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2)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다 - 방민지구 심우방천(防民之口 甚於防川)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일고를 찾아갔다. 지난달 29일 청룡기 야구대회 경기 도중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부적절한 응원 구호를 외친 것을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선수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광주일고는 사과를 받아들였고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고 하면서 잔뜩 주눅이 든 배재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양교의 학생들은 화해를 했고 앞으로 멋진 승부를 통해 오늘의 상처를 치유하자는 다짐도 했다. 

일주일 만에 사태는 품격있게 마무리되었다. 정치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진작에 그렇게 수습될 사안이었다. 46년 전에 일어난 교과서 속의 역사 5·18의 시대적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 아이들이 스타벅스 마케팅을 또래들 조롱놀이로 소비한 단순 실수였음에도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정치권이 앞다퉈 달려들면서 판이 커졌고, 급기야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앞날에 두고두고 족쇄가 될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지는 등 사회적 메가 이슈로 비화했다.

배재고 야구부에 내려진 징계가 지나치다는 여론이 높다. 광주일고도 아이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걸 바라지 않는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오월 정신의 핵심은 배제가 아닌 포용에 있음에도 5·18을 둘러싼 논란에는 늘 과도한 정치적 해석과 과도한 응징이 뒤따른다. 두달 전 스타벅스 사태 때도 그랬다.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처벌이 능사도 아닐 터,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이병태 부위원장이 "5·18은 성역인가?"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지나친 성역화로 아이들에게 과도한 징계를 내려선 안 된다는 거다. 이에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맞다. 5·18은 민주주의의 성역이다"라고 즉각 응수하며 논란의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친민주당 세력의 공격이 거세지자 이 부위원장은 "내 의견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라며 "기본권의 부정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부위원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진영 내 반발이 가라앉지 않자 청와대는 결국 사퇴를 권고했다. 두시간 후 이 부위원장이 이를 수용했으나 사실상 경질이다. 경질이든 사퇴든 진영의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집단 거부하는 꼴이 됐으니 통합과 실용으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이 부위원장을 영입한 탕평 인사의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자신과 일부 집단의 성역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유와 방종의 경계마저 권력이 자의적으로 정의하면 그게 바로 전체주의의 시작"이라는 사퇴의 변은 잠시나마 몸담았던 이재명 정부를 위한 마지막 고언일 것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5·18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5•18을 언급하기란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정치 쟁점화에 대한 피로감도 극심하다. 5·18을 성역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고질적인 이중잣대와 내로남불로 5·18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약화시켜 온 현 집권세력의 책임이 크다. 2000년 5·18 전야에 광주 새천년NHK 룸살롱에서 386세대 유력 정치인들이 벌인 추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최근 스타벅스 '탱크 데이' 사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한낱 커피회사의 마케팅 실수를 대통령까지 나서서 '5·18 모독'으로 몰아간 반면, 한 좌파 유투버가 내뱉은 섬뜩한 '탱크 발언'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우리 편이면 쉬쉬하며 덮을 뿐 문제삼지 않고, 우리 편이 아니다 싶으면 낙인을 찍어 사태를 키우고 집단 린치를 가한다. 매사 그런 식이니 5·18을 성역화하고 사유화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할 뿐이라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날도 더운데 때아닌 사투리 논쟁이 뜨겁다. 얼마 전 걸그룹 리센느의 거제 출신 멤버가 "(와 이리) 무섭노"라고 말한 걸 어느 경남MBC PD가 '일베식 표현'이라며 문제삼았는데, 조국 전 혁신당 대표가 가세하여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잘못된 행위"라며 대국민 일장 훈시를 했다. '일베 감별법' 운운 하면서. 생뚱맞기 그지없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그린 세상, 권력이 단어를 통제하고 생각을 통제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걸까? 그저 잊혀지는 게 두려워서일까? 무엇 때문이든 5·18 폄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일베 낙인이 찍혀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말끝 하나로 사상 검증을 하려는 일그러진 인식은 한때 진보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자신을 나락으로 빠뜨린 '가붕개' 선민의식과 '자신만이 정의'라는 독선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누르면 반발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일베로 찍힌 리센느의 '러브 어택'이 발표 2년 만에 음원 차트 1위를 하는 역주행 신화를 쓰고 말끝을 '~노'로 끝내는 놀이가 밈(Meme)이 되어 유행하고 있다지 않은가. 이런 논란 이런 성역화, 지하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바라는 바일까? 거센 역풍에 놀란 듯 결국 참전 일주일 만에 조국 전 대표가 변명인 듯 해명인 듯 모호한 글을 올리고 유감을 표명했다. 

