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원래 불확실한 도전이다.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회사를 세우는 창업자는 매일 위험을 감수한다. 투자자 역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기업에 자금을 맡긴다. 창업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아서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4년 기업생멸행정통계'를 보면 새로 창업한 기업이 1년 후까지 생존한 비율은 64.4%, 5년 생존율은 36.4%에 그쳤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지난 10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벤처 투자가 확대되고, 팁스(TIPS)를 비롯한 민관 협력 프로그램은 기술창업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도 꾸준히 늘었다. 창업은 더 이상 청년들만의 도전이 아니라 국가 성장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재명 정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가창업시대'를 선언했다. 아이디어 단계부터 사업화까지 국가가 지원하고, 전 국민 창업 오디션인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모두의 창업은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5000명을 뽑는 1기 도전자 모집에 전국에서 6만3000여 명이 몰렸다. 합격자 면면도 화제를 모았다. 10명 중 7명은 청년·비수도권 거주자였고, 13세부터 78세까지 나이도 폭넓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합격자도 나왔다. 지난달 16일엔 성대하게 1기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창업 여정에 돌입했다.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출범식이 열린 지 불과 이틀 만에 합격자들의 이메일 주소와 창업 아이디어 등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당사자들에게 통보됐다. 외부 해커의 공격이 아니라 사업 운영에 참여한 내부 업체에서 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은 충격을 더했다. 여기에 유출 시점이 출범식 전날이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가 사고를 인지하고도 출범식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모두의 창업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를 향한 시선도 싸늘해졌다. 창업 정책의 공정성과 운영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출 사태 일주일 후 합격자 제출 아이디어의 영업비밀 원본증명 등록 지원 등 피해 회복 대책을 내놓았지만 신뢰 회복은 더딘 상황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창업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모태펀드 규모를 확대하고 창업 지원사업을 늘려도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효과는 반감된다. 창업자는 정부 사업이 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도전하고, 투자자는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장기 투자를 결정한다. 신뢰를 잃은 정책은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쇄신이 아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제도 개선이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참여 업체 선정 과정은 공정했는지,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관리 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장치는 실효성을 갖췄는지 원점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 1만명의 창업자를 발굴하는 2기 사업을 앞둔 만큼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업 운영 전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
예비 창업부터 사업화, 연구·개발(R&D), 정책자금, 해외 진출까지 창업기업의 성장 전 주기를 책임지는 중기부는 지난 수년간 K-창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이 같은 성과를 계속 이어가려면 이번에 창업 정책의 공정성과 운영의 투명성을 더욱더 확실히 증명해야 한다.
창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도전이다. 그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마지막 버팀목은 정부에 대한 믿음이다. 공정한 원칙과 책임 있는 정책 운영으로 신뢰를 회복한다면 국가창업시대는 구호를 넘어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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