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왕실, 일왕 히로히토 '패전 선언' 육성 원본 공개…아베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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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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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에 각각 1945년 8월 6일, 같은해 8월 9일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버섯 구름의 모습. 일왕 히로히토가 항복 선언을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일본 궁내청이 패전 70년을 맞아 일왕 히로히토(裕仁·1901∼1989)가 1945년 8월15일 라디오를 통해 태평양전쟁 항복을 선언한 육성 파일을 디지털로 복원해 1일 공개했다.

2일 AP,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옥음(玉音·일왕의 음성) 방송’으로 불리는 이 녹음물에 담긴 히로히토의 음성은 조금 더 또렷해졌으나 내용이 어렵고 모호한 어휘가 사용돼 대중이 이해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히로히토는 1945년 8월14일 자정쯤 군복을 차려입고 항복 선언문을 두 차례 녹음했다. 당시 연합군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NHK 기술자들을 궁에 몰래 불러 레코드판에 연설을 녹음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종전 반대론자들이 연설문 녹음본을 빼앗기 위해 궁으로 난입을 시도했으나 녹음본은 안전히 NHK 방송국으로 전달됐다.

이날 공개된 원본 레코드 5장에는 4분 30초 분량의 히로히토 음성이 담겼다. 이 가운데 2장을 디지털로 복원했다. 히로히토는 항복 연설에서 “‘견디기’ 어려움을 견디고 ‘참기’ 어려움을 참고 후세를 위해 평화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항복이나 패전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NHK의 뉴스 진행자로 모니터실에서 항복선언을 들었다는 곤도 도미에(92)는 AP통신 인터뷰에서 히로히토의 연설에 대해 “극도로 어려운 말이었다”며 “어떤 이들은 더 열심히 전쟁해야 한다는 말로 알아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항복 연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히로히토의 복원 음성과 함께 항복 선언 전날 히로히토와 정부 고위 인사들이 모였던 왕실 내 방공호 내부 영상과 사진도 공개됐다. 히로히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이 방공호에서 항복을 결심했다.

궁내청은 “종전 70주년을 맞아 전쟁 종식과 관련해 상징적인 주요 물품을 널리 알리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히로히토의 아들인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82)은 지난 1월 2일 신년 인사에서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하다”며 이례적으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언급하는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행보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만주사변은 일본군이 1931년 9월18일 중국 선양(瀋陽) 류티아오거우(柳條溝)의 남만주 철도를 폭파한 뒤 이를 중국 군벌 장쉐량(張學良) 군대의 소행이라고 규정하고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에 나선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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