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라이베리아에서 한국을 바라보다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폐허 위에 세워진 질문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라이베리아를 다녀왔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경제와 교육,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나라다. 그러나 1980년의 피의 쿠데타와 1989년부터 14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25만 명이 희생되고 행정과 전력, 도로와 학교 같은 국가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했다. 지금은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11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는 안타까움과 무거운 의문이 함께 휘몰아쳤다. 농촌 마을과 도시 변두리, 그리고 정부 기관들을 둘러보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비어 있는 땅이었다. 도시 주변에도 시골 집 주변에도 개간되지 않은 채 묵혀 있는 땅이 수두룩했고, 텃밭이나 과수원을 일궈 자급자족하려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풍경을 성실함의 문제로 읽었다. 그 판단이 틀렸음을 아는 데 열하루가 걸렸다.

길가에는 수많은 국제협력단체(NGO)가 세워놓은 화려한 사업 표지판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표지판이 가리키는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흔적만 남은 채 표지판마저 녹슬어 가고 있었다. 보고서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감동적인 사진과 함께 투입(Input)에서 활동(Activity), 산출물(Output), 성과(Outcome), 최종목표(Impact)로 이어지는 PDM 논리모형과 성과지표(Indicator), 검증수단(Means of Verification), 외부전제조건(Assumptions)이 표 안에 빈틈없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사업은 끝났고, 남은 것은 표지판이었다. 표지판은 크게 남았지만 사업이 남긴 행위는 보이지 않았다.

현지 정부 관료들을 만나보아도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열정이나 비전은 느껴지지 않았다. 교사 월급을 정상화하고 학교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주민들은 시큰둥했다. 14년의 내전은 건물만 부순 것이 아니었다. 지식인과 관료, 경영진 같은 엘리트 계층이 죽거나 떠나면서 국가를 설계할 손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장기적인 발전 전략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하려면 막대한 정치적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세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관료들은 5년, 10년 뒤의 국가 비전을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자리에 있는 동안 외부 원조 예산과 이권을 나누어 갖는 정치적 생존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제시해도 소용이 없다. 수십 년간 부패와 배신을 경험한 국민들에게는 그것을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정권이 바뀔 텐데", "어차피 자기들 배만 채울 텐데"라는 냉소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오래 쌓이면, 남는 것은 약속을 믿지 않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 모든 상황이 현지인들의 나태함이나 오랜 내전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의 지난 역사를 반추해보며, 마지막 날 방문한 전혀 다른 공간을 마주하면서 문제의 본질이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에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미장 일을 하는 사람은 무너진 벽을 보면 표면부터 보지 않는다. 안이 어떻게 비어 있었는지를 먼저 본다. 라이베리아에서 내가 본 것도 무너진 표면이 아니라, 오래 비어 있던 그 내부였다.
 
수탈의 구조와 보상의 부재

왜 그들은 빈 땅에 채소를 심지 않고, 왜 외부 지원으로 만든 농장을 방치했을까? 그 답은 그들이 처한 불확실한 환경 속에 있었다. 라이베리아의 토지 소유권은 대단히 불분명하다. 애써 땅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어도, 땅의 가치가 올라가면 관습법상 토지를 소유한 족장이나 부패한 권력자, 혹은 지역 실권자에게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 울타리를 칠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방목되는 동네 가축들이 싹을 뜯어먹기 일쑤이고, 건기와 우기의 극단적 기후 속에서 물을 대는 노동의 기회비용은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이나 소매상 노동보다 훨씬 크다.

오랜 내전, 부패한 행정, 불분명한 토지 소유권, 노력의 결실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 주민들은 "애써 일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지금 라이베리아 주민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구한말 조선의 농민들이 처했던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다. 19세기 말 조선을 답사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조선의 농민들을 무기력하고 게으르며 길거리에 누워 빈둥거린다고 적었다. 그러나 같은 여정에서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만난 그는, 그들이 그 어떤 민족보다 부지런하고 유능한 농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같은 관찰자의 눈에 두 개의 조선인이 보인 것이다. 달라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놓인 제도였다. 조선의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 속에서 많이 일할수록 더 많이 빼앗기는 구조를 겪으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을 선택했고, 수탈이 없는 땅으로 건너간 뒤에는 거듭났다. 인간의 근면함은 민족성이나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노력과 보상이 정직하게 연결되는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베리아 안에서 학교, 보건소, 우물 같은 기초 인프라는 비록 낡았을지언정 작동하고 있었다. 매일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체 불가능한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설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유지될 뿐 단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현지 사회가 현재를 겨우 '유지'할 여력만 있을 뿐, 미래를 향해 '투자'할 자본과 사회적 신뢰가 마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담장 하나의 두 세계

방문 마지막 날 찾은 파이어스톤(Firestone)의 하벨(Harbel) 농장은 이러한 구조적 명제를 완벽하게 증명해 주는 공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고무농장인 이곳은 담장 밖의 잿빛 라이베리아와는 전혀 다른 '별세상'이었다. 농장 외부의 라이베리아 사회는 전기도, 깨끗한 물도, 도로도 없어 정체되어 있지만, 담장 안의 하벨 농장은 자체 수력 발전소, 전용 병원, 학교, 마트, 골프장까지 갖춘 완전한 자급자족형 '문명의 섬'이었다. 이는 라이베리아의 자원과 노동력이 외부 대자본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혜택은 국부로 환원되지 못하는 구조적 착취 시스템의 단면으로 볼 수도 있다.

