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칼럼] 착하고 순한(面薄心白)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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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논설고문
입력 2017-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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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칼럼
 

    [사진=허남진 논설고문]

착하고 순한(面薄心白) 리더십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북한의 김정은에게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낯이 두껍고 속이 시커멓다. 바로 면후심흑(面厚心黑)이다. 이를 상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얼핏 면박심백(面薄心白)으로 비친다.”
본지 ‘박종권의 주식잡기(酒食雜記)’ 코너에 실린 칼럼 ‘후흑의 시대(7일자 오피니언 페이지)’ 중 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 외교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뼈아픈 일침이다.
문 대통령은 외모부터 양처럼 착하고 순해(면박심백) 보인다. 근육질 늑대나 꾀주머니 여우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박 칼럼니스트는 문 대통령을 “염치를 알고, 의리를 지키며, 사심 없이 성실”하다고 평했다. 훌륭한 심성이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난세다. 지구촌 야만의 시대에 험악한 ‘조폭’들을 상대로 싸울 때 과연 먹혀들 심성인지. 마치 동네 깡패들에게 둘러싸인 모범생을 보는 것처럼 불안불안하다는 게 칼럼 행간의 의미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안보정책이 출범 초부터 표류하고 있다.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법’이란 정책 골간이 김정은의 묵살로 흔들린 이후 중심을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김정은은 한 발 더 나아가 미사일 도발에 이은 6차 핵실험 강행으로 막가파 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일제히 북한의 행태를 규탄하며 “제재”를 외치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북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이 이중적 태도를 견지하는 한 국제적 제재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중국은 오히려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 때리기 강도를 한층 높였다. 북한보다 한국이 더 많이 아프다.
문 정부를 보는 미국의 시선도 곱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실험 직후 자신의 트윗을 통해 “내가 말한 대로 대화 등 유화책을 쓰고 있는 한국의 대북 정책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은 하나(대화)밖에 모르고 있다”고 했다. 얼핏 조롱처럼 들린다. 일본의 한 언론은 한술 더 떴다. 아베 일본 총리와의 통화 중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집착하는 한국의 행동이 거지가 구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가 이미 “대화”를 접고 “압박과 제재”를 목청 높여 외치고 있지만, 주변국들은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왕따도 부족해 아예 돌려가며 놀리는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는 심각한 위기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속수무책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문 대통령이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를 두고도 말이 많다. 미사일 ‘화성 14형’ 발사와 핵 실험은 사실상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이란 해석과 그렇지 않다는 반론으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문제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판정했을 때 우리가 내놓을 카드가 있느냐다. “이 선을 넘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엄포 놓으며 하나씩 양보하다 끝내 완전히 털리고 마는 옛 개그가 생각난다.
어쩌다 이리 됐을까? 혹자는 정권의 이념적 편향성과 아마추어리즘을 탓하고, 혹자는 외교안보팀의 허약체질을 난맥상의 원인으로 꼽는다. 상황은 더욱 엄중해지고 있다.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 방안까지 거론되고 주변국들의 긴장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전열을 가다듬어 매섭고도 당차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외교 역량의 미숙함이 인정된다면 인재풀을 폭넓게 재가동하여 보완하는 등 총제적 재점검에 나설 때가 아닌가 싶다.
사드 배치의 경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중국의 오해를 불러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배치 반대론자들은 대부분 문 대통령 지지층으로 분류된다. 그들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느라 정책 결정시기를 놓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되풀이돼선 안 되는 뼈아픈 실책이다.
외부로부터의 도전 파고가 거셀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집안싸움이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론과 함께 예의 편가름 이념 갈등이 증폭될 조짐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국가안위를 앞에 놓고 벌이는 정치밥그릇 싸움. 노론-소론, 동인-서인으로 갈라서 벌인 당파싸움의 결과가 임진왜란 아니던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막아야 한다.
바로 여기서 대통령의 통합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대화정치와 협치를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행이 시급하다.
최근 사드 배치 강행을 강도 높게 비판한 진보 매체들이 댓글부대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한 신문은 ‘X걸레’라는 심한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댓글의 주체가 보수집단이 아닌 소위 ‘문빠’라는 점이다. 촛불 정국과 대선 때 심정적 ‘동지’였던 이들이 이번엔 서로 얼굴을 붉혔다.
팬클럽인 이들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인 동시에 자신들이야말로 정의의 사도라고 자처한다.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이들의 무차별 공격은 살벌하다.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 사회 갈등의 주범으로까지 꼽힌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최근 펴낸 저서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스스로 사회정의 편에 서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광신적이 되고 집념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고 설파했다. ‘문빠’들이 참고했으면 싶다.
국민통합을 무기로 문 대통령이 겉은 양이지만 속은 호랑이 같은 알차고 무서운 외교력으로 열강의 스트롱맨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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