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북극항로와 울산항·下] 북극선박에 연료만 넣을 것인가… 울산항, '에너지 허브' 넘어 산업을 잡아야

  • LNG·메탄올·암모니아 공급 경험 강점…친환경 선박연료 거점 경쟁력

  • 북극항로 선박 기항·화물 발굴·MRO까지 연결해야 독자적 항만 경쟁력 확보

  • 벙커링항 넘어 '에너지·물류·조선' 결합한 북극산업 거점 전략 필요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세계 해운 지도가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북극항로를 새로운 국가 성장축으로 정하고 시범운항과 특별법 제정, 거점항만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상편에서 부산항과 울산항, 포항 영일만항의 준비 상황과 전략을 살펴본 데 이어, 하편에서는 울산항이 북극항로 시대에 어떤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22일 북극항로 시범운항 컨테이너선인 팬스타 아크로PANSTAR ACRO호가 부산신항에서 출항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북극항로 시범운항 컨테이너선인 '팬스타 아크로(PANSTAR ACRO)'호가 부산신항에서 출항했다. [사진=연합뉴스]


북극항로 시대 울산항의 가장 현실적인 경쟁력은 이미 갖춰져 있다.

석유와 석유화학제품을 취급하며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액체화물 처리 경험과 저장시설, 배관망, 정유·석유화학산업, 그리고 HD현대중공업으로 대표되는 조선산업이다.

여기에 LNG와 메탄올, 암모니아로 이어지는 차세대 선박연료 공급 경험도 더해지고 있다. 정부가 부산항은 컨테이너, 울산항은 에너지라는 역할 분담을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배에 연료만 공급하는 항만에 머물 것인지, 화물과 선박, 에너지와 연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항만으로 갈 것인지가 울산항의 과제다.
 

LNG·메탄올·암모니아 모두 공급…울산이 먼저 만든 경쟁력


친환경 선박연료 분야에서 울산항이 쌓아온 실적은 뚜렷하다.

울산항은 메탄올 선박연료 공급 경험을 축적해왔고, 지난해 9월에는 국내 최초로 메탄올 이중연료 드라이벌크선에 그린메탄올 830톤을 공급했다.

올해 2월에는 자동차운반선의 하역작업과 동시에 LNG를 공급하는 상업 벙커링에 성공했고, 4월에는 암모니아 추진 가스운반선에 청정 암모니아 600톤을 공급했다.

LNG와 메탄올, 암모니아까지 실제 선박에 공급하면서 차세대 선박연료 공급항으로서 경험의 폭을 넓힌 것이다.

국제해운의 탈탄소 전환이 본격화하면서 이 같은 대체연료 공급능력은 향후 항만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꼽힌다.

변재영 울산항만공사 사장은 암모니아 공급 당시 "울산항의 에너지 기반시설과 그동안 축적된 급유 경험 및 역량을 바탕으로 이뤄진 사례"라며 "친환경 선박연료 공급 능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주유소'에 머물면 안 된다


그러나 친환경 벙커링만으로 북극항로 시대 울산항의 미래를 담보하기는 어렵다.

울산항은 당분간 부산항의 부족한 벙커링 기능을 보완할 수 있지만 부산항도 2030년을 목표로 자체 친환경 벙커링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의 연료 공급 능력이 갖춰질 경우 울산항이 벙커링만으로 차별화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울산항에는 '연료 공급'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그 첫 번째가 화물이다.

지난 20일 울산항만공사가 네덜란드 선사 로열 바겐보그, 한국해양진흥공사와 체결한 협약에서도 주목해야 할 대목은 벙커링만이 아니다.

세 기관은 한국과 북미를 오갈 잠재화물을 발굴하고 북극항로 운항 가능성을 공동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운항 매뉴얼 구축과 내빙등급 선박 확보에도 협력한다.

올해 최대 4척의 북극항로 통과 선박이 울산항에 기항해 연료를 공급받거나 화물을 하역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변재영 울산항만공사 사장은 "정부 북극항로 정책 이행을 위한 실질적 기반이 될 것"이라며 "국내 해운업계의 북극 운항 역량을 높이고 항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북극을 통과한 선박이 울산항에서 실제 화물을 싣고 내리기 시작한다면 단순 벙커링을 넘어 북극항로 물류망에 직접 편입되는 첫 시험대가 된다.

 

북극에서 무엇을 가져오고, 울산에서 무엇을 보낼 것인가


북극항로의 성패는 결국 화물에 달려 있다.

울산에는 정유·석유화학과 비철금속, 자동차, 조선산업이 항만 배후에 밀집해 있다.

북극권의 에너지와 원자재를 들여오고 울산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제품을 다시 수출하는 양방향 물류구조가 형성된다면 울산항은 단순 기항지를 넘어 공급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북서항로도 주목할 만하다. 울산에서 캐나다 퀘벡까지 북서항로를 이용하면 운항거리는 약 1만 3500㎞로 파나마운하 경유보다 약 35% 짧다.

다만 러시아 제재와 연중 운항 가능성, 운임과 보험료, 쇄빙 비용, 실제 화주 수요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결국 어떤 화물이 어느 국가에서 들어오고, 울산산업단지의 어느 기업이 실제 수요자가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찾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항만의 경쟁력은 시설 규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제 화물을 움직일 화주와 선사를 확보해야 비로소 항로가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MRO까지 연결…울산형 북극항로 전략


울산항의 또 다른 확장축은 조선과 선박 유지·보수·정비(MRO)다.

북극항로 운항 선박은 일반 상선보다 선체와 추진체계, 통신·항해장비 등에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된다.

울산에는 HD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조선산업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북극항로 선박이 울산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고 연료를 공급받는 데 그치지 않고 정비와 기자재 공급까지 받을 수 있다면 한 번의 기항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울산항만공사도 '2040 비전'에서 차세대 선박연료 공급시장 활성화와 함께 MRO 기술 기반 북극항로 개척 지원을 실행과제로 제시했다.

부산의 최대 자산이 컨테이너와 환적 네트워크라면 울산은 에너지와 제조업, 조선산업을 갖고 있다.

같은 '북극항로 거점항'을 놓고 동일한 기능을 경쟁하기보다 각 항만의 산업 기반을 중심으로 역할을 차별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TF 넘어 사업으로…울산시 역할도 중요


울산시는 올해 1월 '울산항 기반 북극항로 시대 선도 전담(TF)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울산항만공사와 울산지방해양수산청, 연구기관, 항만·물류업계 등이 참여해 북극항로와 해운·에너지·물류를 연결하는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관건은 구상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항만산업 관계자들도 "전문가북극항로 통과선박 유치와 친환경 선박연료 공급, 북극권 화물 발굴, MRO·조선기자재 산업 연계 등이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오는 12월 북극항로 특별법이 시행되면 정부 지원과 거점 기능을 둘러싼 항만도시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울산에는 다른 항만이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려운 에너지 저장·공급망과 정유·석유화학 산업, 세계적인 조선산업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북극을 오가는 선박이 울산에서 연료를 넣고, 화물을 내리고 싣고, 정비와 기자재 서비스를 받은 뒤 다시 바다로 나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울산항이 그리는 북극항로 전략의 핵심이다.

북극항로의 기회는 바다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울산이 이미 가진 산업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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