파이어스톤은 1926년 라이베리아 정부와 100만 에이커의 땅을 에이커당 6센트에 99년간 빌리는 계약을 맺고 들어왔다. 그 계약은 원래 지난해 만료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전 직후의 과도정부는 2005년 새 계약에 서명했고, 2008년 재협상을 거쳐 임대료가 조정되고 기한은 2041년까지로 정리되었다. 100년 전 흑인 해방 노예들이 세운 나라가 맺은 계약을, 그 나라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스스로 유리하게 바꿀 힘을 갖지 못했다. 미주 출신 해방 노예들이 세운 라이베리아라는 나라에서, 정작 수십 년간 흑인 현지인들은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관리직과 부는 백인 외국인들이 독점했던 역사적 아이러니가 그 농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제국주의적 플랜테이션 농장이자 착취의 상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실용적인 눈으로 바라본 그곳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하벨 농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정규직 4천여 명과 협력업체 인력을 합쳐 6천 명에 이르는 현지인 노동자들은 외부 마을 사람들과 달리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매우 부지런히 일했다. "정당한 노동을 제공하면 정해진 날에 확실한 대가가 지급된다"는 시스템이 작동하자, 그들 역시 세계적인 생산성을 내는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관건은 담장 안에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담장이 낮아질 수 있느냐다. 이익이 현지에 재투자되고, 인가된 직업교육과 고용이 연결되고, 소유의 일부가 현지로 넘어가는 설계라면 문명의 섬은 착취의 요새가 아니라 신뢰의 실험장이 된다.

이 모습은 라이베리아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국가적 무정부 상태라 할지라도, 완결형 인프라와 명확한 보상 체계를 갖춘 '거점 개발 모델(Growth Pole Model)'을 구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대규모 기업형 농장 거점, 풍부한 희귀 광물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스마트 광산촌, 아름다운 대서양 해안가를 활용한 리조트 타운과 같은 몇 곳의 성공한 거점을 늘려간다면, 이것이 곧 라이베리아를 바꿀 새로운 산업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
 
신뢰라는 자산

귀국길에 오르며 가슴속을 채운 것은 라이베리아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향한 위기감이었다.

라이베리아를 무너뜨린 것이 14년의 내전이었다면, 지금 우리를 잠식하는 것은 총성 없는 대립이다. 분단국가라는 조건 속에서 정치적 이념의 차이는 상대를 국정의 파트너가 아닌 타도해야 할 적으로 만든다. 자산 격차는 벌어지고 AI가 일자리의 지형을 바꾸는 사이 생존의 불안은 커지는데, 그 불안은 서로를 향한 적대로 손쉽게 번역된다. 라이베리아에서 냉소가 사회의 기본값이 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우리가 그 길에 얼마나 들어섰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높은 아파트 단지와 세계를 호령하는 반도체 공장을 보며 대한민국이 견고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국가를 진짜 지탱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공장이 아니다. 열하루 동안 내가 본 라이베리아의 텅 빈 내부를, 이제 나는 우리 쪽으로 돌려 본다. 그 내부의 이름은 사회적 신뢰다.

그리고 신뢰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하벨 농장의 노동자들이 부지런해진 것은 임금이 후해서가 아니었다. 정해진 날에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제도란 결국 약속을 반복해서 이행하는 일이고, 신뢰는 그 이행이 쌓여 만들어진 자산이다. 반대로 수십 년간 이행되지 않은 약속은 냉소를 남기고, 냉소는 "애써 일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 판단으로 굳는다.

지금 우리의 갈등은 너무나 많은 경우 관념과 언어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만든 반향실 안에서 서로를 향해 자극적인 언어를 쏟아내며 가상의 적을 만든다. 나는 이번 방문을 국제개발협력 단체의 대표로서 다녀왔지만, 도착 다음 날 다시 건설현장으로 출근했다. 그 하루가 알려준 것이 있다. 몸을 쓰는 정직한 노동의 현장에는 거짓이 없다. 미장 칼을 잡고 벽을 바르는 일, 묵직한 자재를 함께 나르는 일은 정직한 물리 법칙을 따르며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우리는 상대의 정치적 신념을 묻지 않는다. 내 앞에서 함께 땀 흘리고 손을 맞추는 동료가 있을 뿐이다. 자재를 함께 든다는 것은 상대가 놓지 않으리라 믿는다는 뜻이고, 그 믿음이 어긋나지 않은 경험이 하루씩 쌓이는 것이다. 국가의 제도가 하는 일도 규모만 다른 같은 일이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낸 뒤에는 상대를 '악마'가 아닌 '노동하는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라이베리아의 폐허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하나다.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는 정직한 제도를 지키는 일과, 일상의 노동 속에서 타인을 인정하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가 아니다. 둘 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거대한 관념의 싸움을 멈추고 손을 맞잡는 현장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라이베리아가 겪은 비극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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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때마다 움푹 파인 길을  오토바이로 건너다보면 고장나기 일쑤다. 고장난 오토바이를 고치는 형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어린 동생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림, 이두수 작가 제공]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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