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 지피지기] 中 첨단산업, 노자 도덕경에 기술굴기 길을 묻다

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도(道)를 도(道)라고 부른다면 이는 이미 올바른 도(道)가 아니다. 무엇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는 이미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노자(老子)의 도덕경 원문을 요즘 한창 잘나가는 중국 첨단산업 현장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도덕경 제25장 상원(象元)으로 시작하는 원문을 대형 벽 장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달 13일 중국 안후이(安徽)성 성도(省都) 허페이(合肥)시 바오허(包河)구에 있는 세계 5위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사 궈쉬안가오커(國軒高科·Gotion Hightech) 본사 현관. 벽에 높이 15m, 길이 30m는 족히 될 듯한 초대형 벽화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 끝에는 소의 등에 타고 고삐를 쥐고 가는 노자 그림과 그 왼쪽에 ‘도덕경(道德經)’이라고 커다랗게 제목을 단 한자 원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고션 하이테크 홍보책임자에게 “왜 이런 고대의 노자 도덕경 원문을 첨단산업 본사 벽에 이리도 크고 길게 새겨 놓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1995년 회사 설립자이자 회장인 리전(李縝·62)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후이성 출신으로 싱가포르대학 경영학 박사과정 출신인 리 회장 지시로 만들었다는 대형 벽화에 꽉 차게 새겨 넣은 도덕경 원문의 첫머리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상원(象元·우주 질서의 근원) 장이었다. 2500년 전 노자가 본 우주 만물의 구조와 운행 원리를 설명한 부분이다. 가만히 뜯어보니 인용문 리드가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 료혜(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 寥兮)”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우주란 물질이 혼재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천지(天地)보다 먼저 생겨났다. 적막하고 고요할 뿐이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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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25장은 이어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물질이란 독립적이어서 고쳐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다. 운행하여도 위태롭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문자로 표현하면 도(道)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대(大·크다)라고 할 수 있으며, 대는 천천히 멀리 움직이며, 멀리 가서 되돌아오기 때문에 크다고 할 수 있다. 도(道)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도 크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네 가지 대가 있는데 왕은 그 한 곳에 산다. 사람은 땅의 질서를 따르고, 하늘은 도(道)의 질서를 따르며, 도(道)는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자동차 배터리 세계 5위 기업인 고션 하이테크 리전 회장이 도덕경 벽화를 설치한 뜻은 이런 것이었다. 지금부터 2500년 전인 기원 6세기에 살았던 중국인 노자가 우주론과 물질의 근원에 관한 저술을 남겼고, 노자의 우주론과 물질론은 현대 양자(量子)역학의 기본 원리와 같은 맥락의 논리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이 앞을 지날 때마다 도덕경 25장 내용을 음미하면서 위대한 철학자·사상가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중국 과학기술의 뿌리에 대한 긍지를 가지라는 뜻이었다.

이와 함께 도덕경을 관통하는 핵심 정신인 “도법자연 무위이치(道法自然 無爲以治), 즉 도는 자연을 따르고 스스로 다스린다”는 정신을 경영방침이자 조직관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홍보담당자는 소개했다. 또 “그런 정신으로 한국, 일본과 격렬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전고체(全固體) 배터리 개발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당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인들은 과학기술(Science & Technology)에 관한 한 서양에 대해 뿌리 깊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생화학 교수였던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1900~1995)은 “왜 중국은 근대 이전까지 과학기술에서 서구를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근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은 중국이 아닌 서구에서 일어났는가”라는 ‘니덤의 퍼즐(Needham’s Puzzle)을 제기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중 외교관으로 충칭(重慶)에서 근무하기도 한 니덤은 세계의 권위 있는 학자들에게 이 퍼즐을 보내고, 회답을 모아서 1954년에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첫 판을 냈다.

