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 셰프는 성공한 사람처럼 말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놀러코스터'에서 그는 갑자기 쏟아진 관심을 두고 "낯설고 무섭다"며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라고 이야기했다. 화장실 문을 잠그는 순간이야말로 온전한 내 세상이 된다고도 고백했다.
성공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지 않는다. 박수가 따뜻해도, 박수를 받는 몸은 오래 서 있어야 한다. 조명이 환해도, 조명 아래 사람은 숨을 곳이 줄어든다.
최강록이 말한 "무섭다"는 감정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요리하던 사람은 어느 순간 '최강록'이라는 콘텐츠가 됐다. 음식은 한 접시로 끝나지 않고, 말투는 캐릭터가 되고, 불안은 또 하나의 매력으로 소비되고 있다.
▲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라는 말은 실력 부정이 아니다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라는 말은 얼핏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처럼 들리지만, 최강록의 경우는 조금 달리 보인다.
가면 증후군은 높은 성취를 이뤘음에도 자신을 가짜처럼 느끼고, 언젠가 들통날 것 같은 불안을 품는 심리다. 성공한 사람들이 종종 마주하는 감정이다.
최강록은 자신의 실력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요리를 해왔고, 식당을 운영했고, 실패를 겪었고, 요리 서바이벌에서 우승했다. 탈락도 해봤다.
이속에서 그가 반복해서 드러내는 두려움은 관심의 크기, 기대의 무게다. "낯설고 무섭다"는 말, 화장실 문을 잠그는 순간이 자기만의 세계가 된다는 고백, "'흑백요리사'에서 탈락하면 1년간 인터넷을 안 하면 된다" 등의 발언은 모두 노출의 문제를 향하고 있다. 성취에 대한 의심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라는 말은 '난 요리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만큼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름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가, 대중이 좋아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얼마나 같은가 등의 질문이다.
토리 히긴스의 자기 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실제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 그리고 타인이 요구한다고 느끼는 당위적 자기 사이의 간격에서 불안을 느낀다.
최강록 역시 대중이 기대하는 최강록, 방송이 소비하는 최강록, 광고가 원하는 최강록, 그리고 실제 최강록 사이의 간격이 갑자기 커져 부담이 생겼을 수 있다.
잘해서 유명해졌으니 계속 잘해야 하고, 어눌해서 사랑받았으니 계속 어눌해야 하고, 꾸미지 않아서 좋아졌으니 계속 꾸미지 않아야 한다. 진정성 있어 보여서 사랑받았으니 계속 진정성 있어 보여야 한다.
성취 이후 자신에게 붙은 역할을 견디는 사람의 피로다. 실패가 무서운 게 아니라, 성공 때문에 생긴 기대를 매번 다시 충족시켜야 하는 일이 무서운 것이다.
▲ 물 들어올 때 노를 버리는 사람
최강록을 두고 따라붙는 말 중 하나가 '물 들어올 때 노를 버린다'는 표현이다.
보통 사람들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 관심이 몰릴 때 식당을 열고, 광고를 잡고, 방송을 늘리고, 이름을 더 크게 만든다. 성공의 세계에서는 상식이다.
최강록은 이상하게도 그 반대편에 서왔다. Olive '마스터셰프 코리아2' 우승 후에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 1·2 출연 후에도 대외 활동을 하지 않거나 식당을 폐업하는 등 예측 불가 행보를 보였다.
그가 노를 버리는 이유는 물을 몰라서가 아니라, 물살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알기 때문일지 모른다.
노홍철이 "파인다이닝을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 묻자 최강록은 "평가를 많이 받는 식당을 하면 마음이 병든다. 내 진심이 뭔지 모를 때가 있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그의 행보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최강록이 경계한 건 평가가 먼저 들어오는 식당이다. 손님이 음식을 먹으러 오기보다 확인하러 오는 곳, 한 끼가 경험이 아니라 판정이 되는 곳. 그런 곳에서 요리사는 쉽게 자신의 마음을 잃는다.
이 음식을 만들고 싶은 건지, 사람들이 기대해서 만드는 건지, 내가 이 맛을 좋아하는 건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고른 건지, 내 요리를 하는 건지, 평가받기 좋은 나를 연기하는 건지. "내 진심이 뭔지 모를 때가 있다"는 최강록의 고백은 그런 혼란의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흑백요리사' 흥행 이후 몰려든 손님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마침 공간을 확장 이전할 마음도 없어 폐업을 결정했다는 후일담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강록에게 식당은 몸집을 키우면 되는 사업체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리듬의 공간일 가능성이 있다. 평가의 물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식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최강록을 먼저 만들게 된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 어눌한 사람은 판을 못 읽는다는 착각
최강록을 두고 자주 나오는 평가는 '어눌하다'는 것이다. 이 평가에는 은근한 오해가 있다. 말이 느려서 판단도 느릴 거라는 착각이다.
하지만 최강록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말은 늦지만 판은 늦게 읽지 않는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강점도 상황 지능에 있었다. 심사위원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이 상황에서 어떤 맛이 더 강하게 남을지, 어디까지 밀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예민하게 감지했다.
불을 세게 올려 모두를 압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순간까지 졸이고 어느 순간 불을 꺼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최강록의 느림은 자기 과시를 늦추는 속도다. 말보다 먼저 나서지 않으려는 태도. 자신을 크게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순간에도, 굳이 그쪽으로 달려가지 않는 절제다.
