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이사회, '누가' 참여하는가에서 '어떻게' 운영하는가로

  • 정경희 유니코써치 전무

정경희 유니코써치 전무
정경희 유니코써치 전무
 
최근 글로벌 거버넌스의 흐름은 '이사회 구성' 중심에서 '이사회 효과성'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누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이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기업의 전략과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6년부터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면서 기업은 이사회 구성뿐 아니라 운영에 대해서도 시장과 투자자에게 설명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이사회 역량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많은 기업은 그 답을 전문성을 갖춘 이사를 선임하는 데서 찾는다. 산업계와 정책·규제, 학계, 법률·재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이사회에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 전략에 필요한 전문가를 선임하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사외이사 선임이 끝났다고 이사회 역량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선임은 시작일 뿐이다. 좋은 이사회는 선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사회의 역량은 선임 이후 어떻게 운영하고 발전시키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외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사외이사 선임을 지원하며 최근에는 다양한 기업의 이사회 운영과 관련한 논의를 이어왔다. 기업마다 고민은 달랐다. 감사위원 후보군 확보를 고민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선임된 이사의 교육을 고민하는 기업도 있었고, 이사회 평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자문을 구하는 기업도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과제는 달랐지만 현장에서 반복해서 확인한 사실은 하나였다. 선임과 교육, 평가는 각각 운영되고 있었지만 하나의 운영체계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필요한 역량이 다음 선임으로 이어지고, 교육과 평가 결과가 다시 이사회 운영에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춘 기업은 아직 많지 않았다.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이사회 역시 필요한 역량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AI 기술의 확산,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재편, 산업 간 경계의 변화는 이사회가 다루어야 할 의제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한번 확보한 전문성만으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선임 이후에도 기업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필요한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며, 그 결과를 다시 다음 선임과 운영에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사회의 역량은 우수한 이사를 많이 선임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전문성과 경험이 기업의 전략이라는 하나의 방향 아래 연결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질문하고 토론하며, 더 나은 의사결정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역량으로 발휘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별 이사의 전문성 자체가 아니라 그 전문성이 이사회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가이다.
 
필자가 말하는 이사회 운영체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운영체계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업 전략에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그에 적합한 이사를 선임하며, 교육과 평가를 통해 그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다시 다음 선임과 운영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선임·교육·평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이사회는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의사결정기구가 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확대가 의미하는 것도 결국 같은 방향이다. 이제 시장은 누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가 어떤 원칙과 체계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앞으로 기업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화려한 경력의 이사가 몇 명인가가 아니라 그 전문성이 실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운영 기반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좋은 이사회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필요한 역량을 설계하고, 적합한 이사를 선임하며, 선임 이후 교육과 평가를 통해 그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이제 우리 기업의 관심도 '누가 이사회에 참여하는가'를 넘어 '이사회 역량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갈 것인가'로 확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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