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은 읽기 어렵습니다. 내 집 마련 역시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려운 ’부’동산 ’바’로보기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당신의 동네를 철거합니다. 공급해야 하니까.”
낯선 말처럼 들리지만, 지금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장 차갑게 줄이면 이 문장에 가깝다. 가림막이 둘러지고, 이삿짐 차가 오가고, 수천 세대가 살던 단지가 빈터가 된다. 가림막에는 ‘주택 공급’이라는 말이 붙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일은 공급이 아니라 멸실이다.
올해도 서울 곳곳에서 큰 단지들이 집을 비웠다. 강남 개포주공5단지(940가구), 양천 신정4구역(1592가구), 용산 한남2구역(1799가구) 등 9개 단지 약 9000가구가 이주 중이고, 상계1·노량진3·삼익파크 등 이주를 앞둔 사업장까지 더하면 추가로 9000여 가구다. 서울 전체 전월세 매물이 약 3만3000가구 수준인데 그 위로 이만한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얹힌다.
이렇게 주변 전세는 오르고, 이주비와 대체 전셋집을 둘러싼 부담은 사업 속도를 붙잡는다. 공급을 위한 출발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새집이 아니라 사라진 집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일이 어느새 당연한 공급 대책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
서울의 지금 상태를 한 단어로 줄이면 이렇다. 철거 중.
공급보다 먼저 오는 것
문제의 뿌리는 단순하다. 서울이 낡은 집을 고치는 방식이 사실상 오직 한 가지, ‘전면 철거 후 고밀 재건축’으로 굳어 있다는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새 아파트를 대규모로 넣을 수 있는 가장 큰 통로는 정비사업이다. 그런데 그 정비사업의 대부분은 동네를 통째로 비우는 방식이다.
부수는 일은 먼저 오고, 짓는 일은 나중에 온다. 착공과 준공 사이에는 몇 년의 시차가 있다.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면 가장 먼저 빨라지는 것은 새 아파트 입주가 아니라 기존 집을 비우는 일이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 2.0으로 2031년까지 약 31만 호를 착공한다고 설명한다. 사업이 다 끝나면 집은 늘어난다. 낡은 집을 헐고 더 많은 새집을 짓는 것이 정비사업의 기본 구조다.
이는 지금부터 2031년까지 22만호를 철거한다는 예고장의 다른 이름이다. 서울 전체 주택의 7%에 달하는 수치다. 앞으로 한참 남은 2031년이 되면 약 8만호가 늘어난다지만, 사업이 끝난 뒤의 숫자와 시민이 견뎌야 하는 시간은 다르다.
착공 숫자로 성과를 말하면 공급이 이미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세시장이 체감하는 순서는 다르다. 서울이 먼저 마주하는 것은 새집이 아니라 사라지는 집이다.
주택도시금융연구에 실린 최진·진창하의 연구는 서울 25개 자치구를 분석해 멸실은 단기적으로 전세가격을 밀어 올리고, 준공은 시간이 지나 안정 효과를 낸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특히 2000세대 이상 대규모 멸실은 소규모 정비사업보다 전세가격 상승 폭이 훨씬 컸다. 멸실과 준공은 모두 ‘공급’이라는 이름으로 묶이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시간표와 강도는 다르다.
사라지는 건 집이 아니라 동네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이다. 아파트 단지 하나가 헐린다는 것은 건물이 사라지는 일만이 아니다. 수십 년 쌓인 동네 하나가 흩어지는 일이다. 재개발·재건축의 기대수익에 밀려 누군가는 십수 년 살던 동네를 떠난다. 다른 동네로, 때로는 서울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곳에는 추억과 일상, 인간관계와 생활의 리듬이 있다. 몇 년 뒤 오른 집값이 일부의 위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집값이 동네를 잃은 시간을 모두 갚아 주지는 않는다.
몇 년 뒤 새 아파트가 올라와도 모두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정비사업 이후 원주민 재정착률이 30%를 밑돈다는 조사도 있다. 기준과 조사 범위에 따라 숫자는 달라질 수 있지만 방향은 같다. 낡은 집은 새집이 되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과 생활권은 상당 부분 바뀐다. 단지를 건물로만 보면 갱신이지만, 동네로 보면 해체다.
결국 전세 충격과 동네 해체는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전면 철거 한 길만 아는 도시가 두 문제를 동시에 만든다. 집을 한꺼번에 비우니 전세시장이 먼저 흔들리고, 사람을 한꺼번에 흩으니 동네가 나중에 사라진다. 서울 정비사업의 질문은 그래서 단순한 공급량이 아니라 방식의 문제여야 한다.
