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영통합 협상이 결렬된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차세대 자동차의 '두뇌'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2024년 양사 간 협력 논의를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나온 첫 구체적인 성과다.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로 차량의 성능과 기능을 개선하는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서 앞서가는 가운데, 독자 노선만 고집해서는 경쟁에서 더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양사의 타협을 이끌었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은 지난달 31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핵심 부품과 기본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차량 전체를 통합 제어하는 핵심 전자제어장치(ECU)를 비롯해 차량용 운영체제(OS)와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한다. 개발한 부품과 소프트웨어는 2029년도 이후 각사가 출시하는 신차에 탑재할 계획이다.
SDV는 출고 후에도 통신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운전 지원 기능을 개선하거나 차량 내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자동차다. 기존 차량에서는 엔진·브레이크·변속기 등 기능별 ECU가 해당 기능을 각각 제어하지만, SDV는 핵심 ECU와 차량용 OS를 중심으로 각 기능을 통합 제어한다. 하드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가 차의 성능과 상품성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양사가 뒤늦게나마 공동 개발에 나선 것은 빠르게 커지는 SDV 시장에서 선두 업체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는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서 SDV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5년 6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테슬라와 중국 신흥 자동차 업체들이 개발을 주도하는 가운데, 토요타자동차도 지난해 자사의 첫 본격 SDV 모델인 신형 RAV4를 출시했다.
막대한 개발비도 독자 노선을 고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혼다와 닛산의 지난해 세계 판매량은 각각 352만대와 320만대로, 합치면 세계 3위에 육박한다. 닛산이 지분을 보유한 미쓰비시자동차도 공동 개발 합류를 검토하고 있다. 토요타자동차를 축으로 스즈키 등이 모인 진영에 맞서, 혼다·닛산·미쓰비시 3사 연합이 대항축을 이루는 구도가 뚜렷해졌다고 아사히신문은 짚었다. 미쓰비시를 포함한 3사의 2025회계연도 판매량은 약 730만대에 이른다. 공동 개발한 부품을 탑재하는 차량이 많아질수록 대당 개발비를 낮출 수 있고, 차량에서 확보하는 데이터의 종류와 양도 늘어난다.
하지만 양사는 SDV 기술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혼다는 차량 전체를 하나로 집약해 제어하는 OS를 상정했지만, 닛산은 기능을 한정한 사양을 구상했다. 혼다는 자체 OS인 '아시모 OS'를, 닛산은 차량용 OS에 데이터 인프라와 개발 환경까지 더한 SDV 플랫폼을 각각 개발해왔다. 닛산은 이 플랫폼을 2026년도 안에 실용화할 계획이다. 한쪽 기술을 채택하면 다른 쪽은 그동안 진행해온 자체 개발을 접어야 했다.
결국 혼다가 차량용 OS 전략을 수정하면서 협상에 돌파구가 열렸다. 혼다는 아시모 OS를 확대 적용하려던 전략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핵심 ECU와 차량용 OS는 닛산이 이미 개발한 기술 일부를 활용하되 혼다의 기술도 반영해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다만 자동차의 개성과 상품 경쟁력에 직접 연결되는 자율주행 기술은 당분간 각자 개발한다. 혼다는 자체 개발을 이어가고, 닛산은 영국 스타트업 웨이브 테크놀로지스의 기술을 활용한다. 지도와 엔터테인먼트 애플리케이션 등도 각사가 별도로 개발한다. 비용 부담을 줄여야 하는 공통 기반에서는 손을 잡았지만, 완성차의 차별성을 좌우하는 기술까지 하나로 합치지는 못한 것이다.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양사는 당초 지난 7월 합의를 발표하려 했지만, 닛산이 개발한 기술의 사용 대가와 지식재산권 소유 문제를 놓고 협상이 길어졌다. 닛산의 한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자본 관계가 없는 상태의 협력은 지식재산권을 다루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중요한 합의를 발표하면서도 공동 기자회견은 열지 않았다. 2024년 제시한 5개 협력 분야 가운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아직 SDV뿐이다.
양사가 협상에 2년 반을 보내는 동안 미국과 중국 업체들은 기술 격차를 더 벌렸다. 아사히신문은 지금부터 공동 개발에 나서도 따라잡기 어렵다는 한 애널리스트의 회의적인 평가도 전했다. 반면 나카니시자동차산업리서치의 나카니시 다카키 대표 애널리스트는 요미우리신문에 "SDV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규모 확대가 필수적인 만큼 일본 대형사끼리 손잡은 것은 옳은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분명한 것은 비용 절감만으로는 선두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등 각자 개발하는 기술을 공통 기반에 얼마나 매끄럽게 얹어 소비자가 선택할 만한 차로 완성하느냐. 이번 협력의 성패는 여기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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