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올해 처음으로 4만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명목 GN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8% 증가했다. 하반기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 없고 환율 안정세가 이어지면 4만 달러 달성이 유력하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은 2014년 1인당 GNI 3만 달러를 넘어선 뒤 12년 만에 새로운 소득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 지난해 기준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GNI가 4만 달러를 넘은 나라는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5개국이었다. 한국이 올해 4만 달러를 달성하면 현재 이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는 6개국으로 늘어난다.
한국은 자원이나 금융업에 의존해 소수 인구가 높은 소득을 누리는 소규모 부국과도 다르다. 5000만명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을 키워 여기까지 왔다.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나라가 주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적 체급을 갖춘 것은 평가받아 마땅한 성취다.
그렇다고 4만 달러라는 숫자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올해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난 데에는 반도체 호황과 수출가격 상승, 환율 안정의 영향이 컸다.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보다 26.4% 증가했지만 물가 변화를 제거한 실질 GDP 증가율은 3.7%였다. 우리 경제의 생산 능력이 1년 만에 20% 넘게 커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달러로 표시하는 1인당 GNI는 환율에도 민감하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같은 원화 소득도 달러로 환산한 금액이 늘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다시 줄어든다. 일본도 과거 4만 달러를 넘었지만 성장 정체와 엔화 약세가 겹치면서 3만 달러대로 내려왔다. 한국 역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거나 환율이 급등하면 4만 달러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1인당 GNI는 기업과 정부, 가계의 소득을 모두 합쳐 인구로 나눈 평균값이다. 기업이 반도체 수출로 막대한 이익을 올려도 자영업자의 매출과 근로자의 임금이 늘지 않으면 국민이 체감하는 형편은 달라지지 않는다. 집값과 교육비, 의료비, 대출이자 부담까지 고려하면 통계상의 평균소득과 실제 생활수준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소득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양질의 일자리로 연결해야 한다. 대기업의 성과가 협력업체의 생산성과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제조업보다 뒤처진 서비스업의 생산성도 끌어올려야 한다. 주거·교육·돌봄 비용을 낮춰 같은 소득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소득 4만 달러는 한국 경제가 이룬 값진 이정표다. 그러나 환율과 반도체 가격이 바뀌면 다시 밀려나는 숫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수출기업의 호황을 투자와 일자리, 임금과 내수의 선순환으로 연결해야 한다. 숫자로만 4만 달러를 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이 삶에서 체감하고 지속할 수 있는 4만 달러 시대를 만드는 것이 이제 정부와 기업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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