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호르무즈 모멘트' … 역사는 반복되는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스위스로 출발하는 밴스 미국 부통령좌측과 21일현지시간 스위스 협상장에 도착한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지난 20일(현지시간) 스위스로 출발하는 밴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21일(현지시간) 스위스 협상장에 도착한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미국과 이란 대표단은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종전(終戰)을 위한 60일간의 본격적인 외교 협상에 돌입했다. 그러나 회담은 시작 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를 공습하자, 이란은 이에 반발하며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가능성을 거론했다. 여기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 개시 시각에 맞춰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헤즈볼라를 통제하지 못하면 다시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자 협상은 한때 파국 위기로 치닫는 듯했다.

하지만 22일 새벽, 이른바 '무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 1차 마라톤 협상은 일단 몇 가지 가시적 성과를 남긴 채 마무리됐다. 중재국인 카타르와 파키스탄은 공동성명을 통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분위기 속에서 고무적인 진전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엑스(X)를 통해 "레바논 전쟁 종식을 위한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며 협상 결과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이란은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의 모든 전선에서 전쟁 종식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이 최종 평화 협정에 도달하는 데 있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협상의 가장 역설적인 위험은, 합의 당사자가 아닌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합의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동맹인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습을 지속하면, 이란은 MOU 파기를 내세워 호르무즈 봉쇄 카드를  다시 꺼낼 명분을 얻는다. 미국은 동맹을 달래자니 협상이 흔들리고, 협상을 살리자니 동맹이 분노한다.


이번 스위스 1차 회담에서 중재국들은 레바논 문제와 관련 이스라엘과 헤즈블라 간의 군사작전 종료 합의가 지켜지도록 충돌 방지 기구를 두기로 했으나 이스라엘이 미국 말을 고분고분 안 듣는 상태라서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이란은 레바논 문제를 종전 협상의 우선순위로 밀고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재차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이란은 언제든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발을 뺄 태세이다.  

미국과 이란이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14개 항의 문서엔 레바논을 비롯한 모든 전선에서의 군사작전 종료,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이란 석유 수출 재개, 향후 60일간의 핵 협상 개시라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국제 사회는 안도했고, 원유 시장은 배럴당 110달러에서 8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스라엘이 판을 흔들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연계 거점 80곳을 타격했다고 발표했고,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즉각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미-이란 합의 위반"이라며 호르무즈 해협을 재봉쇄했다. 이란은 원래 19일 예정됐던 스위스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1차 '스위스 담판'은 22일 새벽 일단 마무리됐다. 표면적 성과는 세 가지다. 첫째, 향후 60일 내 최종 합의를 목표로 한 로드맵과 고위급위원회의 설치 합의이다. 둘째, 레바논 내 군사작전 종료를 감시하기 위한 '갈등완화 기구(de-confliction cell)' 구축이다. 미국·이란·레바논 3자가 참여하고 카타르·파키스탄이 중재하는 구조다. 셋째, 호르무즈 해협 상선 통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미·이란 간 '통신 채널' 개설이다. 

이란 측은 이번 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외무부 대변인은 회담 뒤 국영방송에 “호르무즈 안전 통항 장치와 이란산 원유 판매 허가, 동결자산 해제 문제에서 ‘좋은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미국측 협상을 이끌었던 밴스 부통령이 밝혔듯이, 이번 1차 협상은 "실무적 협상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특히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레바논 갈등완화 기구가 첫 번째 진짜 시험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미국과 중재국들의 바람대로 레바논에서 전쟁을 당장 멈출 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즉, 이번 협상의 최대 리스크는 이란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인 이스라엘이다. 이란은 테이블에 앉아 있고, 이스라엘은 그 테이블을 발로 차고 있다.


미국의 득과 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합의를 성과로 포장할 것이다. 호르무즈가 열리기 시작하며 유가는 내렸고, 이란은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가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에너지 위기와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전쟁을 끝냈고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했다는 서사는 유권자에게 팔리는 이야기다. 미국은 이란 재건 기금의 직접 부담도 걸프 아랍 국가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비용을 분산 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손익계산서의 반대편을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애초에 이번 전쟁 명분으로 이란의 미사일 능력 "말살"과 헤즈볼라·후티 같은 대리 세력 "절멸"을 내걸었다. 그런데 공개된 MOU의 핵심 협상 의제는 핵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고, 미사일과 프록시 네트워크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더 깊은 상처는 선례다. 이란은 이번 전쟁을 통해 정규군 열세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비대칭 전술 하나로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란은 군사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MOU를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재확인했다. 핵도, 미사일도 아닌 '해협' 정규전에서 열세인 국가가 초강대국을 흔드는 방식은 “상대의 도시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경제 혈관을 조이는 것”임을 전쟁이 증명했다.


