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공짜 점심은 없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6-05-11 13:1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 ]


10년 전 얘기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현지 변호사가 하는 말이 “1000달러면 판결문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판사 월급이 너무 적어서, 대부분 비공식 일자리를 하나 더 갖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최후의 보루인 판사들마저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믿는다.

싱가포르도 과거에는 그랬다. 리콴유가 1959년 집권한 이후 180도 바꿔놓았다. 부패방지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전담조직을 세웠다. 부패와의 전쟁의 강도를 높여갔다. 건설부 장관이었던 자신의 친구마저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단죄했다. 부당이득은 공무원이든 민간이든 가리지 않고 엄정하게 환수했다. 공무원은 작든 크든 선물을 못 받게 했다.

이처럼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행정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 중 하나다. 외국기업들이 아시아 본부를 싱가포르에 세웠다. 경제가 좋아지자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했다. 선물이나 식사 대접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처우를 개선해줬다. 싱가포르 리센룽 총리의 2015년 연봉은 218만 달러(약 25억원)이다. 파격적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에 40만 달러(약 4.8억원)정도를 받았던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3만원법’이 논란이다. ‘김영란법’을 ‘3만원법’이라고 비아냥거린다. 3만원으로 무슨 밥을 먹겠느냐는 것이다. 5만원으로 어떻게 한우 선물을 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선물과 뇌물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선생님들에게 드렸던 촌지는 왜 금지시켰나? 작은 봉투에도 미세하게나마 흔들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었다.

그 ‘3만원법’을 한번 뒤집어보자. 3만원짜리 밥을 사고, 5만원짜리 선물을 사서 인허가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것이다. 엄정한 법의 집행을 미리 막으라는 법이다. 그만큼 위험한 독소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만원은 뇌물도 아니고, 돈도 아니라는 것이 소위 우리나라 여론 주도층의 청렴의식이다. 그분들의 얼굴의 두꺼움을 확인할 수 있다. 서민들은 3만원짜리 식사와 5만원짜리 선물도 황송하기 짝이 없다.

200년 전의 다산은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럽기 짝이 없다. 목민심서에 ‘대탐필렴’(大貪必廉)‘이라고 적어 놓으셨다. ’큰 꿈을 지닌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렴하면 승진해 재상과 정승이 될 수 있고 두루 존경을 받을 수 있으니 ’청렴이야말로 천하의 큰 장사‘인데, 그것을 모르고 ’청렴하지 못한 것은 지혜가 짧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셨다. 그러면서 중국의 고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공의휴가 노나라 재상이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물고기를 보내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재상께서 물고기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사온데, 어찌하여 보내드린 물고기를 받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공의휴가 “물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이오. 이제 재상이 되어서 스스로 물고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물고기를 받아서 도리어 면직이 되면 다시 누가 나에게 물고기를 주겠소? 그래서 내가 받지 않는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세계인들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지난 1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5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보자. 우리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전체 168개국 중 37위에 그쳤다. OECD 가입 34개국 중에서는 공동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만큼 우리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김영란 법을 두고 왈가왈부할 형편은 전혀 아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가라앉고 있다. 그러니, ‘김영란법’을 수정하자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선물 주고받기를 통해 반짝 내수를 살리는 것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부정부패를 없앨수록 소득은 더 올라가고 경제는 더 성장한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정설이다. 나라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적 자본의 질을 높이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정도다. 그 이외에 묘책이나 지름길은 없다. 공짜 점심은 세계 어디에도 없고, 동서고금에도 없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