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투표 독려 발언이 선거 막판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 대통령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지난달 30일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나와 가족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투표 포기는 중립이 아니라 내 삶과 공동체를 해치는 그들을 편드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 날에는 표현 수위가 더 올라갔다. 이 대통령은 "주권자의 침묵과 투표 포기는 국민을 속이고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며 나와 가족의 삶을 망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충직한 머슴'과 '악성 지배자'를 대비시키며 "이 말이 불편한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주권자가 투표로서 극복해야 할 구태 기득권자들"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 독려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거 참여는 시민의 권리이자 책임이고, 기권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이 대통령의 발언은 참여 호소에만 머물지 않았다. 투표하지 않는 행위를 '중립'이 아닌 '편들기'로 규정했고, 정치 무관심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문제로 바꿨다.
이 발언은 왜 강력했을까. 그리고 왜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들렸을까.
▲ 첫 번째 장치: 기권을 '중립'이 아니라 '동조'로 재해석
기권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정치 혐오, 후보 불신, 생활의 압박, 무력감, 정보 부족, 냉소 모두 기권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무관심해서 투표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실망해서 투표하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누구에게도 표를 주고 싶지 않아서 멈춰 선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 복잡한 이유를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 프레임 전환이다.
투표하지 않는 건 중립이 아니다.
중립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편드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내 삶과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들이다.
프레이밍은 같은 사실도 어떤 틀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수용자의 해석을 바꾸는 효과를 낸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강력한 정치적 프레이밍으로, 투표하지 않는 행위를 '정치에 실망했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 '정치가 싫다'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결과를 돕는다'는 문제로 바꿔놓는다.
이 말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망설임을 타인이 대신 판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두 번째 장치: 투표를 '선택'이 아니라 '도덕성'의 문제로 만들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나와 가족의 미래", "공동체를 해치는 그들",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 "구태 기득권자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투표를 정치적 선택에서 도덕적 판단의 영역으로 옮긴다.
"투표하자"는 권유지만, "투표하지 않으면 그들 편"이라는 말은 판정이다. 유권자는 행동을 요구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침묵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심문받게 된다.
린다 스키트카(Linda J. Skitka)의 도덕 확신(moral conviction) 연구는 정치적 태도가 도덕적 신념과 결합할 때 정치 참여를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선택이 선호가 아니라 '옳은 일'로 느껴질수록 사람은 더 강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 지점을 건드린다. 투표는 더이상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 나쁜 권력에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증명,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증명이 된다.
이 방식은 지지층과 정치 고관여층에게 강하게 먹힌다. 투표가 의무를 넘어 자기 정당성의 확인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관심층이나 정치 피로층에게는 "왜 내 침묵까지 도덕적으로 심문하느냐"는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힘을 갖는 이유도, 불편함을 낳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세 번째 장치: '우리'와 '그들'을 나눴다
가장 정치적인 표현은 "그들", "악성 지배자", "구태 기득권자들"이라는 단어다. 특정 정당명을 직접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거 국면에서 이 단어들은 비어 있지 않다. 지지자는 자신이 반대하는 세력을 그 자리에 넣고, 반대자는 자신이 겨냥됐다고 느낀다.
이것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가르는 언어다. 사회정체성 이론은 사람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자아를 규정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의 비교 속에서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상황에서는 이 구도가 더 쉽게 활성화된다. '우리'는 주권자이고, '그들'은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이며, '구태 기득권자들'은 투표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이 발언은 투표 독려이면서 동시에 진영 결집의 언어로 읽힐 수 있다. "투표하라"는 말은 시민 전체를 부른다. 그러나 "구태 기득권자들을 극복하라"는 말은 시민을 특정 전선 위에 세운다. 이 부분에서 공적 독려와 정치적 편 가르기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말이 불편한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이 있다면"이라는 문장은 영리하다. 반박을 미리 흡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표현 수위가 지나치다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성 문제를 우려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곧 '구태 기득권의 증거'처럼 재해석된다. 반박하지 않으면 메시지가 남고, 반박하면 '그 말이 불편한 사람'이 된다.
정치 언어가 강해지는 순간은 상대를 비판할 때만이 아니라, 상대의 반박마저 자기 논리 안으로 끌어들일 때다.
