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송철의 국립국어원장 "원활한 사회 의사소통 위해 바른 말 사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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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입력 2017-09-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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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바른 말 사용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품격과 관련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이럴 땐 어떤 단어를 써야 하지?' '외래어 표기법이 이게 맞나?' 살다 보면 우리말인데도 알쏭달쏭해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각종 인터넷 포털 등에서 다양한 사전을 제공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역시 '표준국어대사전'이다. 

국립국어원(원장 송철의)은 이처럼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여러 사업을 수행하고자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이다. 역사적으로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운용 방안을 마련했던 집현전의 전통을 잇고자 1984년 설립한 '국어연구소'가 1991년 '국립국어연구원'으로 승격됐고, 2004년에 지금의 국립국어원으로 명칭이 변경돼 오늘에 이른다. 

의외로 많은 국민들이 모르고 있지만, 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처럼 사전(辭典)만 다루지 않는다. 이곳은 어문 규정, 외래어 표기 용례 등 국어 정보 통합 검색 시스템을 운영하고, 국어 정책의 기초 국어 실태 조사·연구를 통해 지식 정보화 시대를 대비한다. 공공기관, 방송 등에서 쓰는 언어의 품격 향상, 언어 소외 계층을 위한 언어 복지 강화도 국립국어원의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송철의 원장(65)은 지난 2015년 국립국어원 제10대 원장에 취임했다. 개화산을 건너편에, 한강 하류를 뒤편에 둔 한갓진 국립국어원에서 그를 만났다.

◆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 가꾸기', 국립국어원의 사명

송 원장은 국립국어원이 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기관임에도 아직 그 존재나 역할 등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있다는 이야기에 "기관 자체나 기관의 사업들이 널리 홍보가 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면서도 "우리말을 바르고 아름답게 가꾸는 곳으로서 그 중요성과 가치를 꼭 알았으면 한다"고 입을 뗐다. 

송 원장은 "국립국어원의 핵심 기능을 두 가지로 간추려 말한다면 첫째, 국어 발전과 국민들의 국어 생활 향상을 위해 정책 사업을 수립·실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달리 말해, 어문 규범을 정비하고 국어사전 편찬, 국어문화학교를 통한 교육 등을 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언어, 즉 신문·방송 언어나 행정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감수하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최근 국민대, 인하대 등이 국립국어원이 처음 시행하는 사업인 '한국어 예비교원 국외 파견실습 지원 사업'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이 사업은 국외 현장 실습을 통해 한국어 교원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고 지원자들에게 교육 경력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국내에서 2주간 사전 교육을 받고 올해 말까지 국외 한국어교육기관에 파견된다. 올해 60여 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해외 한국어교육 현장을 지원하는 등 좋은 취지가 돋보이지만, 혹시 다른 기관의 사업과 겹칠 우려는 없을까. 송 원장은 "세종학당재단, 재외동포재단 등의 사업은 한국어 교원을 파견하는 것이고, 우리는 '예비' 한국어 교원들에게 현장 실습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관리하는 국립국어원이 앞으로 이 자격증을 획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습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 외에도 '우리말샘', '한국어기초사전' 등의 사전을 모두 웹사전으로 제공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와 방언, 북한어, 옛말 등 우리말을 망라해 약 51만 단어 규모로 구축돼 있고, 올바른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알려주는 '국민 사전'같은 존재다. 송 원장은 "표준국어대사전은 말 그대로 '표준'을 지향하기 때문에, 교육 현장과 방송 등에서 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주로 표준어 위주로 올라가고, 표준어가 아닌 다른 단어들은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말들을 두루 담기 위해서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우리말샘은 위키피디아 방식을 원용한 국민 참여형 사전으로, 사전에 없는 단어(미등재어) 추가, 뜻풀이 수정 등을 할 수 있다. 송 원장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우리말샘에 참여하면 국립국어원은 그때그때 이를 반영한다. 한 마디로 '국립국어원과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말샘에는 일상어는 물론이고 각 지역 방언과 전문용어 등이 많이 담겨 있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우리말샘에 모든 어휘가 실리는 것은 아니고, 지극히 부정적인 단어나 특정 개인·기관 등을 비방하는 어휘는 걸러낸다.

