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난 변호사’ 이선균, 짜증의 품격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5-10-06 16:4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남궁진웅 timeid@]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한때는 꽤 로맨틱한 남자였다. 연인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흐트러짐 없이 조곤조곤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를 두고 ‘짜증계의 스칼렛 요한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버럭 화를 내고(MBC 드라마 ‘파스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상황들에 온갖 짜증을 내는데도(영화 ‘끝까지 간다’) 사람들은 그의 ‘짜증’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의 로맨틱 가이가 언성을 높이자 도리어 사람들은 영화든, 드라마든 “믿고 보겠다”며 환호했다. 배우 이선균의 이야기다.
 

[사진=남궁진웅 timeid@]


- 영화를 3번이나 봤다고 하던데

네. 아직 객관적으로 작품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객관적으로 보려면 영화가 내려가고 코멘터리를 할 때나 가능할 것 같아요. 영화를 3번 봤는데 처음에는 그저 아쉽더라고요. 저에 대한 아쉬운 점만 보였어요. 두 번째에는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이 보였고 세 번째는 오히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에 보였던 것 같아요. 점점 고무적으로 변했죠. 허종호 감독이 원하는 대로 나온 것 같아요.

- 어떤 점이 그렇게 아쉬웠나?

제가 처음부터 끌고 가야 하니까요. ‘아, 왜 저렇게 표현했을까?’ 하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죠. 그땐 괜찮다고 OK 된 장면이지만 나중에 보니 아쉽게 느껴지는 거예요. 하지만 영화를 3번 보면서 조금 더 유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관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저희끼리는 극적인 재미나 반전 같은 부분을 다 알고 보니까 반응이 덤덤했었는데 일반 관객들과 함께 보니 반응이 크더라고요.

- 로맨틱 가이에서 지질한 남자, 그리고 짜증계의 스칼렛 요한슨이 되었다. 다음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이 있나?

생각해놓은 것은 없어요. 주어진 걸 열심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이미지들을 잡고 싶다고 유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주어진 것들을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미지들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저도 한 때 로맨틱 가이라고 불리기도 했잖아요(웃음).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는 현실적이고 지질한 면모를 보여 왔고 ‘화차’, ‘끝까지 간다’, ‘성난 변호사’의 경우에는 억울한 상황에 직면해 짜증을 많이 냈어요. 제가 맡은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다른 포지션의 영화를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럼 아마 다른 표현들이 붙겠죠.

- 그렇다면 세 가지 포지션 중, 가장 이선균에게 가까운 모습은 무엇인가?

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인데…. 짜증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 아닌가요? (웃음). 로맨틱 가이라는 말은 좋은데 그 말을 수식하는 것들이 싫어요. 예를 들어서 분홍색 폰트로 ‘로맨틱 가이’라고 쓰는 것들(웃음). 제가 분홍색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지질한 모습은 남자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다 가지고 있을걸? 짜증도 마찬가지에요. 그 상황에 닥치면 누가 짜증을 안 내겠어요.

[사진=남궁진웅 timeid@]


-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짜증 낼만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끝까지 간다’와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 그 작품은 사고를 덮으려고 자꾸만 자고를 내고 은폐하는 역할이었잖아요. 하지만 ‘성난 변호사’는 달라요. 짜증이 많은 캐릭터가 아니라 뺀질거리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전에 표현한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영화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표현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진 검사(김고은 분)과의 전사를 가지고 있어요. 변호성 역시 검사 시절에는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인물이었지만 어떤 사건에 부딪히며 한계를 느꼈고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살게 된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짜증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갔던 것 같아요.

- 하지만 제목이 ‘성난 변호사’다 보니 이선균 표 짜증 연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맞아요. 그럴 거예요. 저도 제목이 ‘성난 변호사’라서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예컨대 한강 추격신 같은 경우, 화를 내더라도 ‘조금 더 성을 내야 하나?’하고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다양한 표현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 변호사기 때문에 대사도 어려운 데다가 액션신까지 소화해야 했다. 그야말로 ‘완전체’ 캐릭터였는데?

액션이 거친 게 아니라서(웃음). 주로 맞기만 하고….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법정 장면도 마찬가지예요. 이 영화가 법정, 액션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인 작품이잖아요. 그야말로 정말 편한 오락영화에요. 그러니까 이 작품은 진지하고 무거운 톤으로 가면 안 되는 거죠. 추리도 심각하게 가기보다는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하고 톤도 다르게 잡아야 해요. 허종호 감독의 전작 ‘카운트다운’이 무겁고 침울하다 보니까 장르의 좋은 것들을 잘 배합한 거죠.

- 허종호 감독이 추격신을 좋아한다고 하시더니, 인상 깊은 추격신이 많았다

허종호 감독이 추격신에 강해요. 학창시절부터 그랬었죠. 본인도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라서 걱정이 없었어요. 많은 분이 지하철 추격신에 대해 이야기 하시는데 원래 그 장면은 대본에 없던 신이었어요. 이대 거리에서 추격하는 신이었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추격을 벌이는 것이 한강 추격신과 비슷해서 바뀌었어요.

많은 고민 끝에 지하철 신으로 바뀌었는데 허종호 감독이 제가 농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걸 써먹었죠. 드리블하듯 상대들을 따돌리는 장면을 넣은 거예요. 하지만 제가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웃음). 허 감독은 제 20대 몸을 기억하고 있으니. 왜 이렇게 느리냐고 타박 받았죠.

사실 지하철 신은 제약이 많은 장면이기도 해요. 시간도 그렇고 장소도 지하철역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시간을 맞춰서 깔끔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부분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이기도 해요.

- 추격신만큼이나 영화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감이 인상 깊은데

허 감독이 빠른 영화를 찍고 싶어 했어요. 런닝타임 2시간 안에 마치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고, 그 제약 안에서 변주해야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제 책임이 크게 느껴졌어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풍부해지고, 그렇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요.

[사진=남궁진웅 timeid@]


- 예정에 없던 지하철 신만 봐도 허종호 감독과 이선균의 친분이 느껴진다. 한예종 동기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도 잘 알았을 것 같다

감독과 배우에게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돌직구를 날릴 수 있는 사이였죠. ‘네가 왜 안 됐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어볼 정도로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오갔어요. 그렇게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을 끝마친 뒤, 서로의 이견을 좁혀나가는 작업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언성도 높이고 소주도 마시고 대학시절 이야기도 하면서(웃음). 다른 작업과는 다른 작업일 수밖에 없었죠. 감독 대 배우이자 친구 대 친구로서.

-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컸겠다. 친구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일각에서는 ‘이선균의 원맨쇼’라고 부를 정도니.

부담이라는 것은 책임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간다’ 이후 비슷한 장르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어요. 요즘 영화 시장이 그런 것 같아요. 천만 관객을 노리고 있는 멀티 캐스팅의 영화나 저 같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영화(웃음). 물론 버거운 부분이 있어요. 제가 큰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게 현재 저의 포지션이라면 감내해야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