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상 첫 소비세 인하…식료품 8%서 1%로

  • 2027년부터 2년간… 중·저소득층은 '실질 0%'


  • 연 5조엔 재원 대책은 미정… 엔화·국채시장 불안 우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AFP·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식료품 소비세율을 현행 8%에서 1%로 낮추기로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1989년 소비세 도입 이후 처음으로 세율이 내려간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가계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지만, 2년간 10조 엔(약 90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함에도 구체적인 조달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재정 악화 우려가 장기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로 이어져 감세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5일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방침을 확정했다. 인하 대상은 주류와 외식을 제외한 식료품으로, 2027년 4월부터 2년간 한시 적용된다. 관련 법안은 올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한다.

중·저소득층에는 식료품 소비세 1%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소득에 따라 지급한다. 지급 대상은 일정 수준의 근로소득이 있고 세금·사회보험료를 부담하는 개인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중·저소득층의 식료품 소비세 부담을 '실질 0%’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 같은 감세와 지원을 2029회계연도 소득연동형 지원제도가 본격 도입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세금과 사회보험료,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중·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이번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올가을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조기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번 감세로 국민 1인당 연간 3만 6000엔의 부담 경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식료품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6월 전국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신선식품을 제외한 식료품은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엥겔계수는 2025년 28.6%로 198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일본 정부는 저소득층일수록 엥겔계수가 높은 만큼 감세로 생활을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연소득 300만~400만 엔인 가구는 이번 세율 인하로 연간 세 부담이 약 4만 7000엔 줄어든다. 다만 원재료비와 인건비, 물류비 상승이 계속되면 세율 인하 폭만큼 식료품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감세 혜택이 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맞벌이 등 근로자 2인 이상 가구를 기준으로 식료품 소비세 부담액은 연소득 200만 엔 이하 가구가 연 4만 6000엔가량, 1500만 엔 초과 가구가 8만 8000엔가량으로 약 2배 차이가 난다. 반면 소득에서 차지하는 부담 비율은 200만 엔 이하 가구가 2.2%로, 1500만 엔 초과 가구(0.5%)의 네 배가 넘는다. 소득 대비 부담은 저소득층이 훨씬 크지만, 세율을 일률적으로 낮추면 감세액은 고소득층에 더 크게 돌아가는 구조다.
 

재원 조달 우려


더 큰 관건은 재원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식료품 소비세 인하와 중·저소득층 지원을 위해서는 연간 5조 엔, 2년간 10조 엔 규모의 재원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적자국채에 의존하지 않고 법인세 등의 세제 감면과 보조금 사업을 재검토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정부·여당에서는 외환시장 개입에 필요한 자금을 운용하는 외국환자금특별회계의 잉여금을 감세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2025회계연도 잉여금은 5조565억 엔으로, 이 가운데 70%는 이미 일반회계로 전입돼 방위비 등에 쓰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연말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에 맞춰 방위비를 더 늘릴 계획이어서 추가 재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환율 개입에 따른 달러 매각 수입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이를 재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원 문제는 시장으로도 번진다. 요미우리신문은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재정 악화 우려로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엔화 약세가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소비세 인하에 따른 가계 부담 경감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미국도 이번 감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소비세 감세에 대해 “선택지는 감세를 시행하거나 인플레이션 억제책을 펴는 두 가지다. 나라면 후자를 우선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엔화 약세보다 일본 국채 매도다. 이 관계자는 일본 금리가 세계 금리의 ‘닻’ 역할을 해왔다며, 일본의 금리 상승이 주요국 장기금리를 더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하라 관방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감세의 목적과 재원 확보 방침을 정중히 설명하겠다”며 미국의 이해를 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식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슈퍼마켓의 도시락·반찬과 포장 음식에는 1%의 세율이 적용되는 반면, 식당에서 먹는 음식에는 현행 10%가 유지돼 외식업체가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부 외식업체는 포장 전용 상품 개발에 나섰다. 일본푸드서비스협회 등 외식업계 4개 단체는 정부에 계산대 시스템 변경 비용 지원과 프리미엄 상품권 발행 등을 통한 수요 진작을 요구하고 있다. 

농가의 부담도 늘어난다. 일본 농가 상당수는 연매출 1000만 엔 이하의 면세사업자로 농산물 판매에 포함된 소비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식료품 소비세가 내려가면 매출은 줄어드는 반면 비료와 농기구를 살 때 내는 소비세는 그대로여서, 환급 제도가 없는 상태로는 부담만 커진다. 일본 정부는 농업 종사자와 외식업계에 대한 지원책도 검토하고 있다.

2년 뒤 소비세율을 다시 8%로 올릴 수 있느냐도 정치적 쟁점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년 뒤 내가 책임지고 세율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율 환원에 앞선 2028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사실상의 증세를 내걸고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감세 법안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여당이 참의원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여서 올가을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 처리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 내 이견도 남아 있다. 자민당은 5일 임시총무회에서 이번 방침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지만, 감세에 반대해온 일부 의원들은 회의에 불참했다. 총무회 구성원 25명 가운데 9명이 자리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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