▲ 말이 느린 사람의 마음
최강록은 망설이고, 멈추고, 중간에 숨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어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강록은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묘하게 말을 잘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적확한 문장을 쓰고, 웃기려고 던진 것 같지 않아도 웃기다. 꾸미지 않아도 기억에 남고, 감정의 결이 살아 있다.
그는 말을 못해서 늦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자신을 과장하지 않도록 붙잡는 사람처럼 보인다. 말이 너무 매끈해질 때, 그 말이 자신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일 수 있다.
특히 유명인에게 사소한 표현은 기사 제목이 되고, 어색한 침묵은 캐릭터가 된다. 대중은 그 사람의 말뿐 아니라 말이 나오기 전 표정까지 의미화한다. 그럴수록 사람은 쉽게 말하지 못한다.
마크 스나이더는 사회적 상황에 맞춰 자신의 표현과 행동을 조절하는 자기감시(Self-monitoring)가 높아질수록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지금 이 말이 어떤 이미지로 굳어질지를 계산하게 된다고 봤다.
최강록의 말이 느린 이유는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지만, 자기 표현이 곧 평가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기는 방어적 지연일 수 있다. 그 느림이 답답한 사람도 있겠지만, 바로 그 느림 때문에 최강록은 최강록으로 보인다.
▲ 먼저 가면을 벗는 사람
흥미로운 부분은 최강록이 자신의 한계를 말하는 방식이다. 그는 '흑백요리사2' 결승전에서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다"고 고백했다. 이 말에는 부끄러움과 안도감이 함께 들어 있다.
들키는 게 두려울 때 사람은 두 가지 길을 택한다. 하나는 더 단단한 가면을 쓰는 것이다. 나는 원래 잘했고, 흔들린 적 없고, 준비된 사람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방어한다. 다른 하나는 먼저 가면을 벗는 것이다. 난 사실 그 정도는 아니고, 잘하는 척한 순간이 있었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가면을 내려놓는 행위는 심리적으로 더 강한 선택일 수 있다. 고백은 통제권을 되찾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너 사실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도 내가 별 거 아닌 순간이 있다는 걸 안다"고 말한다.
이건 최강록식 진정성의 핵심일 수 있다. 그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 빠져나온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자신을 너무 크게 포장하면, 그 포장지를 매일 다시 뒤집어써야 한다. 최강록은 이를 잘 못 견디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라는 말 역시 그런 의미를 품을 수 있다.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아는 나는 다르다. 사람들은 결과를 보지만, 나는 과정의 허술함까지 안다. 사람들은 우승을 보지만, 나는 우승하기 전의 불안과 우왕좌왕과 애매한 선택들을 안다. 사람들은 캐릭터를 보지만, 나는 그 캐릭터로 정리되지 않는 내 속을 안다.
▲ 그는 스타 셰프가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최강록의 에세이 제목은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제목부터 요란하지 않다. 성공하는 법도, 스타 셰프의 비밀도, 인생 역전의 기술도 아니다. 그저 요리를 한다는 것, 먹는다는 것, 식당을 한다는 것, 요리사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화려한 간판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 쪽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의 제목이다. 언젠가 국숫집을 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도 같은 방향에서 읽힌다.
미슐랭을 향한 야심도 아니고, 화려한 파인다이닝에 대한 바람도 아니다. 작은 가게, 뜨거운 육수, 일정한 리듬, 매일 찾아오는 손님,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 국숫집에는 거창한 쇼보다 반복의 시간이 있다. 대단한 한 방보다, 매일 무너지지 않는 손맛이 있다.
그가 꿈꾸는 게 더 큰 무대가 아니라 자기 속도로 굴러가는 가게라면, 최근의 불안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최강록은 성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이 자기 리듬을 빼앗아가는 방식에 민감한 사람처럼 보인다. 요리는 계속하고 싶지만, 요리 바깥의 소음까지 계속 감당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가 '흑백요리사2' 우승 이후에도 자신을 특별한 요리사로 과장하지 않고, 전국에서 묵묵히 일하는 요리사들과 같은 선상에 놓은 장면도 눈여겨볼 만하다. 겸손일 수 있지만, 자기 정체성을 대중의 찬사 쪽으로 완전히 넘기지 않으려는 태도일 수도 있다.
'나는 스타가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이다.'
소박하지만 강한 저항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유명해진 최강록'이 아니라 '요리하는 최강록'이다.
▲ 대중은 자연스러움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연스러움의 재방송을 원한다
대중은 최강록을 사랑한다. 그의 말투, 표정, 멈칫거림, 담백함, 소박함, 조림 이미지까지. 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이미지를 계속 보고 싶어 하고, 그를 설명하려 든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 당신의 매력은 이것이다. 당신은 앞으로도 이렇게 있어야 한다. 이 설명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당사자는 자신보다 대중의 해석에 먼저 맞춰 살아가게 된다.
진정성의 덫이다. 진정성은 연기하지 않는 상태인데, 대중 앞에 놓이는 순간 진정성도 연기처럼 요구된다. 자연스러움을 기대받는 사람은 더이상 자연스럽기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마저 하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비난 때문에만 갇히지 않는다. 칭찬 때문에도 갇힌다. 최강록이 "낯설고 무섭다"고 말한 감정에는 이 피로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대중의 호의를 모르는 게 아니라, 호의가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것이다.
최강록이 두려워하는 건 유명해진 자신이 아닐 것이다. 유명해진 자신 때문에 요리사인 자신이 흐려지는 일일 테다. 그가 바라는 건 더 높은 왕관이 아니라, 조용히 육수를 올리고 자기 리듬대로 하루를 닫을 수 있는 작은 가게일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