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코리아]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박물관은 기억의 저장소…'법고창신' 정신으로 감동 창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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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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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은 사람을 기리는 곳이자 오래된 기억의 저장소"라며 "법고창신 온고지신 등의 정신을 바탕으로 영감과 감동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손님맞이가 저와 이곳의 주임무입니다. 많이, 그리고 자주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느 가게 사장의 흔한 '호객용' 말이 아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유물 보관소,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 이영훈(60) 관장의 절실한 바람이다. 지난 3월 국립중앙박물관 12대 관장으로 취임한 이 관장은 2005년 10월의 어느 날을 떠올리며 말문을 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축사를 마치고 간 뒤 박물관 일반공개를 시작했습니다. 초겨울 날씨라 제법 쌀쌀했음에도 밖에는 많은 이들이 진작 줄을 서 있었어요. 심지어 박물관 입구부터 이촌역까지 줄이 꾸불꾸불 이어져 있었지요.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고 느꼈던 순간입니다."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에 새 둥지를 튼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식 이야기다.    
   
그는 '자료 보관소'로서가 아닌 '마실 오기 좋은 곳'으로서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언급하며 "'박물관 피로'라는 말도 있듯이 관람은 사실 2~3시간이면 거의 끝난다. 그런데 여기는 국보급 문화재와 나무, 잔디, 물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있어 그런 피로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하긴 박물관이 문을 열 때 심었던 나무들이 10년 남짓 자라며 무성한 수풀을 이뤘고, 대영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처럼 빽빽한 도심에 자리잡지 않아 낙낙한 뜰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을 찾을 이유가 될 법하다. 그는 "용산에 있는 미군 부대까지 철수하고 나면 나들이 명소로 더 이름을 날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직원들 이름 하나하나 외워…"학술적 의미보다 '사람'에 주목하는 전시 구상"

이 관장은 34년간 우리나라 박물관에 몸담아오며 누구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정에 밝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막상 관장 자리에 앉으면 그에 걸맞은 어려움이 생길 터. 그는 "고향이나 친정에 돌아온 느낌"이라면서도 "한편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박물관 개관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현재는 낯선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당시엔 새 것이었지만 지금은 고칠 것도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며 "박물관 이곳저곳을 자주 돌아다녀보고, 직원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려 노력하고 있다. 이름을 모르면 동지가 아니지 않나."고 웃었다.

신임 관장으로서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정규직만 230여명인 국립중앙박물관 직원들을 어떻게 머릿속에 담을까? 그는 "재난대응 훈련, 전시 교육, 국내외 손님들 인사, 협력 등 여러 일을 신경쓰느라 바쁘지만, 팀별 회의에 참가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직원들과 종종 점심자리를 마련하는 등 차근차근 알아가고 있다"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7월 26일부터 '발굴 40주년 기념 신안해저문화재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 관장은 "조금 더 새롭고 의미있게 하려면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구상했다"며 "당시 발굴 보고서에는 도자기 500점밖에 실리지 않았다. 상품으로 실린 도자기들이다보니 같은 종류가 많았다. 실제로 신안선에서 나온 도자기들은 2만4000여 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기계로 찍어낸 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도자기를 다 보고싶어하는 전문가들이 많고, 일반인들도 '보물선'에서 어떤 것들이 나왔는지 궁금해하기 때문에 이 전시회는 적지 않은 화제를 끌 것으로 보인다. 그는 "100% 재현할 수는 없지만 전시실 전체를 신안선 내부처럼 꾸밀 생각"이라며 "무역선으로 추정되는 신안선에 타고 있던 당시 선원들의 설렘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학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40여 명의 '사람들'에 주목하자는 말이다. 

◆ "박물관 성격에 맞는다면 민간자본과의 결합도 가능"

상업적 전시, 민간 자본과의 결합 등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늘 민감한 주제인데, 이 관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성격에 맞는 전시라면 크게 구애받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상업성을 구분하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니까요. 다만 적극적인 영리 행위를 하느냐, 공공적인 것을 추구하느냐가 문제겠지요."

