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S 아주경제 - 아주 잘 정리된 디지털리더 경제신문

검색
5개국어 서비스
실시간속보

[인민화보]여성 당지부 서기가 이끈 산골벽촌의 ‘빈곤 탈출’

김미령 기자입력 : 2017-10-17 16:26수정 : 2017-10-17 16:26
인민화보 리줘시(李卓希) 기자=산길을 따라 빙빙 돌아 올라가니 구이저우(貴州) 고랭지인 옌보(岩博)촌이 눈 앞에 펼쳐졌다. 흰 벽에 파란 기와의 작은 집이 늘어서 있고 문 앞에는 작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집 뒤 산비탈에는 특수 양식장, 양조장, 양계장 등 마을기업이 분포돼 있고. 산 정상에는 체육관, 마을 보건소 등 공공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16년전 만 해도 300여 가구가 띄엄띄엄 살던 이 이(彜)족 거주지역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이곳은 도로, 전기, 수도가 없었고 주민들은 누추한 흙집과 초가집에서 살았다. 촌의 집체(集體)장부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심지어 몇 만위안의 부채까지 있었다. 마을 주민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800위안(약 13만원)이 채 안 됐다.
“그녀가 없었으면 옌보촌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 옌보촌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2001년 옌보촌의 첫번째 여성 지부 서기가 된 위류펀(余留芬)은 촌 당지부서기라는 중책을 맡아 옌보촌에 전례없던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 위류펀 [사진=인민화보 친빈(秦斌) 기자 ]


발전의 ‘명맥’을 통하게 하다
2001년 1월 1일, 30세 초반의 위류펀은 촌 당지부 서기를 맡게 됐다. “그때 옌보촌은 너무 가난했다. 나는 촌 지부 서기가 된 날부터 이 마을의 가난한 모습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취임 전날을 떠올리며 위류펀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옌보촌은 산이 높고 길이 험해 화물을 옮기려면 사람과 말에 의존해야 했다. 불편한 교통이 가난의 주요 원인이었다. 위류펀은 취임 첫날 촌민회의를 열어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를 건설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옌보촌 주민의 연평균 소득은 800위안이 채 안 됐고 촌 집체에도 돈이 없었다. 게다가 도로를 건설하려면 토지를 점용해야 하는데 누가 무상으로 땅을 내놓겠는가? 주민들은 이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촌 지부 서기가 되기 전 나는 작은 마트를 운영해 몇 년 동안 저축해 놓은 돈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4만 위안을 내놨다. 이 돈으로 도로 건설에 필요한 드릴과 해머 같은 자재를 샀다.” 하지만 토지 점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위류펀은 촌 간부와 날마다 각 가정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우려를 경청하고 동시에 주민을 대상으로 사상 작업을 시작했다. 마을 주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촌 간부는 자기 토지를 내놓아 도로 건설로 점용된 토지를 바꿔주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니 마을 주민들은 즉시 일을 시작했다. 도로 건설 사업팀에서 위류펀이 제일 바빠 아침에 제일 일찍 나와 제일 늦게 돌아갔다. 그녀는 자재를 기록하고 시공 진도를 체크했으며 3km 밖에 있는 향(鄉)정부에서 몇 십 근에 달하는 시공용 자재를 지고 오기도 했다. 겨울이 지나자 4km 길이의 마을 관통 도로가 마침내 완공됐다. 축하의 폭죽 소리에 따라 10여 톤의 석탄을 실은 화물차 두 대가 마을로 들어왔다! 이 일을 추억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우리는 위 서기에게 정말 감동받았다. 그때 그녀의 결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 산 속에 갇혀 살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난의 원인’을 제거하다
발전의 ‘명맥’을 뚫은 위류펀은 다시 주민들을 이끌고 ‘가난의 원인’ 제거에 나섰다. 해발고도가 높고 한랭기후라 옌보촌은 옥수수와 감자 같은 고랭지 작물만 심었다. 위류펀은 가격이 더 높은 과일이나 중의약재를 심고싶어 여러 품종을 시험 재배했지만 생존하지 못했다. 아니면 열매가 열려도 익지 않고 썩어버렸다.
재배가 실패하자 그녀는 숲으로 눈길을 돌렸다. 관리 소홀로 거의 방치된 상태의 옌보 산림농장을 양도할 생각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위류펀은 촌 간부, 주민들과 함께 촌 집체 명의로 산림농장을 ‘도로 사들이는’ 방법을 의논했다.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돈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이 그때를 회상하며 이 같이 말했다. 삶은 오리는 날 수 없지 않은가! 일 처리가 깔끔한 위류펀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11만 위안을 빌렸고 개인 명의로 6만 위안을 대출받아 17만 위안의 보증금을 마련했다.
“이익은 마을의 것이고 손해는 나 개인의 것이다.” 위류펀은 마을 주민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옌보 산림농장 경영권을 취득한 이후 마을 주민들은 위류펀을 자주 보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날마다 임업 관련 부처를 다니며 간벌허가증을 신청하고 목재 사용자와 연락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 1년 동안 옌보촌은 대출을 다 갚고 몇 십만 위안의 이익을 남겼다.