성역(聖域)이란 무엇인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구역이다. 종교적 성격이 강한 단어다. 문제 삼지 않기로 되어 있거나 문제 삼아서는 안 되는 대상도 흔히 성역이라고 한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 성역은 가타부타 토 달지 말라는 거다. 다른 의견은 표명하지 말라는 거다. 그러니 표현의 자유가 기본인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성역'이라는 말은 세모난 네모, 뜨거운 아이스크림만큼이나 형용모순이다. 언터쳐블 치외법권을 누리며 수십 년간 배타적 담을 쌓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 온 선관위와 현대그룹 정씨 일가가 4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며 독단적, 폐쇄적으로 밀실 운영한 축구협회 사례를 통해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지 않는가. 그들을 성역으로 만들어 준 결과가 어떠한지를. 성역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 와중에 일명 '7·7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온라인상에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하면 손해액의 5배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법이다. 문제는 새로 신설된 허위조작 정보 개념이 모호해서 권력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거다. 권력에 의한 검열, 표현의 자유에 재갈 물리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SNS가 일상인 2030 세대의 반발이 특히 커 해외 공론장으로 떠난다는 '디지털 망명 선언'이 줄을 잇고 야당은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온라인 입틀막법이자 포털 통제법"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절대의석수를 보유한 민주당 가는 길을 누가 막으랴.

스타벅스 사태를 다룬 69회차 칼럼에서 '도로이목'이라는 성어를 통해 언로를 막고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정책의 해악을 이야기했다. 관련 고사에서 주나라 여왕에게 중신 소공이 한 간언을 다시 살펴보자.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강물을 막았다가 둑이 무너지면 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川壅而潰 傷人必多).”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이 강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는 '방민지구 심우방천(防民之口 甚於防川)'은 국민의 입을 막아 생기는 폐해는 하천을 막아 생기는 수재보다 더 엄중하므로 언로를 열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소공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주 여왕이 정책을 바꾸지 않아 사람들이 눈짓으로만 의사를 교환하게 되었고, 결국 민심이 이반되어 왕도 망하고 나라도 망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한국을 일러 '기자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쓸거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겠으나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한국사회가 불안정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성어를 통해 세상사를 들여다 보는 필자도 갓 쪄낸 찐빵처럼 따끈따끈한 글감이 마구 생겨 쓰던 글을 옆으로 치우고 갈아타기한 적이 꽤 있다. 이번에도 그런 과정을 밟았다. 

다른 주제로 칼럼을 구상하고 초고를 만지작거릴 즈음 배재고 사태의 파문이 확산되고 5·18 성역 논쟁이 불붙었다. 많은 우려와 반발 속에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강행되고 뜬금없는 '무섭노 논란'까지 불거졌다. 우리사회가 경청하고 곱씹어 봐야 할 이병태 부위원장의 문제 제기가 집단 린치에 가까운 비난에 묻히는 것도 안타까웠다. 앞으로 밥을 먹는 입은 있어도 의견을 말하는 입은 없다 여기고 사는 게 상책이려나 싶었다. 그런 생각들이 주제를 바꾸고 글을 새로 쓰게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명저 《자유론》의 한 구절로 심산한 마음을 달래본다. 

"모든 인류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고 단 한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권력을 가진 그 사람이 다른 모든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만큼이나 옳지 않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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