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카페] 불가리 시계를 무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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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1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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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 옥토피니시모[사진=조성진 기자]

아주경제 조성진 기자 = 불가리는 주얼리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다. 시계 전문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으로 시계애호가들 사이에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시계 커뮤니티 모임이 있어 약속장소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평소 시계를 양쪽에 착용하는 습관으로 인해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이후 “시계 두 개를 찬 남자”로 나를 기억하곤 한다. 모임 때에도 왼쪽엔 롤렉스 요트마스터2를 오른쪽엔 불가리 디아고노 테라 크로노를 차고 갔다.

그런데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요트마스터에만 관심을 두고 “그런데 불가리를 왜 차시는데 모르겠네요”라는 표정들이었다.

시계를 선택할 때 일반적으로 인지도, 디자인, 성능(무브먼트 등)에 따라 선호도가 갈린다. 까르띠에가 높은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인지도 영향이 크다. 여기에 성능과 디자인까지 만족시킨다면 그야말로 “베리 굿”이다. 불가리의 경우 ‘시계 전문’ 브랜드보단 ‘쥬얼리 전문’이란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불가리시계 하면 인지도는 매우 높지만 시계 자체로 놓고 볼 때 애호가들로부터 지지도가 크지 않은 편이다.

이것은 ‘보석세공의 정수(The essence of a jeweller)’라는 불가리의 슬로건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불가리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분야 최고 위치에 오른 회사가 또 다른 분야로 진출할 경우 그 스페셜한 가치와 기술력도 서서히 빛을 발하는 법이다. 불가리는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시계시장에 진출했다. 롤렉스나 오메가, IWC, 태그호이어 등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시계전문 명품 브랜드에 비한다면 분명 늦은 출발이다.

그럼에도 불가리는 시계에 대한 애정이 강해 출발하기가 무섭게 기술적인 부분에 공격적인 투자를 거듭하며 자사의 시계 위상을 높여가는데 집중했다. 1998년 스포츠워치인 디아고노(Diagono)와 2005년 아씨오마(Assioma)를 출시하며 남성시계 시장에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유명 시계회사였던 제랄드 젠타와 다니엘 로스를 인수하고 이어 시계 다이얼 전문사인 카드랑 디자인(Cadrans Design), 브레이슬릿 제조사인 프레스티지 도르(Prestigi d’Or), 그리고 고급 시계케이스 전문 제작사로 유명한 핑거(Finger)와 시계 제작 전반의 기계를 생산하는 회사 레쇼(Leschot)까지 인수하면서 불가리는 시계 제작 전반에 관한 모든 기반 시설을 갖추기에 이른다.

불가리는 초반엔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ETA 무브먼트와 그보다 높은 등급의 프레드릭 피게를 자사 시계에 장착했다. 그러나 독자적인 무브먼트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면 시계전문 브랜드로서 결코 설 수 없다는 걸 알고 자사 무브먼트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4년의 투르비용 무브먼트는 불가리의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며, 이후에도 꾸준히 컴플리케이션 시계에 집착하며 자사 무브먼트의 완벽도를 더해갔다.

성능(무브먼트) 뿐 아니라 시계 디자인에서도 불가리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 시계 케이스와 인덱스는 물론 디아고노의 고가 라인의 경우 독창적인 브레이슬릿 스타일과 마감 처리로 깊은 인상을 줬다.
 

불가리 뚜르비용 크로노 라트라팡

디아고노와 함께 불가리 시계 스타일을 빛낸 명작 중 하나는 ‘옥토’ 시리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건축스케치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것으로, 숫자 8이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옥타곤, 즉 팔각 형태를 띤 디자인이 특징이다. 케이스 가공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불가리의 피니싱 기술력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

두께 2.23mm의 울트라씬 무브먼트를 탑재한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는 40mm사이즈의 플래티넘 케이스가 마치 건축공학적 풍모를 풍길 만큼 인상적이다. 7시 방향의 오프센터초침창, 65시간 파워리저브도 주목할 만하다. 이외에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 투르비용은 하이 컴플리케이션에 속하는 투르비용 메커니즘의 시계임에도 무브먼트 두께는 겨우 1.95㎜다. 복잡한 기능들이 다양하게 들어갈 경우 시계 두께도 그만큼 두꺼워지는게 상식이지만 불가리는 이처럼 오히려 최대한 얇은 공간에 많은 걸 축적하는 기술력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등장과 동시에 현존하는 가장 얇은 두께의 플라잉 투르비용 무브먼트라는 기록을 세웠다.

불가리와 다니엘 로쓰(Daniel Roth)의 콜라보레이션인 ‘불가리 뚜르비용 크로노 라트라팡’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뚜르비용+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라프가 탑재된 컴플리케이션 워치다. 케이스는 18K 로즈골드이며 한 눈에 전형적인 다니엘 로쓰 스타일이란 걸 알 수 있다. 무브는 수동 와인딩 DR 8300으로 파워리저브는 48시간이다.

불가리 제작진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대한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미 워치메이킹 수준은 그 어떤 시계전문 전통의 강호들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한 통념 즉 “불가리=쥬얼리”라는 인식(선입견) 때문에 성능과 디자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고급 워치 브랜드로서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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