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대륙휩쓴 월드컵, 남겨진 도박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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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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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산, 자살, 심장마비사망 등 사건사고 끊이지 않아

마카오에서 월드컵 축구 도박단이 검거되 나오고 있는 모습.[사진=신화사]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12일 베이징 모처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무더운 베이징 여름. 택시에는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마침 다음날 새벽에 있을 브라질과 네덜란드의 월드컵 3-4위전에 대한 전망을 두고 진행자들의 입담이 이어졌다. 진행자와 해설자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갔고, 택시기사는 아주 흥미롭게 경청했다. 5분여 듣고 있는데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라디오 해설자의 목소리로 들려나왔다. “네덜란드에 베팅하십시오. 2골차 이상으로 이길 겁니다.” 월드컵 경기에 대한 해설에 곁들여 애청자들에게 도박가이드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도박가이드를 해도 되는가라고 택시기사에게 물어보았다. “다 이렇게들 이야기들 한다”는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택시기사는 라디오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전에도 많이 들어봤다고 부연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처음 맞아보는 월드컵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6월13일 개막했던 월드컵은 14일 결승전과 함께 폐막한다. 월드컵은 1개월여 동안 세계를 열광케 했지만 중국팬들은 그야말로 극성적이었다. 유산, 자살, 폭행 등 월드컵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중국인데, 인민들은 왜 이렇게 월드컵에 열광적일까 싶지만, 실제 중국의 월드컵 열기 이면에는 도박이 자리잡고 있다.

◆유산, 자살, 심장마비사망

지난달 17일 충칭(重慶)에서 임신 1개월에 접어든 임산부가 나흘 연속 밤을 새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다가 끝내 아이를 유산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여성은 월드컵 개막 직후 밤마다 TV 앞에 앉아 경기를 관전했으며 지난 17일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 중 자신이 응원하던 독일팀이 골을 넣자 이에 흥분한 나머지 유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산부는 오후에는 경기재방송을 보며 각 팀의 전력을 분석했고,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판돈을 걸어놓고, 새벽에 경기를 시청했던 것이다.

개막 이틀째였던 지난달 14일에는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밤새도록 축구경기를 시청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7일에는 윈난(雲南)성에서 자신이 응원하던 포르투갈팀이 독일팀에 0-4대로 패하자 8층 호텔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에서 특히나 인기가 높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는 포르투갈에 거액을 베팅했던 것이다. 18일에는 후난(湖南)성 모 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대학생이 밤을 새워 월드컵을 시청하다가 급사했다.

지난달 24일에는 대학교 2학년생인 린모씨가 다수의 월드컵 경기에 배팅을 걸었다가 2만 위안(약 300만원) 가까이 돈을 잃고 23일 학교 건물 7층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목격자는 "그가 '이틀만 시간을 주면 돈을 갚겠다'고 누군가와 10분 이상 통화를 한 뒤 일어나더니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다. 린씨는 투신 즉시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숨을 거뒀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대학 친구는 린씨에 대해 "꽤 많은 돈을 빌렸고 이자율도 다소 높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에는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시에 사는 올해 32세 여성이 월드컵 축구도박을 하다가 10만 위안(약 1600만원)이 넘는 돈을 빚진 것을 비관해 자살했다. 3살짜리 아들이 있는 이 여성은 사설복권을 사는 데 탕진한 수만 위안을 남편이 갚아주자 다시 주위에서 거액을 빌려 축구도박판에 끼어들었다가 끝내 호텔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명인인 궈메이메이도 축구도박을 하다 경찰에 체포돼 구설에 올랐다. 궈메이메이는 해외에 서버를 둔 해당사이트에 등록한 뒤 핸드폰 통화나 문자 웨이신 등을 통해 단체 도박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월드컵 인터넷 도박혐의로 또 다시 구설에 오른 궈메이메이.[인터넷캡쳐]



◆상하이 도박단 판돈 무려 2조원

중국에서 월드컵 개막 이후 축구도박판이 우후죽순처럼 벌어져 단속을 책임진 공안 당국도 골머리를 앓았다.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 공안국은 지난달 20일 호텔방을 빌려 도박장을 연 혐의로 류(柳)모 씨 등 3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도박 참가자 20여 명을 호텔방으로 불러들인 뒤 200만 위안(약 3억2000만원)의 판돈을 걸고 승패와 점수를 맞추는 도박을 했다는 혐의다. 베이징(北京) 공안당국도 월드컵 기간 중 축구도박 혐의로 모두 47명을 체포했으며 몰수한 도박자금은 6000만위안(98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중 22명은 형사구류를 당했다.

상하이(上海) 공안국은 지난달 24일 시민들의 제보를 토대로 민항(闵行), 푸퉈(普陀), 푸둥(浦东) 등 지역에서 동시에 단속을 시작해 용의자 3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여러 도박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도박을 대리해왔다. 이들 일당이 최근 한달동안 건 판돈의 규모는 무려 126억위안(2조원)에 달했으며 경찰이 급습한 현장에는 240여만위안(약 4억원)의 현금이 있었다. 이들은 판돈의 1.1%를 수수료로 챙겼다고 한다.

마카오에서도 전체 도박액수가 50억 홍콩달러(6600억원)에 달하는 축구도박판이 적발됐다. 마카오특구 사법경찰국은 지난 6일 새벽 한 호텔을 덮쳐 축구도박을 한 22명을 체포하고 현장에서 200만 홍콩달러(2억6000만 원)의 현금과 귀금속, 인삼, 고급술 등 200만 홍콩달러 상당의 장물을 압수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22명 가운데 9명은 중국 본토에서 왔고 9명은 말레이시아에서, 나머지 4명은 홍콩에서 온 화교들이었다. 
 

마카오 도박장 모습.[인터넷캡쳐]



◆월드컵에 마카오 카지노 된서리

월드컵 도박의 불똥은 마카오에 튀었다.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 매출이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 중국의 성장세 둔화와 시진핑 정부의 부패 개혁 드라이브 등 다양한 요소가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월드컵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마카오 도박관리국은 최근 마카오 카지노 산업의 6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7% 하락한 272억2000만 파타카(약 3조4000억원)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도박산업이 급격히 침체됐던 2009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개막한 브라질월드컵이 마카오 카지노 산업을 위축시켰다는 분석을 내놨다. 돈이 월드컵 도박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월드컵 개막 직전과 초기(6월 9~15일)에는 8억4500만 홍콩달러(약 1100억원)에 달하던 마카오 카지노 산업의 하루 평균 매출이 지난달 16일 이후 7억 홍콩달러 대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5월에는 평균 9억7300만홍콩달러의 하루 매출을 기록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마카노 카지노장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편 도박을 즐기는 중국인 고객들로 인해 마카오의 경제는 급성장하고 있다. 마카오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지난해 9만1376달러(9200만원)를 기록해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카타르에 이어 세계 4위로 떠올랐다. 마카오의 1인당 GDP는 전년대비 18.4% 늘었다. 지난해 마카오의 카지노 매출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7배가 넘는다. 마카오 사행산업감찰협조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마카오 소재 36개 카지노가 벌어들인 매출은 3607억 파타카(약 47조3000억원)였다. 다국적 증권사 크레디트리요네(CLSA) 애론 피셔 애널리스트도 마카오 카지노 매출이 2017년 770억 달러(약 8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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