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시작된 새만금(萬金) 간척 사업은 대대로 옥토였던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것처럼 번영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긴 작명이다. 결과적으로 서울시 면적 3분의 2에 달하는 새 땅이 생겨났지만 그 위에서 진행된 관광, 신재생에너지 등 다수의 개발 프로젝트는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새만금이 다시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피지컬 인공지능(AI)이다. 정부와 업계는 새만금을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미래 모빌리티 산업이 결합한 글로벌 피지컬 AI 허브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핵심 축으로 참여 중이다.
정부의 의지는 과거와 비교해 훨씬 결연하다. 김민석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AI 도시 조성을 가로막던 60여개 규제 가운데 50개 안팎이 이미 해결됐거나 정비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의 80%가 넘는 수준이다. 남은 규제 역시 연내 해소가 가능할 전망이다.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금융 지원도 검토되고 있다.
새만금 개발사는 아픈 기억이다. 국제업무지구와 관광단지, 경제자유구역,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 등 굵직한 계획들은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발 방향도 흔들렸다.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한국 제조업과 로보틱스 산업에 높은 관심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산업의 미래는 반도체 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AI가 현실 공간에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제조업 기반과 로봇 기술, 모빌리티 생태계가 필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 피지컬 AI 시대의 유력한 거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새만금 프로젝트의 핵심은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로봇 산업을 한 공간에 집적하는 데 있다. 피지컬 AI 실증과 상용화의 전진기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성패를 좌우할 변수는 전력이다. 초거대 AI 모델 학습과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이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 때문이다.
한국은 원전과 송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데이터센터 구축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를 결합한 패키지 수출 모델도 충분히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에도 새만금 프로젝트는 중요하다. 자동차 제조기업에서 모빌리티·로보틱스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미래 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AI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실증 공간과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남은 과제는 실행력이다. 새만금 관련 수많은 계획과 비전이 발표됐지만 결과는 미미했다. 새만금 개발 역사가 어느덧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지역 개발이 아니다. 반도체 이후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국가 프로젝트다. 새만금에 다시 찾아온 기회가 결과로 증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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