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한양대 국제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겸임교수]
최근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 관문인 바브엘만데브를 장악한 이후, 중동정세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호르무즈 해협과 함께 중동지역에서 세계 원유를 해외로 운송하는 해양 출구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다. 지난 2월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봉쇄되어 세계 원유시장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 해협 대안으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수출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마저 타격을 입고 있다.
이라크 내부에 있는 친이란 민병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까지 공격하여 육상 송유관 가동이 멈추었다. 후티 반군은 지난 10∼11일간 홍해의 전략 요충지인 모카와 폐림 섬을 장악하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사우디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홍해 지역 상황이 악화하자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두 차례나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절했다. 트럼프는 빈살만의 요구대로 후티 반군을 왜 공격하지 않는 것인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 손아귀에 들어가자 11일에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123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만일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 국제유가는 더 치솟을 것이다. 또한 글로벌공급망에 차질을 초래하고 해운 물류비도 급상승할 것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미국 중부사령부 군함이 서로 봉쇄와 역 봉쇄를 취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쟁을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트럼프의 고민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첫째,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에 두고 있어, 이란전쟁을 확전하기에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이전에 이란과 종전을 타결하려 했지만, 이 시도가 물거품이 되자 플랜B 차원에서 경제적 압박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 중부사령부 소속 함대가 호르무즈 해협 외곽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고립 전략으로 이란을 더 압박할 경우, 그 효과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이란 지도부가 협상테이블에 다시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적어도 미국 중간선거까지 이란이 군사적으로 도발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데에 초점을 둘 것이다. 만일 현시점에서 미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있는 후티 반군까지 공격한다면, 이란전쟁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동에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빈살만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국정 장악력을 뒷받침해 줄 중간선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휘발유, 경유 등 유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후티 반군과 전쟁을 벌일 경우, 중동정세가 악화하여 국제유가가 폭등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과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의 위기 상황을 미끼로 삼아 미국을 중동전쟁 확전에 끌어들이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트럼프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따라서 중동지역에서 전쟁 확전이란 옵션은 생각하기 힘들다. 11월 중간선거까지는 호르무즈 해협 외곽을 봉쇄하고 대이란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아 이란 지도부를 옥죄일 것이다.
한편, 이란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이란은 물가 폭등, 높은 실업률, 생필수품 사재기, 휘발유 부족, 이란 리알화 가치 폭락 등 심각한 경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란 경제를 뒷받침해 주었던 핵심 수출 품목인 원유조차 수출이 차단되어 외화획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5월 CIA는 보고서에서 “이란을 봉쇄하면 3∼4개월은 버틸 것이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는 종전 협상이 파기되자 지난 7월 13일 2차 역 봉쇄를 시작했다.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경파와 온건파 간 갈등이 이란 내부에서 또다시 표출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에 합의했던 전 이란 대통령 하산 로하니는 “대다수 이란 국민의 뜻에 따라 전쟁을 명예롭게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이란 언론에서는 종전 문제를 이란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 이란 강경파 세력인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적행위”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란 강경 세력은 미국의 경제난 압박 전략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바브엘만데브에서 또 다른 위기 상황을 촉발하여 트럼프 정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려는 속셈이다.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전쟁을 확산시켜 중동지역 전체를 혼란에 빠트릴 경우,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동시에 원유 수출이 막혀서 국제유가를 상승시키고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에 타격을 줄 것이다.
후티 반군 처지에서도 이란과 물밑에서 손잡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장악하는 것이 손해 볼일은 아니다. 후티 반군이 홍해 관문을 봉쇄하면, 이란과 함께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과시할 수도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 길목을 차단하여 빈살만 왕세자에게 결정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점점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앞으로 중동정세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주목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후티 반군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장악과 관련하여 군사적으로 직접 공격하지 않는 대신, 군사고문단을 보내 전황 정보와 타깃 정보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제공하고 있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24일 미국에서 열리는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란전쟁과 후티 반군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장악 문제를 거론하고 협조를 요청할 것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에 후티 반군 문제에 대한 도움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 후티 반군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미국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오는 11월 중간선거까지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자제할 것이다. 그러나 중간선거가 지나고 정치적 부담이라는 장벽이 없어질 경우, 2가지 전제조건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첫째, 만일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는 사태가 장기화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수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국제유가에도 엄청난 타격을 줄 경우,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 시나리오로 간다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이란과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과 동시에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둘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지역에서 수니파의 종주국이자 미국의 우방국이며, 군사적 요충지이다.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 장악을 계기로 예멘 정부를 붕괴시키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부상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와달라”는 긴급 메시지를 또다시 보낼 것이다. 미국도 후티 반군 세력의 급부상을 원치 않을 것이다. 대신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라는 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이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중동 정책인 아브라함 협정을 완성하려 들것이다.
현재 중동에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함께 수니파 대부인 사우디아라비아이다. 후티 반군은 이란식 이슬람원리주의 신정국가를 추종하고 있다. 이란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1979년 친미 정권인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킨 바 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은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정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존재감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동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후티 반군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러한 시나리오로 갈 경우,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이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확대되는 복잡한 상황으로 꼬여갈 것이다. 물론 국제유가는 더 출렁거릴 것이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 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 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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