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오디세이 강론 ① | 진리·정의·자유] 트로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3000년 전 세계의 길목 트로이에서, 영화 《오디세이》의 섬 파비냐나까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질문이 남는다. 오디세우스는 왜 10년 동안이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이타카는 어디일까. 키클롭스와 세이렌, 키르케와 칼립소의 섬은 과연 실제로 존재했을까.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아주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있다.

“그렇다면 트로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읽거나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막연히 트로이가 그리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의 주역들이 대부분 그리스의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로이는 지금의 그리스에 없다.

트로이의 유적은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 차나칼레주 히사를르크(Hisarlık)에 있다. 그리스 본토에서 에게해를 건너 동쪽으로 가야 만나는 소아시아의 서북단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트로이의 위치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트로이 유적은 다르다넬스 해협 남쪽 입구에서 불과 약 4.8㎞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숫자 하나가 트로이의 역사를 새롭게 보게 한다. 트로이는 왜 그곳에 있었는가. 지도를 펼쳐보자.

남쪽에는 에게해가 있다. 에게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좁고 긴 다르다넬스 해협이 나온다. 그 해협을 통과하면 마르마라해이고, 다시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면 거대한 흑해가 펼쳐진다.

에게해 → 다르다넬스 해협 → 마르마라해 → 보스포루스 해협 → 흑해.

오늘날의 세계지도에서도 중요한 길이다. 3000년 전의 세계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트로이는 바로 그 길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네스코 역시 트로이가 수천 년 동안 아나톨리아와 발칸, 에게해와 흑해 지역을 이어주며 이주와 교역, 지식 전달의 문화적 교량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트로이와 그 주변에는 약 8000년에 걸친 인간 거주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트로이의 지리적 위치를 알고 나면 호메로스의 세계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한 여자였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돌아갔다. 분노한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그리스 여러 세력이 연합했고, 바다를 건너 트로이를 공격했다. 그렇게 10년 전쟁이 시작됐다고 호메로스의 세계는 전한다.

그러나 지도를 보고 나면 질문이 하나 더 생긴다. 과연 아름다운 헬레네 한 사람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와 신화를 구별해야 한다. 실제 트로이 전쟁이 호메로스의 이야기 그대로 일어났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헬레네 때문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실제로 싸웠다는 것도, 거대한 목마가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로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트로이라는 도시가 존재했다는 것은 고고학적 사실이다. 그 도시가 당시 세계의 중요한 해상 통로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실제 역사적 충돌이 호메로스의 거대한 서사로 발전한 것이라면, 그 배경에 교역과 해상 통로, 세력권과 패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트로이 전쟁의 실제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역사가 아니라 또 다른 신화를 쓰게 된다.
 
이미지=챗GPT 생성


중요한 것은 지리다.

역사에서 지리는 좀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000년 전에도 ‘길목’은 돈이고 권력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강대국과 도시의 흥망에는 길이 있었다.

육상의 길이 있고 바다의 길이 있다. 사람이 지나가고 상품이 지나간다. 상품을 따라 돈이 움직이고, 돈을 따라 권력이 움직인다. 그리고 권력이 충돌하는 곳에서 때로 전쟁이 일어난다.

트로이는 그 길 위에 있었다.

에게해 세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흑해로 향하려면 다르다넬스라는 좁은 문을 지나야 한다. 오늘날에도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의 전략적 중요성이 큰 이유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바다는 그대로이고 해협도 그대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트로이에서 멀지 않은 차나칼레의 다르다넬스 맞은편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갈리폴리반도가 있다. 트로이의 시대와 갈리폴리 전투 사이에는 3000년 가까운 시간이 놓여 있지만, 사람들이 다투었던 지리적 공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왜인가.

길목이기 때문이다. 트로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래서 신화책을 한 권 더 읽는 것보다 세계지도를 한 번 펼쳐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세계인은 또 하나의 섬을 찾기 시작했다. 3000년의 세월이 흐른 2026년, 《오디세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진짜 트로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튀르키예 차나칼레와 히사를르크를 바라본다. 다른 한쪽에서는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를 찾아 지중해의 작은 섬으로 향한다.

그곳이 이탈리아 시칠리아 서쪽의 파비냐나(Favignana)다.