5만여 어휘가 실려 있는 한국어기초사전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목적으로 편찬된 사전으로서, 뜻풀이를 쉽게 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사전은 10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송철의 국립국어원장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 "국어 거대자료 구축…우리말을 품격 있는 언어로 만들어"

지난 4월 어느 대통령 후보가 자신보다 한 살 많은 다른 후보에게 "버릇없다"고 말한 것이 국어 용법상 적절치 않았다고 소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문법에는 맞지만, 쓰임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송 원장은 "말이라는 건 상황에 따라 써도 되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이 있다"며 "이를 '언어예절'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수고하다'는 손아래 사람에게 쓸 수 있지만 손윗사람에겐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표준어와 외래어 표기 규범이 뭇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국어와 간극이 있다고 국어원의 '규범 의존성'을 지적한다. 이에 대해 송 원장은 "언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반면 규정은 한번 정해 놓으면 인위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그대로 있다. 그래서 현실 언어와의 간극 또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송 원장은 "국립국어원은 그런 규범을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간극을 좁히도록 해야 한다. 규범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규범엔 어긋나지만, 일상화돼 있다면 되도록 규범과 언어가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단어에만 쓸 수 있었던 '너무'가 이제는 긍정적인 말에도 쓸 수 있도록 바뀐 것과 '짜장면', '잎새'(표준어는 '잎사귀'였다)도 표준어로 등록된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송 원장은 "현실 언어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겠지만, 규범을 쉽게 바꾸게 되면 자칫 언어생활에 혼란을 줄 수 있어 표준어 규정은 다소 보수적이어야 하고 수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 원장은 국립국어원장으로서 지난 2년여간 부지런히 달려 왔지만, 아직도 그의 머릿속은 다채로운 사업 구상으로 가득하다. 그는 "우선 가까운 사업으로는 국어 거대자료(빅데이터) 구축이 중요하다"며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인데, 이 작업은 국어 연구에도 필요하고, 국어의 변천사 확인, 관련 정책수립 등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인공지능 가운데 언어기반의 인공지능을 꽃이라고 하는데, 국어 거대자료 구축은 4차 산업혁명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우리말을 품격 있는 언어로 가꾸는 것, 통일에 대비해 남북 언어를 단일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또 송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몸이 불편한 이들이 불이익을 받아 온 근본적 이유는 의사소통 장애 때문"이라며 "소외돼 왔던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등을 정비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그래서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바른말 사용은 우리 사회 전체와 관련한 문제"

'적폐 청산'이 시대의 화두가 될 만큼, 각 분야에서 반성과 대안이 쏟아지고 있다. 국어 분야에서 적폐 청산이라 할 만한 것은 무엇이 있으며,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송 원장은 "'적폐'라는 표현이 적절하진 않은데, 반드시 개선해야 할 대목은 있다"며 외래어와 외국어의 남용, 전문 분야에서의 어려운 용어 사용, 사물 존대 등을 꼽았다.

그는 "법조계 등에서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어렵다"며 "정부기관·지자체가 쓰는 구호나 노랫말 등에서도 여전히 과도한 영어가 등장하지만, 국립국어원은 이를 제지할 기능이 없어서 사회 운동, 국민 의식 개선 등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 원장은 '커피 나오셨습니다', '그 옷은 이제 품절이세요' 등의 사물 존대도 꼭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그는 "정체불명의 사물 존대에 불쾌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 심지어 기업 가맹점, 백화점 등이 만든 직원 교육 지침서에도 사물존대가 버젓이 나와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국립국어원은 이를 고쳐 나가기 위해 일반 국민, 공무원 대상의 교육 등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 세태를 반영하는 각종 신조어, 줄임말 등이 범람하고 있다. 국어학자로서 송 원장은 작금의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어느 시대에나 신조어는 많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단어가 생긴다. 줄임말도 인터넷 시대에 맞춰 빨리 쓰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며 "이런 변화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나친 줄임말이나 이상한 단어들을 과도하게 조합하는 것 등은 의사소통에 장애를 초래한다"며 "부정적인 말을 자꾸 쓰면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부정적인 생각을 품게 마련"이라고 경계했다.

"바른 말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또는 개개인의 인격과 관련한 문제"라고 강조하는 송 원장의 눈은 국립국어원이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있었다.

◇ 송철의 원장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단국대 국문과 교수(1982~1997) △서울대 국문과 교수(1997~2017)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원장(2006~2008) △국어학회 회장(2011~2012) △진단학회 회장(2012~2013) △제10대 국립국어원 원장(2015. 5. 26.~현재) △주요 저서 - '국어의 파생어형성 연구', '한국어의 형태음운론적 연구', '주시경의 언어이론과 표기법', '일제 식민지 시기의 어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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