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한국 증권시장 이야기] 한국 증시의 허와 실

  • 지수의 기록보다 중요한 시장의 신뢰

  • 호황 속에서 되새기는 투자의 본질

주식시장은 이상한 곳이다. 기업이 적자를 낼 때 주가가 오르고, 사상 최대 이익을 발표했는데도 주가가 떨어진다. 좋은 뉴스가 나오면 팔고 나쁜 뉴스가 나왔을 때 오히려 사들이기도 한다. 처음 주식시장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지만 그 본질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의외로 간단하다. 주가는 오늘보다 내일을 먹고 산다.

2026년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2분기 매출 171조5000억원, 영업이익 89조5000억원이라는 기록적인 실적을 냈고, SK하이닉스 역시 매출 79조3000억원, 영업이익 60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하면서 영업이익률이 무려 76%에 달했다. AI가 촉발한 HBM과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전에 없던 호황을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반드시 기업의 오늘 성적표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실적이 발표되기 훨씬 전부터 투자자들은 미래의 호황을 예상해 주식을 사고, 막상 사상 최대 실적이 확인될 때 즈음이면 시장의 관심은 이미 그다음으로 넘어가 있다. 내년에도 이만큼 벌 수 있는가, 후년에는 더 벌 수 있는가, AI 투자는 계속될 것인가, 금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어디까지 따라올 것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식시장은 실적의 절대값보다 때로는 실적의 방향과 속도에 더 민감하다. 10을 벌던 회사가 20을 벌면 놀라지만 100을 벌던 회사가 101을 벌면 시장은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 주식의 첫 번째 역설이다. 최고의 실적이 반드시 최고의 주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 한국 증시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반도체 호황과 AI 혁명이 가져온 엄청난 기대가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기대를 지나치게 앞서가게 만들지는 않았느냐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때로는 거울 속 모습이 실물보다 훨씬 커진다. 상승장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기업의 실적을 보고 투자하고, 주가가 더 오르면 미래를 보고 투자하며, 더 오르면 다른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을 보고 투자한다. 마지막에는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주식을 산다. 이때부터 투자는 계산보다 욕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금융시장을 바라본 핵심도 여기에 있었다. 안정과 성공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위험을 잊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부채가 늘어나고 레버리지가 커지며 마침내 작은 충격에도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호황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호황이 길어질수록 호황을 경계해야 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투자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템플턴 경은 시장의 심리를 꿰뚫어 봤다. “강세장은 비관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며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도취 속에서 죽는다”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주가가 바닥일 때 사람들은 주식을 거들떠보지 않고, 조금 오르면 의심하며, 더 오르면 낙관하고, 계속 오르면 누구나 부자가 될 것처럼 생각한다. 바로 그 마지막 단계가 가장 위험하다.

템플턴이 평생 강조한 것은 남들과 반대로 행동하라는 단순한 역발상이 아니었다. 가격과 가치 사이의 거리를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절망할 때 기업의 가치를 보고, 사람들이 열광할 때 가격을 다시 보라는 것이다.

워런 버핏의 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버핏에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기다리는 능력이다. 야구로 말하면 모든 공을 칠 필요가 없다. 자신이 가장 잘 칠 수 있는 공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 뒤 좋은 공이 오면 힘껏 방망이를 휘두르면 된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매일 사고팔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기업을 적절한 가격에 사고 그 기업이 성장할 시간을 주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다. 그래서 버핏의 투자는 속도의 철학이 아니라 시간의 철학이다.

한국 증시가 지금 가장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도 바로 이것이다. 주가지수가 오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국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고 국민의 금융자산이 증가하며 해외 자본이 한국 시장을 높게 평가한다면 환영해야 한다.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

그러나 주가가 빨리 오르는 것과 주식시장이 좋아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건강한 주식시장은 몇몇 대형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리는 시장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혁신기업이 등장하고, 배당과 주주환원이 확대되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면서 그 결과가 장기간에 걸쳐 주가에 반영되는 시장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도 분명해져야 한다. 정부가 주식시장을 중요하게 보는 것은 옳다. 자본시장은 국민의 재산이 모이는 곳이며 기업이 성장자금을 조달하는 경제의 혈관이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의 노후자금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의 목표가 특정한 주가지수 자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높은 주가가 아니라 좋은 시장이다.

좋은 시장을 만들면 주가는 결과로 따라온다. 기업이 열심히 일해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주주와 합리적으로 나누며, 대주주의 사익 편취가 어려워지고 회계가 투명해지며, 불공정거래가 엄격하게 처벌되고 혁신기업이 증시를 통해 성장자금을 조달하며, 국민의 장기자금이 생산적인 기업으로 흘러가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보다 이것이 훨씬 어렵지만 훨씬 중요하다.

특히 국민의 주식투자가 단기 매매에서 장기 자산형성으로 옮겨가도록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연금과 장기투자에 적합한 세제, 배당문화, 기업가치 제고, 투자자 보호와 금융교육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주식시장이 국민에게 거대한 카지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기업의 성장에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국민자본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것은 한국 경제의 큰 자산이고, AI 시대가 열리면서 메모리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HBM과 차세대 메모리에서 한국 기업이 확보한 경쟁력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산업에도 사이클은 있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고, 이익이 커지면 경쟁자가 들어오며, 기술격차가 벌어지면 후발주자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한국 기업이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동안 중국 기업도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으며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비관론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반도체 낙관론도 아니다. 산업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갖되 가격에는 냉정해야 한다. 이것이 투자자의 자세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증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반도체에서 벌어들인 부와 기술이 소재·부품·장비로 확산되고, AI와 로봇, 피지컬 AI, 바이오, 에너지, 방산, 조선, 문화콘텐츠와 새로운 제조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몇 개 초대형 기업의 시가총액이 커지는 것을 넘어 수백 개의 경쟁력 있는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국 증시의 체질이 강해진다.

