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 매입에 다시 나선다. 지정학적 리스크 확산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커지면서 그동안 유지해온 '금 대신 주식' 기조를 사실상 바꾼 것이다.
한은은 국내 금 생산업체와 한국거래소(KRX), 한국예탁결제원(KSD) 등과 협력해 국내 생산 금을 매입할 수 있는 거래 체계를 구축했다고 3일 밝혔다. 국내 생산업체의 해외 수출 예정 물량을 국제 금 시세를 기준으로 매입하는 방식이다.
거래는 금 생산업체가 거래 가능 물량과 희망 시기를 제시하면 한은이 금 운용 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외 수출 예정 물량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국내 금 수급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협의대량매매 방식을 활용해 시장 영향도 최소화할 계획이다.
그동안 한은은 금이 이자나 배당이 없는 무수익 자산이고 장기적으로 해외 주식보다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금 보유 확대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올해 초만 해도 기적으로 금을 매입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 확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고, 우리나라의 금 보유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점을 고려해 보유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생산 금을 활용할 수 있는 매입 경로가 다양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정희섭 외자운용원장은 "금 가격이 적정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가격이 많이 내려오면서 매입 부담이 다소 완화된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실물 금뿐 아니라 금 현물 ETF 투자도 이미 진행했다. 정 원장은 "ETF도 금 투자 채널 가운데 하나로 검토하고 있으며 올해 2분기 아주 일부 매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국내 생산 금 매입 시기와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내 생산업체가 해외 수출 예정 물량을 제시해야 거래가 가능한 구조인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매입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예탁결제원의 금 보관 인프라 구축 등 관련 준비가 마무리 되면 국내 생산 금 매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은은 2013년을 마지막으로 금을 추가 매수하지 않고 있다. 채권이나 주식 등에 비해 유동성이 낮아서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량은 주요국 중앙은행 중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은은 104.4톤 금을 보유해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39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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