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은 읽기 어렵습니다. 내 집 마련 역시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려운 ’부’동산 ’바’로보기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준공이 절반으로 꺾였다. 지난 5월 전국 주택 준공은 1만2913호로 1년 전보다 51.0% 줄었고, 1~5월 누계로도 46.7% 빠졌다. 입주할 집이 줄자 전세부터 말랐다. 같은 달 전세 거래는 6만5698건으로 1년 전보다 29.6% 감소했고, 1~5월 누계 월세 거래 비중은 68.6%까지 올랐다. 집은 늦게 지어지는데, 이사는 매년 돌아온다. 입주 공백의 충격이 임대차시장으로 번진 것이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5월 두 차례에 걸쳐 비아파트 카드를 꺼냈다. 22일에는 수도권 매입임대 9만호를 내놨고, 26일에는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규제를 풀어 2030년까지 11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아파트는 착공부터 입주까지 3~5년이 걸린다. 반면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지을 수 있다. 당장 전월세 불안을 누그러뜨리려면 비아파트가 현실적인 카드라는 계산이다.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길을 우리가 이미 한 번 걸었고, 그 끝이 좋지 않았다는 데 있다.
10년 전 풀었던 나사
도시형생활주택은 2009년 같은 이유로 태어났다. 1~2인 가구에 값싼 소형주택을 빨리 공급하겠다며 주차장·일조·소음·부대시설 기준을 한꺼번에 풀었다. 눈여겨볼 것은 시장의 처지다. 그때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집값이 꺾이고 미분양이 15만 가구를 넘던 침체기였다. 지금은 외부 충격 없이 입주와 전세가 말라가는 강세장이다. 국면은 정반대인데, 전월세난에 몰린 정부가 집어 든 카드는 닮아 있다. 시장이 닮아서가 아니라 정책의 반사신경이 닮은 것이다.
결과는 폭증이었다. 2009년 1688호이던 도시형생활주택 인허가는 2012년 12만3949호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인허가된 23만여 호 가운데 19만여 호, 약 83%가 원룸형이었다. 규제를 풀자 시장은 다양한 주거가 아니라 가장 작고, 가장 빨리 지을 수 있고, 가장 돈이 되는 방으로 쏠렸다.
대가는 뒤늦게 청구됐다. 주차장이 2~3가구당 한 대꼴이니 차들이 골목을 점령했고, 좁은 진입로는 소방차의 길을 막았다. 건물 사이 간격은 좁았고, 피난과 방재 설비는 아파트만큼 촘촘하지 않았다. 부작용이 커지자 정부는 2013년 주차장 기준 등을 다시 강화했다. 그러나 이미 지어진 취약한 주거는 그대로 남았다.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 화재가 그 청구서였다. 불은 옆 건물로 옮겨붙었고, 5명이 숨지고 125명이 다쳤다. 풀고, 데이고, 다시 조이는 데 10년이 걸렸다.
이번 5월 대책이 푸는 항목을 보면 그 시간이 무색해진다. 주차장은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완화할 수 있는 범위를 20~50%에서 50~70%로 더 넓혔다. 일조권은 건물 높이 17m 구간까지 북쪽으로 띄워야 하는 거리를 5m로 줄였다. 세대수 상한은 300가구에서 역세권 700가구로 올렸고, 주민공동시설도 인근에 비슷한 시설이 있으면 안 지어도 되게 했다. 공급 속도를 높이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2009년 이후 풀었다가 사고와 민원 끝에 다시 조였던 바로 그 빗장들이 다시 열리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한다. 우리가 ‘비아파트’라고 한데 묶는 것 안에는 서로 다른 실패가 들어 있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질이 낮아진 ‘주택’이다. 오피스텔은 주택의 자격을 빌려 쓰는 ‘준주택’이다. 생활숙박시설은 애초에 주택이 아닌 숙박시설을 주거처럼 팔아 ‘범주’ 자체가 무너진 사례다. 셋은 결이 다르지만 뿌리는 같다. 주택을 제때 짓지 못하니 그 언저리의 무언가로 메우려 한 것이다. 이번 대책이 지식산업센터를 오피스텔로, 공실 상가를 원룸으로 바꾸겠다는 것도 그 충동의 연장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하한선
그렇다고 비아파트 공급을 막자는 얘기는 아니다. 서울의 1인 가구 비중은 이미 높고, 직장 가까운 도심에 작고 부담 가능한 집을 원하는 수요도 분명하다. 넓은 택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도심에서는 자투리땅을 활용한 소형주택이 필요하다. 아파트 공급만 기다리기에는 전월세시장의 시간이 너무 빠르다. 비아파트는 지금 시장에서 필요한 공급 수단이다.
