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부동산 정책의 생명은 신뢰다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주택 단지 모습 260811유나현 기자 shootingajunewscom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주택 단지 모습. [아주경제 DB]

부동산 정책은 다른 어느 정책보다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부동산은 국민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한 번의 매매나 보유 결정이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가계의 재무 상태를 좌우한다. 정부가 부동산 제도 하나를 바꿀 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행 또는 발표 후 수개월 만에 잇달아 조정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7일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임대 중인 주택의 실거주 의무 유예 신청 기한을 당초 올해 말에서 내년 말까지 연장하고, 현재 임대차계약뿐 아니라 갱신계약까지 유예 대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실거주 유예 제도를 확대한 지 약 넉 달 만에 추가 조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8월 초 세제개편안에서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지만 불과 29일 만인 9월 1일 이를 다시 12억원으로 되돌렸다. 

정책을 수정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제도를 시행해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이를 고치는 것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체면 때문에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신속하게 보완하는 편이 낫다.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면 정책 역시 일정 부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수정의 횟수와 속도다. 부동산 세제와 거래 규제처럼 국민의 재산권과 직접 연결되는 제도가 발표된 지 몇 달 만에 다시 바뀌는 일이 반복되면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을 그대로 믿고 행동하기 어려워진다. 세제를 바꿀 때는 거래 규제와 임대차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거주 의무를 강화할 때는 기존 세입자와 임대인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정책 발표 뒤 현장에서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예외를 늘리고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정교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 정책은 하나의 제도만 떼어 놓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토지거래허가제와 실거주 의무,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임대차 제도는 서로 맞물려 있다. 한쪽에서 매물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펴면서 다른 쪽에서는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규제가 작동한다면 정책 효과가 충돌할 수 있다. 속도보다 완성도가 중요하고 발표보다 점검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시장에서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정책 시행 전에 효과와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일단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고친다’는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택을 사고팔 것인지,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것인지, 자녀에게 증여할 것인지 같은 결정은 정부 정책을 전제로 이뤄진다. 정부가 내놓은 세금이나 규제 기준이 '몇 달 뒤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면 국민은 정책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다음 정책 변경을 기다리게 된다. 이로 인해 거래를 미루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규제의 강도만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역시 중요한 변수다. 정부가 오늘 발표한 기준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계와 기업도 장기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정책을 얼마나 많이 내놓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일관되게 운용하느냐에 부동산 정책의 성패가 달려 있다. 충분한 의견 수렴과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세제·대출·거래규제를 하나의 체계로 점검해야 한다. 시장 상황에 맞춘 보완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충분한 사전 검토다. 국민의 재산과 직결된 정책일수록 기본과 원칙, 그리고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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