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유관 단체 건물을 통째로 빌린 뒤 전대차(재임대) 계약을 맺어 세입자들의 보증금 100억 원을 떼먹은 대형 전세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세입자들은 “한국건설기술인협회가 공공기관이라 안전하다”는 중개업자들의 말을 믿고 계약했으나, 건물을 임차한 소버린스테이트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전기차 충전소 사업에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이 건물의 원주인인 협회의 배상 책임을 부정하면서,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세입자들의 피해 구제는 아득한 상황이다. 본지 탐사보도팀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전대차 계약의 실태와 구조적 위험을 집중 취재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협회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1심 판단에 동의하면서도 계약서에 포함된 면책 특약이 문제된다고 봤다. 최 교수는 "임대인이 전대를 승인했다면 원래는 최종 전차인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이번 계약서에 담긴 '임대인·임차인 간 협의사항에 대해 협회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특약으로 인해 책임 소재가 협회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차인은 그런 면책 조항이 있는 경우에는 애초에 서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짚었다.
소버린과 공인중개사들이 사용했던 '공공'이란 키워드 또한 세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던 요소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국토교통부 소관 법정단체가 건물주라는 사실이 세입자들에게 상당한 신뢰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세입자 입장에서 '협회 건물이니 안전하다'고 믿은 것은 거래 통념상 무리한 판단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다만 "전대차 관계에서 원임대인과 전차인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현행법의 법리가 이번 판결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며 이 법리 자체가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세입자들은 "협회가 소버린의 부실 운영을 사실상 방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방조'를 입증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석승일 솔루젠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법률적 의미의 '방조'는 소극적으로 방관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적극적 행위가 요구된다"며 "이번 사건에서 임대인이 방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즉 협회가 단순히 소버린의 영업 방식을 인지한 것만으로 책임을 제기하기 어렵고, 적극적으로 부실 운영에 가담했어야 방조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석 변호사는 "임대인이 공간이 범죄에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도 제공했다는 등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인에게 전대차계약 내용까지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임대인이 공공기관이나 협회라는 사실도 결론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석 변호사는 임대인이 방조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고 짚었다. 판례상 단순히 전대차를 승인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불능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 △임대인 명의 계좌로 보증금을 직접 수령하는 등 전차인에게 보증금이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신뢰를 부여하는 적극적 행위가 있었을 것 이 두 요건이 갖춰져야 방조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전대차 계약의 근본적인 취약성은 법률 구조 그 자체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김대진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운영위원장(변호사)은 전차인이 임대인에게 갖는 권리의 한계를 지적했다. 전차인은 민법상 임대인에게 직접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임차인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통임대 업체의 자금 구조도 문제점으로 짚었다. 김 변호사는 "업체들은 임대인과 계약할 때는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이는 반면, 전차인과 계약할 때는 초기 사업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보증금을 높이고 월세를 낮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차액을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메워야 하는 구조가 되면서, 자금난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설명이다.
이어 김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에게 인정되는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이 전차인에게는 준용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원 임대차 조건에 대해 전차인에게 고지할 법적 의무 자체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김 변호사가 계약 이후 전차인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지점을 지적했다면, 우원상 법무법인 지율 대표변호사는 계약 이전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비대칭'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전대인은 임대인과 달리 부동산등기부등본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전차인 입장에서 상대방이 진정한 권리자인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우 변호사는 "전대인이 임대인과 체결한 임대차계약서 교부를 거부하는 시점부터 이미 매우 위험한 신호"라며 전대차는 민법 제629조 제1항에 따라 임대인의 동의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만큼 그 동의 여부가 반드시 계약서상 특약으로 명시돼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제안은 크게 두 갈래로 갈렸다. 전대 업체가 애초에 시장에 들어오는 문턱을 높이고 정보 제공과 제재를 강화하자는 쪽, 그리고 보증금 자체가 새어나갈 수 없도록 자금 구조를 바꾸자는 쪽이다.
엄정숙 변호사는 먼저 법정단체 등 공공성 있는 기관이 전대업체를 선정할 때 자본금이나 보증보험 가입 여부 등 최소 요건을 의무화하는 방안에 대해 그는 "법 개정 없이도 소관 부처의 감독 지침이나 각 법정단체의 정관·내규 개정을 통해 도입을 검토할 수 있어 현실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대인의 재무 상태와 원계약 조건을 세입자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규정 신설에 대해서는 "현행 공인중개사법상 확인·설명 의무에는 원계약 해지 시 전차인의 지위나 전대인의 변제 능력에 관한 사항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별도의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공공기관이라 안전하다"는 식의 허위·과장 설명에 대한 처벌 강화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규정 자체가 없다기보다 적발과 제재의 실효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처벌 규정 신설보다는 자격정지·등록취소 등 기존 행정제재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편이 더 실효적이라고 강조했다.
석승일 변호사는 자본금이나 업력 같은 요건이 최소한의 문턱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석 변호사는 "전대인에게 자본금이나 업력 등의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최소한의 허들로 작용할 수는 있겠으나, 자본금이 회사에 실제로 유보되어 있는 금액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요건이 실질적인 해결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석 변호사는 대신 위험 자체를 자금 구조 밖으로 밀어내는 제도적 장치를 제안했다. 그는 이번 사안과 같은 계약의 경우, 보증금의 일부를 임대인 또는 제3자(신탁회사 등)에 예치하도록 하거나, 보증금에 대한 보증보험증권을 발급받아 제출하도록 하거나, 계약 내용을 관할 기관에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전차인들이 이 사건과 같이 예기치 못한 피해를 보는 상황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원상 변호사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그는 전대차 활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임대인·전대인·전차인 3자간 계약서를 작성해 전차인도 임차권등기명령을 활용할 수 있게 하거나, 임대인이 전대인과 연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향의 제도 정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원 임대인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는 신중론도 있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학과 교수는 "원 임대인에게 전대차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지우면 오히려 중간 임차인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증금 일부만 지급하고 실제보다 높은 금액으로 전세를 놓은 뒤 잠적해 버리면, 정작 책임은 자산을 가진 원 임대인에게 넘어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법리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피해를 완전히 막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임차인 스스로 계약 상대방이 누구인지, 권리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전대차라는 계약 형태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집주인과의 직접 계약이라면 소송이나 경매, 압류 등 법적 대응 수단이 있지만, 전대차는 임차인이 또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구조여서 문제 발생 시 손을 쓰기 어렵다"며 "애초에 이러한 형태의 계약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단언했다.
김대진 변호사도 실무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김 변호사는 "전차인은 소액임차인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보증금 액수가 일정 수준 이상인 전대차는 아예 하지 말라고 안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약이 불가피하다면 등기부등본상 소유자와 계약 상대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임대인의 전대 동의가 있었는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며 "다가구주택이라면 다른 선순위 전차인이 있는지, 그들의 보증금 규모는 얼마인지까지 확인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다만 "이같은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런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는 경우는 드문 만큼 확인이 안 되면 계약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소버린 전세 사기 사건은 전대차 관계에서 전차인이 원 임대인과 직접적인 법률관계를 맺지 못하는 현행 법리의 한계를 드러냈다. 불합리한 면책 특약과 제도적 허점이 맞물려 발생한 이번 사건은 전대차 계약에 대한 세입자들의 경각심과 함께 거래 전반의 안전장치를 점검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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