재건축 성공 신화에서 벗어날 때
재건축은 오랫동안 낡은 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자산을 키우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낡은 단지가 새 브랜드 아파트가 되고, 집값이 몇 배로 뛰고, 조합원에게 큰 자산 상승이 돌아가는 일이 서울에서는 낯설지 않았다. 그 성공 경험은 너무 강했다.
문제는 그 기억이 모든 노후 단지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의 재건축·재개발은 예전만큼 만만하지 않다. 공사비는 뛰었고, 금융비용은 무거워졌고, 분담금 부담은 커졌다. 인허가와 조합 갈등, 일반분양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입지가 압도적인 일부 단지를 빼면 “헐면 돈이 된다”는 공식은 더 이상 자동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논의는 여전히 기승전 재건축·재개발로 흐른다. 더 높이 짓고, 더 비싸게 팔아야 도시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자산 증식의 문제로만 보면 다른 선택지는 시시하고, 답답하고, 느릴 뿐이다.
서울에 필요한 것은 재산권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기대수익의 환상에서 도시정책을 분리하는 일이다. 모든 낡은 동네가 강남 재건축이 될 수는 없고, 모든 조합원이 수십억원대 차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더 벌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덜 부수고 더 오래 살 수 있느냐. 사업성이 높은 곳은 재건축·재개발로 가면 된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공급일 수 있다. 그러나 사업성이 약한 곳까지 같은 꿈에 묶어둘 이유는 없다. 그런 곳은 전면 철거가 정말 가능한지, 주민이 분담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사실 길이 없었던 적은 없다. 부족했던 것은 길이 아니라, 답이 하나뿐이라고 믿어온 상상력이었다.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야 선택지가 생긴다
첫 번째 길은 리모델링이다. 그러나 지금 리모델링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재건축 규제는 풀리고 사업성은 보강되는데, 리모델링은 까다로운 허가 절차와 적은 일반분양 물량, 준공 뒤 자산가치 격차라는 벽에 막혀 있다. 새 아파트로 평가받느냐, 고친 아파트로 평가받느냐의 차이도 크다. 그러니 한때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도 “차라리 재건축”으로 돌아선다.
이유는 분명하다. 재건축에만 사업성을 보태고 다른 방식은 비용과 위험을 그대로 떠안게 하면, 조합은 더 많이 벌 수 있는 길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리모델링이나 순환형 정비에도 금융 지원, 심의 단축, 용적률 보정 같은 장치를 붙여야 한다. 재건축만 빠르고 유리한 길로 만들어 놓고 “다른 선택지도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야 선택지가 생긴다.
물론 리모델링이 만능은 아니다. 골조를 남겨 고치니 공급 효과는 크지 않고, 구조 안전성 검토 같은 부담도 무겁다. 그래도 의미는 있다. 송파성지아파트는 전국 첫 수직증축 리모델링 준공 사례로, 298가구에서 327가구로 바뀌었다. 모든 노후 단지를 전면 철거하지 않고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리모델링이 덜 부수는 길이라면, 순환정비의 원리는 돌아오게 하는 길이다. 모든 단지를 리모델링할 수는 없다. 결국 부숴야 하는 곳이라면, 다음 질문은 누가 어디에 머물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느냐가 돼야 한다.
영등포 쪽방촌 개발도 이 대목에서 참고할 만하다. 도시정비법상 순환정비방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쪽방 주민을 먼저 임시 거처로 옮기고 공공주택이 완공되면 다시 정착시키는 선이주·재정착의 원리는 분명하다. 일반 재건축·재개발에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더라도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빨리 헐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로 옮겨 살게 할 것인가. 몇 년 뒤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그 몇 년 동안 누가 버틸 수 있게 할 것인가.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이주리츠도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다. 그전까지의 대책이 이주비 대출처럼 돈을 풀어 이주를 앞당기고 철거 시기를 당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주리츠는 한꺼번에 집을 비우는 사람들을 받아내 전세시장이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는 구상에 가깝다. 방향은 옳다. 다만 집이 부족한 상태에서 돈만 푸는 데 그친다면, 이주가 쉬워지는 게 아니라 전세시장에 더 센 수요가 얹힐 뿐이다.
철거가 죄는 아니다. 오래된 도시는 고쳐야 하고, 어떤 집은 부숴야 다시 산다. 그러나 서울이 떠올리는 답이 늘 전면 철거 하나뿐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사업성이 높은 곳은 제대로 재건축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다른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
가림막은 ‘공급’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먼저 사라지는 것은 집이고, 먼저 흔들리는 것은 전세시장이고, 먼저 흩어지는 것은 동네다. 당신의 동네도 예외가 아니다. 31만 호 공급을 말하려면 22만 호 멸실을 받아낼 집부터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공급 속도전과 주거 대책을 가르는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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