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참담하고 부끄럽다"…문체부, 대국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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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1-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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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 정부세종청사서 송수근 장관 권한대행 명의로 사과문 발표

  • 장관 구속되고 나서야 사과…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 마련 미흡

송수근 장관 직무대행(제1차관·왼쪽) 등 문체부 간부들이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제4공용브리핑실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숙여 절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의혹, 현직 장관 초유의 구속 사태 등 총체적 위기를 맞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뒤늦게나마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송수근 장관 권한대행(제1차관)은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유동훈 2차관, 실장급 간부 등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화예술인과 국민 여러분께 크나 큰 고통과 실망, 좌절을 안겨드렸다. 이런 행태를 미리 철저하게 파악해 진실을 국민 여러분께 밝히고, 신속한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도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송 권한대행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문체부 직원들은 특검 수사 등을 통해 구체적 경위와 과정이 소상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히며 재발 방지책 두 가지를 내놓았다.

문체부는 먼저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해 현장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한 논의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문화 옴부즈만' 기능을 부여해 문화예술 각 분야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고, 불공정 사례 등을 제보 받아 문체부가 직접 점검·시정할 방침이다. 

문체부는 또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문화예술의 표현·활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개입 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불합리하게 축소 또는 폐지가 된 지원사업을 재검토해 문제가 있는 부분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송 권한대행은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해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문화행정의 공정성, 투명성을 확립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들을 관계 부처와 협의·마련해 발표하겠다"며 "평창 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외래 관광객 유치,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에 따른 국내 문화예술 활성화 대책 등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송수근 문체부 장관 직무대행(제1차관)이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제4공용브리핑실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체부의 이같은 사과문에 대해 문화계 일각에서는 '장관이 구속되고 나서야 사과 코스프레를 한다' '실효성 있는 방안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 맹탕 사과문이다'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는 한 중진 예술인은 "그동안 예술인들의 숨통을 조일 대로 조여놓은 문체부가 장관이 물러나고 나서 '꼬리자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며 "특검의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정부 내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의 전횡과 비위를 지켜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도 즉각 성명서를 내고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무마하고 자신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한 형식적인 언론플레이와 구태를 즉각 중단하라"며 "송수근 등 문체부 내부의 블랙리스트 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송 권한대행이 사과문을 발표한 게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송 권한대행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하며 '건전콘텐츠 티에프(TF)팀' 팀장을 맡아 블랙리스트에 오른 각 실·국의 '문제 사업'을 관리하고 총괄한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5일 참고인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송 권한대행은 "보조금 등 예산 사업 관련 집행에 어려움이 있는 사업이 없는지, 주요 사업 담당 부서의 애로점은 무엇인지 등을 장관에게 보고한 적은 있다"면서도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그 관리를 총괄한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블랙리스트에는 시인 고은, 소설가 한강, 영화배우 송강호·하지원, 영화감독 박찬욱 등 문화·예술인 9473명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문체부 대국민 사과문 전문.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반성과 다짐의 말씀'

국민 여러분!
오늘 저희들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 온 여러 잘못된 문화행정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의 다짐과 대책을 말씀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를 포함한 문화체육관광부 실국장 이상 간부들은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문화예술인과 국민 여러분께 크나 큰 고통과 실망, 좌절을 안겨드렸습니다.

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할 우리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인해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하여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런 행태를 미리 철저하게 파악하여 진실을 국민 여러분께 밝히고, 신속한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앞장서야 할 실·국장들부터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현재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아직 사태의 전말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문체부 직원들은 특검 수사 등을 통하여 그 구체적 경위와 과정이 소상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앞으로 특검 수사 등을 통하여 우리 문체부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마땅히 감내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일을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본래 가치와 정신을 지키는 것을 문화행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항상 명심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더욱 소통하며,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더욱 소중히 받아들여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을 확대하겠습니다.

문화예술의 정책과 지원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문화행정의 제반제도와 운영절차를 과감히 개선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논의하고, 실행하기 위한 논의기구를 구성하겠습니다.

이 기구에는‘문화 옴부즈만’기능을 부여해 문화예술 각 분야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고, 부당한 개입이나 불공정 사례들을 제보 받아 직접 점검·시정토록 하겠습니다.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여 문화예술의 표현이나 활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 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규정의 마련도 검토하겠습니다.

부당한 축소 또는 폐지 논란이 있는 지원 사업 등은 다시 검토하여 문제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겠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문화행정의 공정성, 투명성을 확립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들을 관계 부처와 협의, 마련하여 발표하겠습니다.

우리 간부들은 지금의 사태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우리 실무직원들이 소신 있게 일하고 부당한 간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문화예술인 여러분의 비판과 꾸짖음은 달게 받겠습니다.

진행 중인 특검의 수사 및 재판, 감사원 감사 등의 절차가 종료되면 그동안 논란 경위와 과정, 구체적인 사례들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반성의 거울’로 삼겠습니다.

오로지 문화예술의 정신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체부로 거듭나고자 하는 각오와 노력을 지켜보고 격려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또한, 많은 국민들이 염려하고 계신 평창 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외래 관광객 유치 및 수용태세 점검, 강화되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문제에 따른 국내 문화예술 활성화 대책 등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월 23일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직무대행 및 실국장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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