부유해지는 계획을 세우다
“산림농장은 녹색은행이다.” 종잣돈 마련 경험에서 위류펀은 이 이치를 깊이 깨달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옌보촌 산업의 방향을 ‘녹색’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채소 비닐하우스, 육우 양식장, 병아리 부화장 등을 지었다.
몇 년 동안 소규모로 진행한 결과 마을 주민과 촌 집체경제는 일정한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그러나 위류펀은 이런 느린 발전에 만족하지 않고 농민전문합작사 설립 방식으로 더 큰 발전을 모색했다.
합작사는 촌 집체가 대주주가 되고 마을 주민이 소액주주가 되는 방식이었다. 여러 차례 주민 주주 모집을 통해 기존 양식장의 기술을 개선하고 능력을 확대해 현대화된 녹각단계(綠殼蛋雞·초록색 달걀을 낳는 닭) 양식장을 건설했다. 분산된 양조공장을 통합해 옌보주업공사를 설립·등록한 결과 옌보 샤오궈주(小鍋酒)는 규모를 형성해 더 크게 발전했다. 현재 옌보촌은 외부 자금을 도입해 연 생산량 5000톤 규모의 대형 바이주(白酒) 공장을 짓고 있다.
옌보촌은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마을과 환경 정돈에도 힘썼다. 각종 지원 프로젝트와 마을 주민의 자체 투자 및 노동력 투입 등 방식으로 주택, 화장실, 축사, 정원 개조 작업을 진행했고 마을로 통하는 도로와 각 가정까지 진입하는 길을 건설했다. 또한 위험 주택과 초가집을 개선했고 이로인해 마을의 면모와 환경위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옌보촌 농민전문합작사에서 건설한 녹각단계 양식장에서 한 직원이 닭에게 모이를 주고있다. [사진=구이저우 옌보촌 제공]


훌륭한 동료들의 덕분이다
옌보촌의 빈곤 탈출 비결에 대해 위류펀은 “기층 당 건설, 빈곤 탈출 난관 극복, 집체경제에 주목한 것이 옌보촌이 가난을 탈출한 3대 비결이다. 촌 당지부의 전투력은 동료들의 단결과 실무적인 자세에서 나왔고, 촌 간부의 위엄은 공평, 공정, 공개적인 일처리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옌보촌의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나를 지지해주었고 이렇게 훌륭한 동료들이 나를 뒷받침해주었다. 이는 매우 큰 힘이다.”
촌 간부조직 건설에서 위류펀은 당위원회를 이끌고 인재강촌(人才强村)을 발전의 기초로 삼아 노력했다. 옌보촌 당위원회 산하 4개 당지부는 이론 수준과 창업 능력 향상에 주력해 마을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옌보촌은 300여 명의 전문 인력을 양성했다. 그중 57명은 농업 중급 직함을 받았고 마을의 53개 가구가 창업을 했다.
옌보촌은 촌위원회와 당위원회의 지도 하에 마을 상황에 입각해 발전에 대한 생각과 의식을 혁신했다. 동시에 시장경제 발전 대세에 순응해 기존의 마을기업 발전 모델에서 벗어나 마을 산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촌 집체에 돈이 생기자 주민들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현재 옌보촌은 집체자산 6200만 위안, 누적 집체경제 472만 위안, 마을 주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만5500위안에 달해 ‘샤오캉(小康) 마을’이 됐다.
“방법은 촌위윈회와 당위원회가 생각해낸 것이고 성과는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위류펀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하늘에 기대 살면서 발전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이마을은 상전벽해를 만들었다. 위류펀 같은 촌지부 서기와 응집력있는 당지부가 900여 명의 마을 주민을 이끌고 끝까지 맞서 싸워 녹색산업을 발전시키고 옌보촌 현실에 맞는 발전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네티즌 의견

0개의 의견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0자 / 300자
세계 중국어 매체들과 콘텐츠 제휴 중국 진출의 '지름길'

아주 글로벌

뉴스스탠드에서 아주경제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