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3)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늑대가 들어오다 - 전호후랑(前虎後狼)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살다보면 산을 우회하려다 강을 만나기도 한다. 되돌아가자니 너무 멀리 왔고 강을 건너자니 막막하다. 호랑이를 피해서 들어간 게 하필 사자굴이라면 또 어찌 해야 하나. 그야말로 진퇴양난, 눈앞의 곤경을 벗어나려다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빠지고 작은 화를 피하려다 큰 화를 당한 꼴이다. 이런 낭패를 당하면 자칫 목숨을 잃기도 하고 한 국가가 망하기도 한다. 후한(後漢)이 딱 그러했다. 외척의 전횡을 막으려다 환관들이 권력을 쥐고 설치는 바람에 나라가 망했다. 

후한은 건국 초기부터 어린 황제들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외척이 득세하고 나라가 흔들렸다. 제4대 황제 화제(和帝)가 10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태후 두씨가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했고, 태후와 그의 오빠 두헌을 앞세운 두씨 일족이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다. 장성한 황제의 불만이 날로 커지자 두헌이 황제를 시해할 마음을 먹게 되었고, 이를 눈치챈 화제가 환관들을 앞세워 두씨 일족을 전격 숙청했다. 

이로써 황제가 권력을 되찾았을까?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가 어디 그렇게 간단하던가. 외척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환관이란 신흥권력이었다. 외척을 몰아내는 데 일등 공신이 된 환관들은 황제의 눈과 귀를 독점하면서 국정을 쥐락펴락했다. 환관들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환관정치는 소설 《삼국지》의 서막을 장식하는 '십상시(十常侍)의 난'으로 궤멸될 때까지 100년 가까이 이어지며 온갖 폐해를 낳고 후한의 몰락을 재촉했다. 

화제가 환관의 힘을 빌려 외척을 제거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 원나라 문인 조설항이 역사평론서《평사(評史)》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두씨 일가를 제거했으나 환관의 권세가 이로부터 치솟았으니, 속담에 이르기를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前門拒虎 後門進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권력의 속성과 제도의 폐해를 꿰뚫어 보는 눈이 탁월했다고 전해지는 조설항은 민간 속담에 빗대 후한 초기 정치의 난맥상을 묘사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겼다.

'전문거호 후문진랑(前門拒虎 後門進狼)'은 ‘한 가지 어려움이 지나가자마자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친다’는 것으로, 재난과 근심이 끊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아울러 '앞의 위험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끌어들이는 결과가 되는 상황'을 비유하기도 한다. 흔히 네 글자로 줄여 '전호후랑'이라고 한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폐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핵심은 과연 경찰에 수사권을 다 맡겨도 뒤탈이 없겠냐는 거다.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믿을 수 있겠냐는 거다. 민심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허나 민심보다 당심에 목을 매는 정치 퇴보의 시대다. '닥치고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강성지지층의 요구를 거스를 뱃심을 지닌 의원도 찾아보기 힘들거니와 절대의석수를 앞세워 입법폭주하는 민주당의 기세로 볼 때 보완수사권 폐지는 코앞에 닥친 현실로 보인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대한 검사의 일반적인 수사지휘권이 폐지되었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폐지되고 검사의 역할이 공소청 업무로 국한되면 13만 공룡 경찰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기관으로 거듭나게 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수사권을 독점했을 때 있었던 폐해가 경찰에 수사권을 몰아주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더구나 권력 앞에서 검찰보다 더 취약한 게 경찰이다. '정치경찰'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검사에 그토록 치를 떨던 사람들이 왜 정치경찰 걱정은 안 하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늦은 밤 귀가하던 여고생 이채원을 강간하려다 살해한 '장윤기 사건'을 경찰이 축소·은폐했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던 부실수사가 광주지검 검사의 보완수사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남으로써 그렇잖아도 취약하던 경찰에 대한 신뢰를 산산조각내고 민주당의 보완수사권 폐지 스텝을 꼬이게 할 줄 누가 알았으랴. 하늘의 섭리란 이처럼 오묘하다. 돌이켜보면 자유당 독재를 끝장낸 4·19 혁명도 그랬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실종 27일 만에 홀연 마산 앞바다에 떠오름으로써 묻힐 뻔했던 3·15 부정선거가 재조명되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던가. 

장윤기 사건에는 일선 경찰서부터 최고위 수사기관인 국수본까지 부실 대응과 증거 인멸, 사건 축소와 조작 수사 의혹에 연루되는 등 국민이 설마하던 경찰의 민낯이 여과없이 망라되어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그대로 묻힐 일들이었다. 어디 장윤기 사건뿐인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구리 영화감독 살인 사건도 모두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장윤기 사건은 국민들에게 보완수사권 문제가 나와 무관한 일이 결코 아님을 각성시켰고,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은 찬성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당내에서도 점차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위헌이라고까지 하는데도 민주당 강경파들은 마이동풍이다. 진보의 빅 스피커 유시민은 당 외곽에서 대통령의 모호한 의중을 저격하고, 친문 세력은 대통령과 검찰의 공소취소 거래설까지 다시 거론하며 보완수사권 폐지를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밤마다 SNS에서 온갖 메시지를 쏟아내며 만기친람하는 이 대통령이 이 문제에서만큼은 침묵하고 있다. 

한동훈 의원이 민주당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으나 어느 의원도 응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주최한 범죄 피해자 토론회에도 대거 불참했다. 민주당은 왜 보완수사권 관련 토론을 회피할까? 폐지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8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형사사법체계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일을 밀어붙이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이 보이는 비겁하고 굴욕적인 모습에 국민들이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보완수사권은 검사의 특권이 아니다. 시민의 권리이고 피해자의 권리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의 권리다. 장윤기 사건과 구리 영화감독 살인 사건 피해자 가족의 권리다. 국민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다.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힘 없고 백 없는 서민들이 가장 먼저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민주당은 그 후과를 어찌 감당하려나. 여론이든 민심이든 당내 이견이든 개의치 않고 마치 주술에 걸린 듯 막무가내로 검수완박을 외치는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을 되뇌이며 검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기에 앞서 "믿었던 경찰이 우리 편이 아니라 살인범 편이었다"는 고 이채원양 어머니의 절규에 답해야 한다.

순항하던 일본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여성의 천황 승계를 찬성하는 민심을 외면하고 무리하게 통과시킨 '황실기본법' 개정이 트리거가 돼 물가 등 다른 불만과 겹치면서 그리됐다고 한다. 부동산 민심은 흉흉하고 투기판이 된 증시는 잠재적 시한폭탄이 되었다. 도를 넘은 당내 경선 갈등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권이 처한 상황이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은 이때, 보완수사권 폐지 강행이 지지율 폭락의 트리거가 되지 않을 거라고 대통령과 민주당은 장담할 수 있을까?

보완수사권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자연스레 후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검찰이라는 거악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이라는 또다른 권력기관에 수사권을 몽땅 넘겨주려 하는 작금의 상황이 후한 화제가 외척을 몰아내기 위해 환관을 끌어들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다. 앞일은 누구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우리가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와 성어를 공부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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