니다. 그래서 중요해요“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이 정부가 출범한지 지난 달 10일로 5개월이 되었다. 6개월째로 접어든 지금 열정에 찬 취임사와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 국정운영 5개년계획들이 과연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5개월간 평균 지지율은 70%를 넘는다. 그 중 20%는 모두 대통령의 빼어난 ‘탈 권위’ 행보와 ‘소통력’ 때문이라고들 한다. 언제까지나 여기에 기댈 수는 없다. 취임 6개월이 넘으면, 뭔가 국민을 안심시킬 업적들이 나와 줘야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사람 중심 경제’로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정기국회에서 이 정부의 핵심 정책들에 대한 예산 책정과 입법화가 이뤄져야 한다.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으로 볼 때 정부의 핵심 정책들이 표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 전 여야 4당 대표 회동을 통해 안보에서의 초당적 협력과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는 등 협치에 시동을 걸었다. 거는 기대가 크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아울러 일꾼들이 일을 하는지 들여다 볼 일이다. 알아보는 민간요법이 있다. 업무 지시를 하고 보고하는 시간을 재는 일이다. 공감한 일꾼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한다면 24시간이면 보고를 할 것이다. 인간은 1시간에 2000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하루만이면 오만가지 아이디어를 담은 보고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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