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의 비바ROK]그래도 원칙은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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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3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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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의 비바ROK>
그래도 원칙은 지켜야

[사진=김현일]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멋대로 재단해선 안 되지만···

‘담배꽁초 커피’
쓴맛을 더하기 위해 꽁초 우려낸 물을 첨가한 커피를 가리킵니다. 이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냐며 의아해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나 엄존했던 실화입니다. 적어도 1970년대 말까지 다방이라는 커피집 상당수가 그랬습니다. 당국이 단속에 나서면서 사라졌지요. 끔찍한 소행임에도 관계자 처벌은 미미했습니다. 사실 커피만큼은 아니라도 설탕을 아끼려는 업주들의 노력도 대단했습니다. 레지라는 여종업원은 손님이 커피 잔에 설탕을 넣기 무섭게 설탕통을 낚아챘습니다. 때문에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요. 그리곤 다른 한쪽에선 여종업원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진 손님과 말싸움을 벌이는 등 소란했습니다. 이따금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는데, 몸에 손을 대서가 아니라 거기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 때문입니다. 서비스 업종의 여성이 다른 사내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넣었다고 ‘성희롱’ 운운했다간 ‘까칠한 여자’라는 소리나 뒤집어쓰던 시절의 흔한 일화입니다.
‘남녀 초등학생 혼욕(混浴)’
말 그대로 1·2·3학년 남녀 학생 수십명이 한 곳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하루 두 끼도 벅찼던 1960년대, 개인집은 물론 공공목욕탕이 없는 시골의 초등학교에선 봄·가을에 실시하는 행사였습니다. 커다란 솥에 물을 덥혀 단체 목욕을 시키는 것입니다. 때밀이는 담임선생님.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20세 전후의 남녀 선생님들은 킥킥거리는, 또는 수줍음 타는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20여일이 지났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90%에 육박하는 등 순항 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진저리를 치는 꼴보수들은 속 쓰려하지만, 다행입니다. 나라 전체가 그런대로 활력을 되찾는 게 대견스럽습니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하도 엉망이라서 후임자는 커피 잔만 들고 다녀도 점수를 따게 마련이라는 일각의 평가절하도 없지는 않으나 그렇지는 아닐 터입니다. 우려하던 북한 대처방식 등 큰 틀에서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게 주요한 이유일 겁니다. 그러나 정식 총리·장관이 없는 상황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2개월여의 정권인수 기간을 갖던 과거와 달리 곧바로 살림을 떠맡은 데 따른 게 큰 이유라지만 국회 임명동의 과정을 감안하면 훨씬 더 지체될 게 빤하므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가 제 모습을 갖추는 데 최소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 할 듯싶기 때문입니다. 당장 총리 지명자를 포함한 일부 장관 후보 등 3명이 위장전입 문제로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앞으로 임명될 장관 후보자가 어떤 반칙으로, 어찌 걸려들지, 그래서 내각 구성이 얼마나 지연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뜬금없이 ‘담배꽁초 커피’ ‘초등학생들 혼욕’ 이야기를 꺼낸 까닭도 실은 이런 탓입니다. 다들 꿰고 계신 커피와 성희롱 담론을 통하면 금방 이해해 주시리라 기대하면서···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려 들면 문제해결은 요원하다고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담배꽁초 커피’와 같은 몬도가네류의 옛일을 입에 담자면 끝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한국당 후보는 ‘돼지 발정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딱딱하기 마련인 회고록을 재미있게 구성해 보려는 욕심의 결과인 듯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정색을 하면서 난감한 처지에 몰렸던 것이죠. 예전에는 동네 개구쟁이들이 남의 집 참외나 사과, 닭이나 토끼를 훔쳐다 먹곤 했습니다. ‘서리’라고 했지요. 그런데 오늘날엔 변명할 여지없는 절도행위입니다. 가뜩이나 상대의 흠집 잡기에 혈안이 된 싸움판에선 호재일 따름일 겁니다. 경우는 다르나, 노무현 대통령이 중·고교 시절 장학금을 받은 게 구설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친일 부역자 김지태가 설립한 장학재단 돈을 받았다는 주장인데, 어린 학생의 장학금 수혜마저 시비 삼는 게 정치판이니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반칙’ 후보자들을 ‘대충 봐주자’는 요설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입니다. 입만 열면 정의를 외치면서 막상 본인은 ‘딴짓’을 자행했다면 상응하는 처분을 받아야죠. 그저 당시의 환경과 특수상황을 도외시하고 오늘의 시각, 가치관으로 마구 흔들지는 말자는 말입니다. 사안의 성격이나 반칙의 ‘질(質)’ 등도 헤아려 보자는 얘기지요. 예컨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경우 ‘통진당 기각’의견을 낸 배경과 진의를 따지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계엄 하 군판사 시절의 재판 결과를 시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문 대통령이 고위직 배제 원칙으로 제시한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위장전입, 논문표절, 탈세’는 해당 후보가 성년자로서 의지를 갖고 취한 행위니만큼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 어느 장관이 ‘그럼에도’ 꼭 있어야 한다면 청와대는 확실하게 사유를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다간 진보건, 보수건 웬만한 위치에 도달한 인물은 배겨날 재간이 없다는 탄식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원칙은 원칙이니까요.
차라리 고위직 후보자 본인이 비위내역을 사전 공개토록 해 심사하고, 특히 은폐 비위가 발각되면 경중을 따질 것 없이 인준을 거부하는 것을 제도화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이 명백함에도 어물쩍 넘기는 퇴행을 거듭함은 국민 전체의 법의식을 마비시키고 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뿐입니다. 국사를 돌보는 데 이낙연 총리 후보자만 한 인물이 없다고 확신한다면 지금의 방식은 적당치 않습니다. 국민에게 진정어린 자세로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대승적(大乘的) 차원에서~'라는 말로 야당을 회유하려는 시도는 야당은 물론 국민 전체를 욕보이는 패악입니다. 야당에게는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에서 반대해온 그간의 태도를 바꾸라는 엄포이고, 국민들은 군말 없이 따르라는 주문과 진배없으니까요.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초 인사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는 부동산투기 혐의가 알려진 박양실 보사부장관을 열흘, 그린벨트 훼손이 확인된 김상철 서울시장은 1주일 만에 갈아치웠습니다. 나중의 공과는 논외로, 신속한 결단으로 잡음을 최소화했고, 일련의 개혁시책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임기 초의 소중한 시간을 인사잡음 때문에 허비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본인의 원칙 훼손까지 더하게 된다면 겪게 될 손실은 계량조차 엄청난 게 될 겁니다.
고루하고 편협한 원칙주의와, 원칙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적당한 타협을 의미하지 않음은 당연합니다. 원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밝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말이지요. 비바 록(Viva ROK)을 외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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