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펜질팬질] 김흥동 PD의 '블랙 코미디'는 '막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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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0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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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김치'에서 화제가 된 '김치 따귀' 장면[사진=MBC 방송 화면 캡처]


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김치 따귀'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강지처인 자신의 딸을 버린 사위가 자신과 딸이 애써 일군 김치 회사의 제품에 이물질을 넣는 일을 벌였고 그를 따지려 하자 막말부터 쏟아내는데 어떤 이가 참을 수 있을까.

MBC 드라마 '모두 다 김치'(2014)에서 나은희(이효춘 분)가 전 사위 임동준(원기준 분)을 찾아가 그가 장난질을 친 김치로 따귀를 날리는 장면은 드라마를 꾸준히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무척 '시원한' 한방이었다. 하지만 사방으로 튀는 김치 양념과 김치와 목의 마찰이 만들어낸 실감나는 '철푸덕' 소리 때문일지, 아니면 김치로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그간 TV 드라마에서 없었던 이유에서일지 이 장면은 이후 두고두고 패러디되며 '막장'의 대표격으로 회자되고 있다.

'김치 따귀' 이전에 마시던 주스를 다시 그대로 뱉어내는 장면('사랑했나봐')으로 배우 박동빈을 순식간에 '주스아저씨'로 만든 김흥동 PD에게 또 다른 '주스아저씨'와 '김치 따귀'를 기대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모아진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좋은 사람'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김흥동 PD[사진=MBC 제공]


지난 4월 새 연출작 '좋은 사람'의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김흥동 PD는 이 같은 질문에 "진지한 이야기를 가지고 표현을 자극적으로 해서 관심을 끌겠다고 하는 건 연출자로서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 표현 자체를 그렇게 하진 않겠다. 그리고 그건 유행이 지난 것 같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사실 장면 하나가 두드러져 보였을 뿐이지 김흥동 PD는 늘 그랬다.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뒤에 갑자기 "어우 씨 배고프다"고 말한다거나 급전이 필요한 친구에게 "돈 꿔 줄테니 쟤랑 놀지 말라"는 유치한 조건을 거는 어이 없는 전개. 아들의 바람을 뒤에서 돕다가 괜히 며느리에게 죄책감을 느껴 입에 물고 있던 물을 며느리 얼굴에 뿜어내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이 김 PD의 지난 작품들에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역설적이고 한편 모순적인 장면들에는 인간적인 부분이 담겨 있다. 상사에게 깨진 악녀가 뒤로 돌아 씩씩거리며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을 시청자들은 바라(?)겠지만 어쩌면 그보단 상사에게 깨진 뒤 동료를 불러내 휴게실에 가 토스트를 하나 구워 먹는 것이 현실과 더 가까울지 모르니까. 우리는 의외로 부조리함을 보고도 자주 못 본 척 넘기며 치밀하게 음모를 꾸밀 만큼 머리가 좋거나 여유가 넘치지 않고, 그렇게 잘 참다가도 아주 느닷 없는 상황에 쌓인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김치 따귀'나 '주스아저씨'가 실소를 자아낼 수는 있을 지언정 개연성 없는 '막장'은 아닌 이유다.

김흥동 PD는 최근 아주경제와 만나 이 같은 '막장 논란'에 대해 "억지로 만든 장면들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기왕 찍는 거 더 실감나게 찍어 보자는 생각은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장면을 화제성을 위해 넣은 건 아니다"는 설명이다.
 

'좋은 사람'에서 영훈이 낸 사진서를 물어뜯는 경주[사진=MBC 방송 화면 캡처]


'주스아저씨'나 '김치 따귀' 장면이 이후 많은 이들 사이에서 패러디된 건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밝고 경쾌한 웃음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희극과 달리 블랙코미디는 풍자,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희화화, 패러디 등을 통해 웃음을 끌어낸다. 씁쓸함을 넘어 때로는 그 웃음이 냉소적이고 공포스럽기도 하다. 흔히 '막장'이라 불렸던 김흥동 PD의 연출 스타일은 사실 이런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장면과 장면, 상황과 상황을 연결하는 개연성이 촘촘한 가운데 삽입된 낯선 장면들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이 어떤 거친 말보다 더 예리한 독설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됐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김흥동 PD의 최신작 '좋은 사람'에서 친한 언니 윤정원(우희진 분)의 남편 이영훈(서우진 분)에게 사랑 이상의 집착을 보이는 차경주(강성미 분)는 영훈이 제출한 사표를 이로 씹고 뜯었다.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비현실적인 장면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불현듯 상기한다. 세상엔 사표를 물어뜯는 경주 이상으로 상식을 벗어난 사람과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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