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밀어버리는거야"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 세상에서 약자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스틸컷]
[사진=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스틸컷]

사람들은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며 불편해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투가 거칠어지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이 들곤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인색하다.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타인의 분노를 얼마나 이해하려 하는가. 그리고 누군가가 끝내 폭발하기까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알고 있는가.

주인공 혜영(김혜윤)은 평범한 청춘과는 거리가 멀다. 팔에 큰 용 문신을 한 그녀는 거친 말투와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녔다. 누군가에게 무례하고 까칠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혜영을 ‘성격이 센 여자’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가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혜영의 삶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를 기점으로 무너진다. 아버지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혜영은 한순간에 가족의 보호자 역할을 떠안게 되고 병원비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린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그는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해결해야 한다. 아직 자신의 삶조차 온전히 꾸려나가기 어려운 스무살 혜영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책임을 안겨준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 구본진(박혁권)이 운영하던 중국집과 토지를 둘러싼 갈등이다. 개발업자 측은 혜영의 가족에게 토지를 넘기라고 압박한다. 혜영에게는 이를 막아낼 경제적 힘도, 사회적 영향력도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혜영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국집 가게 건물이 사실 아버지 소유가 아닌 과거 아버지가 일한 중장비 회사 최 회장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휴대전화에서 녹취록을 발견한 혜영은 최 회장과 본진 간의 건물을 둘러싼 거래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최 회장은 본진에게 ‘자유롭게 건물을 쓰라’며 건물을 내주었고 본진은 4억 원의 빚을 내 건물을 2층으로 증축했으나, 국회의원에 출마한 최 회장은 ‘부술 건물에 무슨 권리금이 있느냐’며 권리금을 주치 않은 채 건물이 있는 땅을 골프연습장으로 되팔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같은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최 회장과 정계 인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폭로하려던 혜영은 건장한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고 해당 녹취록은 삭제되고 만다.

그래도 혜영은 무너져있을 수만은 없다. 최선을 다해 진실을 파헤치는 것만이 혜영이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경찰을 찾아가고 자신의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사진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스틸컷
[사진=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스틸컷]
 
왜 분노하는가

이미 기울어진 힘의 균형 앞에 혜영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불도저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그는 동생을 친척집에 맡긴 뒤 중장비 회사로 향한다.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배운 불도저를 몰며 중국집 건물을 스스로 허물고 최 회장의 저택 성벽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다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은 혜영은 돌진을 멈추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 교도소에서 출소한 혜영의 모습을 비춘다. 그녀는 동생과 작은 옥탑방에서 살아간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예전에 없던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불도저는 도시를 개발하고 기존의 건물을 밀어내는 존재다. 혜영은 이 거대한 불도저에 올라탐으로써 자신을 밀어내는 세상을 향해 거꾸로 돌진한 것이다. 

혜영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누군가 혜영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혜영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불도저에 올라탄 것은 혜영이 스스로를 지키는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의 선택이 옳은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선택밖에 남지 않은 혜영의 절망을 느낀다.

영화는 혜영의 통장으로 죽은 아빠의 보험금 4억 원이 입금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종종 분노의 원인보다 분노의 방식에 먼저 주목한다. ‘왜 저렇게 과격해?’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말을 좋게 하면 되지’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무엇을 참아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혜영의 거친 모습을 지우지 않는다. 대신 분노만큼의 상실과 무력감을 예상케 한다. 아버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의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는 절망.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그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혜영의 분노가 있다.

돈이나 권력 등 힘을 가진 사람은 화를 내지 않아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혜영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 회장에게는 돈과 조직이 있고, 혜영에게는 자신의 몸과 목소리밖에 없었다. 결국 혜영은 자신이 가진 가장 거친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로 한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처럼 불도저에 올라탄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복수극의 클라이맥스로만 보기 어렵다. 누군가는 법과 돈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불도저에 올라탄 혜영은 세상을 부수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내고 싶었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무력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스틸컷
[사진=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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