여기서 실제 역사와 영화를 다시 구별할 필요가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돌아가려 했던 실제 서사시 속 이타카는 오늘날 그리스 이오니아해의 이타카와 연결된다. 그러나 놀란 감독은 영화 속 이타카의 주요 장면을 실제 이타카가 아니라 이탈리아 파비냐나에서 촬영했다.

파비냐나는 시칠리아 서쪽 트라파니 앞바다에 있는 에가디 제도의 섬이다. 섬의 모양 때문에 ‘나비의 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놀란은 이곳을 오디세우스의 고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파비냐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산타 카테리나 성(Castello di Santa Caterina)은 영화에서 오디세우스의 궁전으로 변신했다.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가 등장하는 이타카 장면의 중요한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다. 영화 제작진은 파비냐나뿐 아니라 시칠리아 주변의 에가디 제도와 에올리에 제도에서도 바다와 섬 장면들을 촬영했다.

파비냐나를 선택한 이유도 흥미롭다.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루스 드용은 이곳의 높은 지형에서 사방으로 바다가 보이고 촬영에 사용한 배들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가상의 바다가 아니라 배우들이 실제 바람을 맞고 실제 바다를 바라보며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놀란다운 선택이다.

인구 3000명의 섬에 찾아온 ‘오디세이 효과’. 그리고 영화가 개봉하자 작은 섬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파비냐나의 상주인구는 약 3000명이다. 《오디세이》 촬영 과정에서 약 500명의 현지 엑스트라와 인력이 고용됐고, 현지에서 발생한 직접적인 지출만 지방 당국 추산 100만~200만 유로에 달했다. 영화 개봉 이후에는 북미와 중동, 인도 등의 투자자들까지 고급 관광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방 당국은 영화 제작과정과 의상·장비 등을 보여주는 상설 전시도 추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섬 주민들이 벌써 다음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한 편이 세계적인 관광지를 탄생시키는 ‘스크린 투어리즘’의 힘 때문이다. 로이터가 인용한 유엔 관광 관련 추정에 따르면 인기 영화에 등장한 여행지는 방문객 증가 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 파비냐나 역시 영화의 성공을 관광산업으로 연결하면서도 오버투어리즘은 피하려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것이 2026년의 새로운 《오디세이》다.

3000년 전에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를 헤맸다. 3000년 뒤에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오디세우스의 흔적을 찾아 바다를 건넌다.

하나의 영화가 두 개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디세이》를 보고 난 뒤 두 장의 지도를 함께 펼쳐보기를 권하고 싶다.

첫 번째 지도에는 튀르키예의 트로이가 있다.

차나칼레와 히사를르크, 그리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찾는다. 그 아래 에게해를 보고 위쪽으로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루스, 흑해까지 눈으로 길을 이어본다. 그러면 왜 트로이가 그곳에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두 번째 지도에는 이탈리아의 파비냐나가 있다.

시칠리아를 찾고 서쪽 트라파니 앞바다를 바라보면 작은 섬 하나가 보인다. 영화 속에서 그곳은 이타카가 됐다. 오디세우스가 목숨을 걸고 돌아가려 했던 집, 페넬로페가 기다렸던 집,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성장했던 집이다.

하나는 역사의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지도다.

하나는 3000년 동안 인간을 불러들인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한 편이 세계인의 시선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작은 섬이다.

그러나 두 장소를 움직이는 힘에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사람은 길을 따라 움직인다.

3000년 전 사람들은 교역과 전쟁을 위해 에게해를 건넜다. 오늘의 사람들은 영화와 이야기와 문화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과거에는 상품이 사람을 움직였다면 오늘은 콘텐츠가 사람을 움직인다. 신화가 문학이 되고, 문학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다시 관광과 경제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3000년을 살아남은 《오디세이》의 힘인지도 모른다.

트로이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남았다. 호메로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남았다. 오디세우스가 탔다는 배는 사라졌지만 인간은 여전히 그가 지나갔다고 믿는 바다를 찾아간다.

그리고 2026년 여름, 놀란의 카메라는 그 오래된 이야기에 다시 세계의 눈을 돌려놓았다.

그래서 《오디세이》를 보고 난 뒤 첫 번째 여행지를 묻는다면 나는 두 곳을 말하고 싶다.

트로이를 알고 싶다면 튀르키예 차나칼레로 가라.

놀란의 《오디세이》를 만나고 싶다면 이탈리아 파비냐나로 가라.

두 곳 사이에는 3000년의 신화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여행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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