'수에즈 모멘트'  vs '호르무즈 모멘트'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력으로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과 소련의 위협, 그리고 세계 여론의 냉담함 앞에 두 나라는 굴복했다. 이 사건은 영국 패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역사는 이것을 '수에즈 모멘트'라고 기억한다.

최근 상하이 푸단대학 중동연구센터 소장 쑨더강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수에즈 위기가 대영제국에 드리운 그림자가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에게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의 군사력이 상상만큼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것, 서방 동맹의 결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란이라는 고립된 적국 하나를 상대로 치른 전쟁에서도 세계를 주도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 이 세 가지 사실은 '호르무즈 모멘트'가 미국을 향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영국의 패권 종말을 알린 ‘수에즈 모멘트’는 함대가 약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정적 순간은, 제국이 운하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정치·경제·외교적 비용이 감당 불가능해진 시점'이었다. 지금  ‘호르무즈 모멘트’도 마찬가지다. 미 해군이 해협을 “열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협을 열어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군사적 긴장, 동맹 관리, 보험료 상승, 해상 충돌 위험, 시장 패닉—이 누적되며 '패권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순간'이다.

 60일 협상의 3대 지뢰밭

제네바 1차 회담은 로드맵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로드맵은 사실상 60일짜리 타이머 위에 놓인 것이다. 이 시간표 안에는 적어도 세개의 지뢰밭이 존재한다. 

첫째, 갈등완화 기구의 실효성. 이번 회담의 가장 주목할 성과는 레바논 '갈등완화 기구' 설치 합의다. 그러나 구조를 보면 회의적이 된다. 이 기구는 미국·이란 양측과 레바논이 참여하고 카타르·파키스탄이 중재하는 5자 구도인데, 정작 공격을 감행하는 이스라엘은 빠져 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계속 타격한다면, 이란이 "MOU 위반"을 이유로 협상을 중단할 명분이 생긴다. 

둘째, 호르무즈 통신 채널의 한계. 이번에 새로 개설된 미·이란 간 '연락선'은 우발적 충돌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통신 채널이 있다고 봉쇄 의지가 사라지진 않는다. 이란이 기뢰 제거 작업을 완료하지 않는 한 해운 보험 프리미엄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고, 상업 선박들은 여전히 이 해협을 두려워한다. 호르무즈는 열렸다고 선언됐지만, 실제로는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마직막으로  바브엘만데브라는 뇌관이다. 이란의 무기가 호르무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이미 2024~2025년 홍해에서 190척 이상의 상선을 공격하며 수에즈 운하 통행량을 90%나 감소시킨 전력이 있다. 협상이 이란에 불리하게 흘러갈 때 바브엘만데브가 다시 닫힌다면—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와 수에즈가 동시에 막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그 충격은 세계 경제를 다시 뒤흔들 것이다.

조용한 승자: 중국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가장 조용히, 가장 많이 얻은 나라는 어디인가. 중국이다. 중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보기 드문 외교적 이득을 챙겼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란 석유를 계속 사들이고 대미 비판 성명을 냈지만, 미국과의 직접 충돌은 피했다. 시진핑은 4개항 평화안을 내놓았고, 이란 외무장관이 베이징을 찾았고, 파키스탄 총리가 찾아왔고, 트럼프 자신도 G7에서 "시진핑이 중립을 지켰고 해결에 도움을 줬다"고 공개 찬사를 보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제네바 회담의 중재국인 카타르와 파키스탄—특히 파키스탄—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군사적 압도”가 항상 원하는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세계는 자연스럽게 '다극 질서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있다. 

제네바 1차 회담은 끝났지만, 이번 주 실무급 회담이 이어진다. 레바논 갈등완화 기구가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란에 대한 동결 자금 해제가 의회 장벽을 어떻게 넘느냐, 호르무즈 통신 채널이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작동하느냐—이 세 가지 질문이 앞으로 60일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협상의 최대 변수는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일 수 있다. 이때 미국의 선택지는 모두 비용이 든다. 이스라엘을 방치하면. 협상이 흔들리고, 호르무즈 리스크가 커진다. 이스라엘을 압박하면. 동맹의 결속이 약해지고, 미국의 중동 영향력은 균열을 드러낸다.

이 딜레마가 바로 ‘호르무즈 모멘트’의 본체다. 패권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모순의 총량'으로 측정된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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