법인 등으로 운영되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 국립 박물관은 국가 예산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전시를 지속·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펀드레이징, 후원 등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는 "앞으로 우리도 그런 쪽(자체 자금조달)으로 갈 것"이라며 "추세가 그렇다면 우리도 대비를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외국의 후원 또는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통한 조건없는 기부 등 관람객들에게 베풀 수 있는 여지를 더 마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문체부는 내년 1월부터 서울 내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연중무휴로 운영하기로 하고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이 관장은 박물관 상시운영에 대한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구상 단계이고 내부적으로 논의중이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서 외국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관람 기회를 주자는 생각"이라며 "대영박물관,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등 국가를 대표하는 큰 규모의 박물관들도 연중무휴를 고민 중"이라고 역설했다. 인력, 예산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지만 박물관 문을 계속 열어두는 것은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청소, 촬영, 전시품 교체 등의 작업 때문에 월요일에 쉬고 있는데, 문을 열더라도 일부는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싶다"며 "빛에 민감한 미술품 등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남궁진웅 기자 timeid@]




◆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한 두 점만으로도 의미있는 전시 추진할 터"

그가 지난 2004년부터 구상했던 것 중의 하나는 '반가사유상' 전시였다. 이는 지난 12일을 마지막으로 3주간의 전시를 마친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전으로 일정 부분 실현이 됐다. 한일 두 나라가 공유한 불교 사상을 보여줬던 이 전시는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주구 사(中宮寺) 반가사유상이 최초로 한 자리에서 만나는 자리로 각계각층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우리 반가사유상은 박물관 소유이지만 일본은 사찰의 예배용 대상이자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함께 전시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회상하며, "10년 뒤, 20년 뒤 또 우리의 국보와 대동소이한 목조반가사유상이 한자리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이동'이 늘 관건이다. 유물이 손상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반가사유상 전시를 예로 들며 "대규모가 아니더라도 한두 점만으로도 의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다"며 "작지만 의미있는 전시가 내가 바라는 전시의 모습니다. 단지 한 시대·장르를 비추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넘나드는 통합적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 시나리오를 작가들이 각색 또는 번안하는 것처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교수)도 충분히 전시로 승화할 수 있다"며 기존의 성과를 전시로 만드는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산하의 13개 지방박물관을 '소속박물관'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대'의 반대말은 '지방대'가 아닙니다. 많은 대학들을 지방대로 치부하는 것은 그들에게 낙인을 찍어 생존을 방해하는 일이거든요. 전형적인 수도 중심적인 사고지요. 소속감, 연대감을 위해 '소속박물관'이라 일컬으며 '우리 식구'라고 생각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얘기 아닐까요?" 평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서비스를 강조하는 '이영훈'다운 말이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아…무언가 남기려는 노력 게을리해선 안 돼"

이 관장은 서예에 애정을 갖고 있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연필이나 볼펜, 만년필 등 현대적인 필기구를 쓰는 대신 가끔 붓을 든다. 그는 "책상에 가는 붓을 하나 갖다놓고 결재, 메모 등 틈틈이 붓글씨를 쓴다"며 "'붓은 종이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붓을 쓴다는 것 자체를 즐긴다"고 웃었다.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배우로도 활동할 만큼 공연, 예술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대뜸 최근 읽은 책인데 추천하고 싶다며 미리 준비해둔 책을 한 권 집어들었다. "직업 특성상 통독보다는 발췌독을 주로 하는 편인데,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2(책세상)는 꼼꼼히 읽었습니다. 타자의 시선으로 본 우리 모습을 조명하는 것이 의미깊더라고요." 

박물관도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과제를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는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박물관은 결국 사람을 기리는 곳"이라며 "오래된 기억의 저장소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은 '법고창신' '온고지신' 등의 말에 걸맞은 역할을 해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당장 뭔가 드러나진 않지만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가는 영감과 감동의 창출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언가 남기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남기지 않으면 배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때 세웠던 첨성대를 후손들이 없앴다면 오늘날 이를 운위할 수 있을까? 우리 세대가 1000년 뒤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작가 윌리암 포크너의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간 것조차 아니다'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석굴암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고 있는지 혹은 우리 스스로 그런 흔적들을 지우고 있지는 않은지 박물관에서 먼저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영훈 관장은? 

△1956년 서울 생 △경기고 △서울대 고고학과 △서울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1982)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청주박물관장·부여박물관장·전주박물관장(1993∼2000)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장(2000∼2003)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2003~2007) △경주박물관장(2007~2016.3) △주요 저서 '고분 미술' 1·2(공저, 솔출판사) △상훈 '홍조근정훈장'(용산 새국립중앙박물관 개관 유공,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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