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느날'이 가진 판타지, 이면에 숨은 예리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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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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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날' 스틸컷 중 미소 역의 천우희(왼쪽), 강수 역의 김남길[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아내를 사고로 잃은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 분). 그는 삶의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견디듯 살아간다. 긴 방황 끝에 회사로 복귀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미소(천우희 분)의 사건 조사를 맡게 된다.

강수는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도 없이 교통사고를 당한 미소를 의심하며 그의 주변을 캐기 시작하고, 자신이 미소라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꾸만 자신을 찾아오는 미소를 수상하게 생각한 강수는 그가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는 담담히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니 들어달라”며, 부탁해온다.

영화 ‘어느날’은 ‘여자, 정혜’, ‘멋진 하루’, ‘남과 여’를 연출한 이윤기 감독의 신작이다. 매 작품마다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온 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탁월한 연출력으로 상처받은 인물들의 면면을 포착했다.

‘어느날’이 지난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와 궤를 달리하는 것은 영화가 가진 독특한 색채와 명암 때문이다. 그는 촉촉하고 아름다운 판타지를 그려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예리하고 현실적인 아픔을 들춰낸다. 기저에 깔린 감성 역시 뭉근하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다. 이는 가장 이윤기 감독스럽고 또 이윤기 감독답지 않다.

요컨대 육체를 잃은 여자와 영혼을 잃은 남자가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판타지적이나 이들의 상처를 들추고 쑤시며 보듬는 과정은 너무도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다.

또 ‘어느날’이 흥미로운 것은 기존 한국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점이다. 속도감에 젖은 최근 영화들과는 달리 ‘어느날’은 느리고 뭉근한 진행으로 여운을 남기며, 남녀가 등장하지만 멜로 아닌 인간애·동지감에 초점을 맞춘다. 강수와 미소는 서로 같은 입장이자, 반대 선상에 서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다. 줄곧 묵직하고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김남길과 천우희는 현실에 가까운 인물들을 연기해냈다. 판타지적 상황과 인물들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배우들의 공이 크다. 4월 5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14분,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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