다만 조건은 그때보다 까다롭다.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은 부작용은 컸어도 폭증할 만큼 팔려나갔다. 지금은 전세사기가 남긴 빌라 기피에 고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까지 겹쳤다. 공급을 늘리려 규제를 풀어도 소비자가 외면하면 빈집만 남는다. 같은 처방을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는데, 시장은 예전만큼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따져야 할 것은 규제를 풀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빨리 지을 수 있느냐도 아니다. 빨리 지은 집이 사람이 오래 살 수 있는 집인가가 핵심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의 실패는 완화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질의 바닥 없이 완화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속도와 품질이 부딪칠 때 시장은 늘 속도를 택한다. 더 작게, 더 빽빽하게, 더 싸게 짓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 선택을 시장에만 맡기면 결과는 2009년과 같아진다. 빨리 짓되 양보하지 말아야 할 하한선을 먼저 박아야 한다.
그 하한선은 새로 만들 것도 없다. 우리에겐 이미 최저주거기준이 있다. 1인 가구라면 전용 14㎡에 독립된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춰야 한다는, 법이 정한 사람다운 주거의 최소선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실제 민간 소형주택 공급의 문턱으로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더구나 14㎡라는 숫자는 2011년에 멈춰 선 채 15년째 그대로다. 같은 1인 가구 기준이 일본은 25㎡, 영국은 38㎡다. 우리 기준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도시형생활주택을 풀더라도 이 잣대를 민간 공급까지 실질적으로 넓히고 현실에 맞게 올려두면, 적어도 ‘벌집 원룸’이 다시 쏟아지는 길은 막을 수 있다.
면적이 바닥의 전부는 아니다. 집 안이 아무리 새것이어도 차는 골목에 밀려 있고, 불이 났을 때 빠져나갈 길은 좁고, 햇빛과 소음, 냉난방 성능이 생활을 흔들며, 고장이 나도 책임질 주체가 없다면 그것은 주거가 아니라 임시 수용에 가깝다. 비아파트 공급 대책이 성공하려면 “몇 호를 더 짓느냐” 못지않게 “어떤 집은 지어도 되고, 어떤 집은 지으면 안 되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공급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작은 필지마다 제각각 원룸을 꽂아 넣는 방식으로는 주차장과 골목, 보행로와 방재시설을 함께 만들기 어렵다. 개별 건물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동네의 흐름까지 봐야 한다. 비아파트가 도심의 빈틈을 채우는 집이 되려면, 그 빈틈이 다시 도시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묶어서 계획하고 함께 관리해야 한다.
혼자 사는 집일수록 집 안의 면적만으로는 생활이 완성되지 않는다. 함께 쓸 수 있는 세탁실과 휴게공간, 작은 모임 공간, 생활지원 프로그램 같은 장치가 있어야 고립된 방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집이 된다. 오래 살 수 있느냐도 바닥이다. 비아파트가 잠깐 머무는 방으로만 소비되면 세입자는 계속 밀려나고, 동네는 계속 낡아간다. 공급 대책은 집을 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가 관리하고, 누가 고치고, 누가 연결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비아파트가 임시 거처가 아니라 생활의 기반이 된다.
좋은 집도 사업성이 맞아야 한다
물론 기준을 높이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반론이 나온다. 맞는 지적이다. 아무리 좋은 기준을 세워도 사업자가 짓지 않으면 공급은 늘지 않는다. 그래서 해법은 주거 기준을 깎는 데 있지 않고, 좋은 집을 지을 때 사업자의 비용과 불확실성을 낮추는 데 있어야 한다. 좋은 집을 짓는 사업에는 더 높은 기준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빠른 절차와 낮은 금융비용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우수한 디자인과 입주자가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을 넣은 사업에는 그만큼 더 지을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공유시설이 임대 가능한 면적을 줄이는 부담으로만 남지 않게 해야 한다. 잘 짓고 잘 관리한 사업자에게 다음 사업 기회를 더 주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나쁜 집을 쉽게 짓게 해 사업성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을 지어도 사업성이 맞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공공의 역할도 단순한 물량 확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공이 사거나 지원하는 집이라면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해야 한다. 최소 면적, 주차와 안전, 단열과 관리 기준을 넘지 못한 집은 공급 실적으로만 인정해서는 안 된다. 공공이 아무 집이나 받아주면 민간도 아무렇게나 짓는다. 반대로 공공이 살 만한 집만 고르면 민간은 그 기준에 맞춰 짓게 된다. 공급 확대는 돈을 푸는 정책이 아니라 시장의 기준을 세우는 정책이어야 한다.
비아파트는 전월세난의 현실적 출구가 맞다. 아파트만으로는 급한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고, 도심의 1인 가구와 청년층에는 작고 빠르게 공급되는 집도 필요하다. 그러나 빠른 집이 나쁜 집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아파트 공급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비아파트도 사람이 살 집답게 짓도록 만드는 일이다.
10년 걸려 조인 나사를 다시 푸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나사를 왜 조였는지 잊는 순간, 같은 실패는 다시 돌아온다. 비아파트 공급의 유혹은 늘 속도에 있다. 정책의 실력은 그 유혹 앞에서 어디까지를 양보하고, 어디부터는 지킬 것인지 정하는 데 있다. 빨리 지어야 한다. 다만 빨리 지은 집도 오래 남는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삶도 함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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