증시는 결국 한 나라의 산업 생태계를 반영한다. 나무 한두 그루가 아무리 높아도 숲 전체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오래된 나무와 새로 자라는 나무가 함께 있어야 숲은 오래간다.

여기에서 주식시장과 인간·문화·자연은 만난다. 자연은 하루아침에 거목을 만들지 않는다.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비와 햇볕을 견디며 수십 년을 자라야 큰 나무가 된다. 인간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국가경제도 그렇다. 주식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늘 10% 오르고 내일 다시 10% 오르는 시장보다 기업이 매년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생산성을 높이며 세계시장을 개척해 그 성과가 10년, 20년에 걸쳐 주가에 축적되는 시장이 훨씬 건강하다. 존 템플턴이 군중의 도취를 경계하고 워런 버핏이 시간과 인내를 강조한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부는 속도로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 시간으로 완성된다.
 
이미지챗GPT 생성
이미지=챗GPT 생성


한국 증시는 이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오랫동안 저평가를 걱정했던 시장이 세계적인 AI·반도체 호황을 만나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은 분명 기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정부도 투자자도 기업도 주가지수의 하루 움직임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는 지수를 올리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정부가 되어야 하고, 기업은 주가를 관리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키우는 기업이 되어야 하며, 투자자는 가격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찾아 기다릴 줄 아는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 증시는 몇 달 만에 세계 최고로 뛰어오르는 시장보다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시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주가는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으며 호황은 언젠가 끝나고 불황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러나 좋은 기업은 남고 좋은 제도도 남으며 신뢰도 남는다. 그 세 가지가 쌓이면 주가는 결국 따라온다.

천천히 가도 좋다. 다만 오래 가야 한다.

그것이 템플턴과 버핏이 긴 세월 시장에서 보여준 지혜이고, 지금 한국 증시가 호황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주식시장에는 오래된 말이 있다. “주가는 귀신도 모른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주식시장의 본질을 상당히 정확하게 표현한다.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도, 월가의 투자은행도, 수십 년 경력의 펀드매니저도 내일의 주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업실적과 금리, 환율, 전쟁과 평화, 정치와 기술,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한꺼번에 가격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었다고 이 원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읽고 계산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우연과 인간의 욕망까지 완벽하게 계산할 수는 없다.

2500여 년 전 노자는 『도덕경』 제58장에서 말했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화에는 복이 기대어 있고,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주식시장만큼 이 말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곳도 드물다. 모두가 악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악재가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새로운 기회가 태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모두가 호재라고 환호할 때 그 낙관 속에 위험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폭락 속에는 상승의 씨앗이 있고 폭등 속에는 하락의 그림자가 있다.

노자의 지혜로 시장을 바라본다면 좋은 일이 생겼다고 지나치게 들뜨지 않고 나쁜 일이 닥쳤다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지 않는다. 복 속에서 화를 보고, 화 속에서 복을 보는 것. 그것이 투자자의 균형이다.

『주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계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

세상에는 영원한 상승도 영원한 하락도 없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이 극에 이르면 가을로 변하며, 겨울의 추위가 다하면 다시 봄이 온다. 자연이 그렇고 인간의 삶이 그렇다. 기업도 산업도 경제도 주식시장도 그 큰 순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호황이 극에 달하면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불황이 깊어지면 또 다른 산업과 기업이 태어난다. 바로 변화가 시장의 본질이다.

따라서 현명한 투자자는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려 하기보다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견딜 수 있도록 준비한다. 좋은 기업을 고르고, 지나친 빚을 피하고, 한곳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며,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주가지수의 내일을 맞히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변화가 와도 버틸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호황에는 과열을 경계하고 불황에는 시장의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며 기업과 투자자가 긴 시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노자는 복과 화가 서로 기대어 있음을 가르쳤고, 『주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고 했다. 그리고 수천 년 뒤 템플턴은 시장의 도취를 경계했고 버핏은 기다림과 시간의 힘을 보여주었다.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투자철학이 뜻밖에도 한자리에서 만난다.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고 시장의 이치를 이해하라.

주식시장은 귀신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겸손해야 한다. 오늘의 상승을 영원한 상승이라고 믿지 말고 오늘의 하락을 영원한 절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지수가 얼마를 언제 돌파하느냐가 한국 자본시장의 궁극적인 목표일 수는 없다. 얼마나 높이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중요하다. 빠른 상승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 단기 부양보다 시장의 신뢰, 투기보다 투자, 가격보다 가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결국 인간이 있다. 기업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주식을 사고파는 것도 인간이며 탐욕과 공포에 흔들리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시장의 신뢰를 만들며, 그 모든 것은 다시 자연의 순환 속에 놓여 있다.

인간·문화·자연.

주식시장도 결국 그 질서 밖에 있지 않다. 노자의 말처럼 복 속에서 화를 볼 줄 알고, 『주역』의 가르침처럼 변화를 받아들이며, 템플턴처럼 군중의 도취를 경계하고, 버핏처럼 기다릴 줄 아는 것. 한국 증시에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새로운 비법이 아니라 이 오래된 지혜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가도 좋다. 흔들려도 좋다. 다만 오래, 바르게 가야 한다.

그것이 한국 증시의 허(虛)를 넘어 실(實)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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