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개인·기업 '탈엔화' 가속… 외화예금 증가폭 역대 최대

  • 4~6월 4조엔 늘어 26조엔… 개인 해외증권 투자도 1년새 23% 급증

  • 엔저 우려에 달러 쌓는 기업들… 민간의 외화 매수가 다시 엔저 압력으로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만성적 엔저 속에 일본의 가계와 기업이 엔화 자산을 외화로 분산하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앞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올해 4~6월 외화예금 증가액은 외화예금이 전면 자유화된 1998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국내 은행의 외화예금 4~6월 평균 잔액은 약 26조1000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늘었다. 달러 강세로 엔화 환산액이 불어난 영향을 빼도 유입 규모가 컸다. 증가액 3조9772억엔은 2025년도 일본 무역적자(1조7000억엔)의 두 배를 웃돈다. 정부와 일본은행이 2022~2024년 모두 7일간 시장에 개입하며 사들인 엔화가 하루 평균 3조5000억엔이었다. 외화예금 증가액만 놓고 보면 당국의 하루 평균 엔화 매수 개입 규모를 웃돈다.

개인이 맡긴 외화예금은 약 6조7000억엔으로 8% 늘었다. 소니은행은 지난 5월 외화예금 잔액이 8000억엔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7000억엔을 넘어선 2025년 2월에서 1년 3개월 만이다. 그동안 외화 거래는 매매 비용이 싼 FX 마진거래가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노후 자금에 여유가 있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투자자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외화예금뿐 아니라 해외 주식으로도 자금이 향한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가계가 보유한 해외 증권투자 잔액은 3월 말 46조4618억엔으로 1년 새 23% 늘었다.

닛케이는 엔화가 이미 역사적인 약세 수준인데도 외화 매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 일본 개인투자자는 엔화 가치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싸진 달러 등 외화를 사들이는 이른바 '저가 매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엔화 반등을 기다리지 않고 비싼 값에도 외화를 새로 사들인다. 엔화 가치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외화 매수를 부르고 있다는 게 닛케이의 진단이다. 사들이는 통화도 달러 일변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라 다카후미 SMBC신탁은행 개인금융 기획부장은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유로 등 여러 통화로 분산하는 예금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역시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외화 보유를 늘리고 있다. 4~6월 기업의 외화예금은 약 19조3000억엔으로 1년 전보다 22% 늘었다. 우에노 쓰요시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에 "엔화가 더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뿌리 깊어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엔화로 바꾸는 것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을 검토하는 기업이 필요한 달러를 미리 확보해 두는 측면도 있다고 봤다. 일본 기업은 외화표시 회사채 발행도 늘리고 있다.

엔화 가치는 7월 한때 1달러=163엔대로 39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밀렸다. 정부와 일본은행이 7월 말 엔화 매수 개입에 나섰지만, 동일본대지진 직후인 2011년 1달러=75엔대라는 전후 최고치와 비교하면 가치는 아직 반토막 아래다. 단기금리 스와프 시장이 일본은행의 9월 금리 인상 확률을 80%로 반영하고 있는데도 엔 매수는 좀처럼 붙지 않는다. 가계와 기업의 외화 매수가 엔화를 파는 구조적 수급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엔저 우려가 외화 매수를 낳고, 그 외화 매수가 다시 엔저를 부추기는 순환이다. 문제는 이 순환의 청구서가 금융시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 재무성이 20일 발표한 7월 무역통계에서 수입액은 12조1462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8% 증가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특히 원유 수입액은 1조4089억엔으로 87.8% 급증했다. 수입 물량 증가율은 5.5%에 그쳤지만 엔화 기준 원유 수입단가는 78.0% 뛰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 가격이 오른 데다 엔저까지 겹친 결과다.

엔저와 원유값 상승으로 늘어난 수입비용은 그만큼 일본의 소득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7~9월 전기·가스 요금 보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보조가 끊기면 에너지 가격 상승이 그대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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