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중국의 窓] 中 민족주의와 ‘美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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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경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국제정치학 박사)
입력 2017-09-1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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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G2로 국가위상 높아지며 중화민족주의 정서 더 강화

  • 美엔 '신형대국론'으로 압박… 사회 기저에 '美음모론' 여전

  • 비관적인 '사드' 반응 역시 뿌리깊은 대미 피해의식 기인

[서정경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국제정치학 박사)]


“중국인을 해치는 자는 아무리 멀어도 반드시 처형한다(犯我中華者,雖遠必誅).”

개봉 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현재 중국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고 있는 최신 영화 ‘잔랑(戰浪)2’의 포스터 문구다.

영화 성수기에 외산 영화 개봉을 금지하는 ‘할리우드 블랙아웃’의 덕을 봤다고는 하나, 중국 사회는 마치 타는 갈증을 해소하는 양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정서로 무장한 이 작품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 특수부대가 아프리카 반란군의 학살에 맞서 난민과 중국인들을 구해낸다는 줄거리에는 민족주의와 우월주의 정서가 가득하다. 1970년대 베트남전의 아픈 상처를 회복시키고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웠던 미국 영화 ‘람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가 예상보다 훨씬 흥행한 것은 주연배우의 화려한 액션과 실감 나는 전투장면 외에도 중국이 처해있는 시대적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정서와 애국심을 적절히 배합시킨 콘텐츠와 마케팅이 크게 성공할 만큼 중국 사회가 민족주의 정서에 목말라 있다는 뜻이다.

중국 사회의 민족주의 정서 강화 추세는 우선 중국의 ‘국력 강화’라는 물질적 조건, 그리고 그에 따른 ‘이익관의 재구성 및 확대’와 연관된다.

민족이란 ‘단순히 지역적 경계라거나 개인의 결집상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계속 확장되는 것’이라고 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시각대로 중국의 민족주의도 고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변천과정을 밟아왔다.

팽창의 유전자를 지닌 서구와 달리 중국의 민족주의는 고립주의적이라는 일부 견해에도 불구하고 시야를 과거로 넓혀보면 또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중국의 장구한 역사에서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집단은 끊임없이 자기세력의 확장을 추구해왔다. 수천 년에 걸친 각 종족과 마을 간 치열한 이합집산 및 전쟁의 역사 속에서 유교문명을 비롯한 우월한 문화와 언어를 바탕으로 한족은 끊임없이 타자를 흡수했다.

설사 이민족에 의해 정복됐을지라도 결국에는 그 이민족을 다시 우월한 중국문명권으로 재흡수함으로써 종국적으로 자신의 몸집과 세력을 불려나갔다.

그 결과, 북서쪽으로는 인종적으로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수천년간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녀온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는 동투르크 지역과 남서쪽으로는 고유문화를 이어왔던 티베트, 그리고 찬란한 칭기즈칸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몽골의 일부 등 주변지역을 하나하나 중국의 세력권으로 병합시켜왔다.

또한 이것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 오늘날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등 광범위한 역사재편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분리주의에 대해 중국 정부는 시종일관 무력을 써서라도 가로막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고 대중들도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오늘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대부흥’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소위 중화자손들의 역량 결집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는 강화된 국력에 수반되는 민족적 자부심과 자존감, 과거 서구세력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당했지만 이를 대체적으로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중국 대중들의 보편적 인식과 결합해 강렬한 민족주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는 특히 대미 인식과 밀접히 연관된다. 과거 인권, 최혜국 대우, 대만 문제 등으로 주로 미국에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던 중국이 이제는 ‘미국인권보고서’를 발행하고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계성이 노출된 국제경제질서에서 당당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게 자신의 핵심이익을 인정하라는 ‘신형대국관계론’을 갖고 압박까지 하는 국면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G2’라 불릴 정도로 강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회 기저에는 여전히 미국의 소위 ‘검은손’이 중국 자신을 방해하고 흔들어댄다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 즉 ‘미국 음모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미국의 검은손에 대한 중국 사회의 경각심은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불거졌던 것인데, 1990년대 중반에도 ‘중국위협론’ 등 다수의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 미국의 음모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이 성행했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 사회에 각종 버전의 미국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면 ‘중국 증시의 하락은 미국 월가의 금융전쟁에 따른 것이다’, ‘유전자 변인은 세계 농산물 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 회사의 검은 음모다’,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조류인플루엔자는 미국이 중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 만든 심리전이다’ 등이 있다.

이처럼 대중들의 비이성적인 인식이 중국 사회 기저에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의 위대함과 공산당의 신성한 임무를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

대중들도 아픈 상처를 딛고 이제는 자신의 조국이 국제사회에 보다 당당히 나가라고 압박한다.

이 가운데 미국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는지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중국의 비객관적이고, 과잉적으로 보이는 반응 이면에는 이러한 대미(對美) 인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동맹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비대칭동맹으로 평가받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과도 반드시 원만한 관계를 꾀해야 할 우리가 심호흡을 가다듬고 우리의 안보 틀을 세심하게 구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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