니덤은 이 책에서 근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일어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도 과거시험 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과거제도는 중국에서 수(隋) 양제(煬帝) 때인 605년에 진사과(進士科)라는 이름으로 시작돼 1905년 청이 러시아에 패전할 때까지 1300년 동안 중국의 인재들을 관료로 흡수하는 제도로 시행됐다. 그것이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뒤떨어진 결정적 이유라고 주장했다. 과학기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교 경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암송하는 능력을 관리 선발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중국의 과학혁명과 기술혁명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화학자 니덤의 역사적 판단이 옳은지 검증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840년 6월과 1841년 1월 두 차례 아편전쟁 때 홍콩 앞바다에 나타난 영국 해군 전함의 화력은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제1차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함선 수가 훨씬 적은 영국 해군이 쏘는 포탄은 청 해군의 해안방어 기지를 효과적으로 포격한 반면 함선 수가 월등하게 많은 청 해군의 포는 영국 전함에 가닿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지는 대조적인 화력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체결된 난징(南京)조약을 통해 청은 영국에 홍콩을 150년간 할양하고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등 5개 항을 서양 상인들에게 개방하며 전쟁배상금을 지급하는 등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그로부터 100년, 중국은 서양의 반(半)식민지 상태로 지내야 했다. 서양에서 수입된 영어 ‘science’와 ‘technology’를 영어 앞부분만 음역한 ‘사이(賽)선생’과 ‘터(特)선생’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썼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일본에 유학 간 중국인들을 통해 일본이 난학(蘭學·네덜란드 등 서양 연구)을 통해 번역한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이라는 한자를 수입해서 쓰기 시작했다. 사이선생과 터선생을 합성한 ‘사이터(賽特)’라는 용어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베이징(北京) 중심가에 사이터 호텔(賽特飯店)이 있는가 하면 전국에 사이터라는 이름을 단 백화점과 마켓이 운영되고 있다.

중국이 서양에 비해 과학기술이 크게 뒤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던 정치가는 중국공산당 제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1976년 9월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1978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1988년 1월 체코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중국공산당 내에서는 처음으로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科技是第一生産力)”이라는 말을 했다. 이후 덩샤오핑은 문화혁명을 종결시키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수학자 대회 개최였다. 이와 함께 주로 상하이, 난징,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등 자신의 개혁·개방 정책이 우선 실시된 지역을 돌며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덩샤오핑이 중국 남부의 개혁·개방 지역, 특히 난징에 남긴 흔적은 지난 6월 10일 장쑤(江蘇)성 성도 난징시 장닝(江寧)구에 있는 생산공정 AI화 업체인 ‘난징 커위안 즈훼이 커지(南京 科遠智惠 科技)’그룹에 갔을 때 발견했다. 그룹 이름을 영어로 사이언(Sciyon)이라고 부르는 이 그룹은 홍보 동영상 첫머리에 1993년 덩샤오핑이 이 업체에 들러 시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언이 1993년 5월 창업된 점을 생각해보면 이 생산공정 자동화 기업은 덩샤오핑이 강조한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이라는 말에 고무되어 설립된 것으로 보였다. 당시 89세였던 덩샤오핑은 모든 직위에서 은퇴한 뒤였지만 상하이 시당(市黨) 위원회 서기였던 우방궈(吳邦國)와 함께 이 업체를 둘러보는 동영상을 남겼다.


요즘 중국은 AI 분야에서 미국을 다소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그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 때부터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을 억제하고 있는가 하면 로봇 산업은 물론 드론과 양자(量子)컴퓨터 개발 분야에서도 미국과 미래를 놓고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장쑤성 난징시 외사판공실과 안후이성 허페이 외사판공실의 제의로 난징과 허페이의 첨단산업체들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다. 바이오 의학 분야에서 드론 개발업체까지 보여주었고,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충전식이 아닌 3분 이내 배터리 전체 교체 시스템으로 유명해진 NIO(蔚來) 자동차 공장도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과연 중국이 1300년 넘는 동안 과학기술 대신 과거제에 몰입해있던 역사적 과거를 극복하고 덩샤오핑이 1980년대부터 불을 지핀 과학기술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우리로서는 눈을 크게 뜨고 괄목(刮目)해서 관찰해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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