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역에서 고물가와 공공서비스 악화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면서 금융시장까지 흔들리고 있다. 시위 장기화로 재정적자 감축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프랑스의 재정위기가 심화하면 이탈리아까지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3bp(1bp=0.01%포인트) 상승한 연 4.9%를 기록했다. 이달 초 기록한 2002년 이후 최고치인 연 4.99%에 다시 근접한 수준이다.
유로존 국채 금리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4bp 오른 연 3.45%를 나타냈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채 금리 격차는 146bp로 확대돼 최근 2주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프랑스 대표 주가지수인 CAC40 지수도 장중 1.5% 하락해 유럽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BNP파리바와 소시에테제네랄 등 주요 은행 주가는 각각 3% 떨어졌으며 유로화 가치도 미국 달러화와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대비 0.2~0.3% 하락했다.
주식, 채권, 외환시장이 일제히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연출된 것이다. 이같은 금융시장 불안은 대규모 시위로 프랑스 정부의 재정 개혁 추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이번 시위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항의하는 고등학생들의 집회에서 시작돼 높은 물가와 공공서비스 투자 부족에 반발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했다. 지난 주말에는 일부 시위대가 공공시설에 불을 지르고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력 사태로 번졌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법무장관에 따르면 지난 주말 경찰에 구금된 사람은 2330여명에 달했다. 피해를 본 상점도 약 3000곳에 이르며 피해 규모는 수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파리와 릴 등 주요 도시에 통행금지령을 도입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로랑 뉘녜즈 내무장관은 대응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반려했다.
시위가 장기화할 경우 이미 악화한 프랑스의 재정 상황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19%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지난 6월 말 기준 국가부채는 3조5960억유로에 달했으며 프랑스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가 GDP의 5.4%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가부채에 따른 이자 부담도 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가채무 이자 지급액은 910억유로로 올해 792억유로보다 약 120억유로 증가할 전망이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지출 축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시위대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2027년도 예산안 처리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SMBC의 행크 칼렌티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주말 시위 직후 이런 상황이 나타났다는 점은 개혁에 대한 기대가 수그러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도 '영향권'
프랑스의 재정 불안이 다른 유로존 국가로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로뉴스는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프랑스 국채시장에서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경우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2027년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11bp 상승한 연 4.58%를 기록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프랑스와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 격차가 400bp까지 확대될 경우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모두 2027년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2027년 2분기 연 7%까지 치솟고 재정적자는 GDP의 6%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탈리아는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국가부채 비율로 프랑스발 금융시장 충격에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프랑스의 부채 위기를 기본 전망으로 보지는 않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오는 23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재검토할 예정이라는 점도 시장의 부담 요인이다. 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 프랑스 국채에 추가적인 매도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시위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 조끼' 운동 측은 오는 24일 추가 시위를 예고했으며 주요 노동조합들도 다음 달 5일 파업과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앤드루 케닝햄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는 수년간 부채 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이제 그 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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