▲ 네 번째 장치: 손실과 공포의 호출
이 대통령은 투표를 '나와 가족의 미래'와 연결했다. "세상은 지옥이 될 수도, 천국이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 표현은 투표를 추상적 시민 의무에서 구체적인 생존 감각으로 끌어내린다. 민주주의는 멀지만, 가족은 가깝다. 공동체의 미래보다 내 삶의 파괴가 훨씬 빠르게 감정을 건드린다.
행동경제학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들이 선택의 결과를 기준점 대비 이익과 손실로 평가하며,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을 설명한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제시한 이 이론은 원래 불확실한 선택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모델이지만, 이후 정치학에서도 유권자와 정치 행위자의 판단을 이해하는 틀로 응용돼 왔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나와 가족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 "삶을 망치는 자들", "악성 지배자", "지옥"이라는 표현은 손실 프레임에서 볼 수 있다. 투표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삶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 이 발언에 심리적 지지를 보낼 사람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기존 지지층과 정치 고관여층에게 상당히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지지층에게 이 발언은 정체성 확인의 언어가 된다.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권자이고, 반대편은 구태 기득권자 혹은 악성 지배자로 읽힌다. 이 구도는 복잡한 정책 판단보다 훨씬 빠르게 결집을 만든다. 선거 막판에는 새로운 설득보다 기존 지지층의 동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언어는 정치적으로 효율적이다. 투표는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정치적 자기 확인이 된다.
둘째, 정치에 분노한 사람들에게 이 발언은 감정의 배출구가 된다. "나와 가족의 삶을 망치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막연한 불만을 특정한 적대 대상으로 조직한다. 분노는 흩어져 있을 때 무력감이지만, 대상이 생기면 행동 에너지가 된다. 니콜라스 발렌티노(Nicholas Valentino)는 정치적 분노가 투표와 정치 참여를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셋째, 투표를 시민적 의무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이 발언은 각성의 언어가 된다. 정치학에서 '시민적 의무'는 투표 참여를 설명하는 주요 요인으로 다뤄져 왔다. 투표가 이해득실 계산이 아니라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믿음과 연결될 때, 유권자는 투표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심리적 반발을 일으킬 지점들
다만 같은 말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우선 정치 피로가 큰 유권자에게 이 발언은 독려가 아니라 압박으로 들릴 수 있다. 투표하지 않는 이유가 꼭 무책임해서만은 아니다. 어느 쪽도 믿기 어렵거나, 반복되는 진영 싸움에 질렸거나, 후보 선택 자체에 회의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복잡한 망설임이 '그들 편'으로 정리되는 순간, 유권자는 자신의 내면이 무시됐다고 느낄 수 있다.
중도층이나 무관심층은 도덕적 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심리적 반발 이론(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그 자유를 회복하려는 동기가 생기고 설득 메시지에 저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투표하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투표하지 않으면 나쁜 편"이라는 말은 자유 침해처럼 들릴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같은 말을 시민단체나 일반 정치인이 했을 때와 대통령이 했을 때의 무게는 다르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면서 동시에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공직자다. 공직선거법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또는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대통령 발언의 위법 여부는 법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대통령의 말이 일반 정치 구호보다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표현 강도는 더 신중해야 한다.
▲ 이 대통령의 발언은 효과적이지만 위험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면 강력하다. 기권을 중립이 아닌 동조로 재프레이밍했고, 투표를 도덕적 책임으로 격상했으며, '우리'와 '그들'을 나눴고, 손실과 공포를 호출했다. 선거 막판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투표장을 향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언어다.
다만 민주주의의 언어로 보면 위험한 점도 있다. 투표 독려는 시민을 깨울 수 있다. 하지만 투표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빨리 판정하면, 독려는 압박이 된다. 책임을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참을 곧바로 '그들 편'으로 부르면 책임은 낙인이 된다. '구태 기득권자들'이라는 표현이 더해지는 순간, 공적 호소는 진영 선택의 언어로 읽힐 수 있다.
투표는 중요하다. 기권도 결과를 만든다. 침묵도 정치적 효과를 갖는다. 이 대통령의 말이 전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 해서 늘 좋은 말은 아니다. 대통령의 말이라면 더 그렇다. 시민을 투표장으로 부르는 언어는 강할 수 있다.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의 망설임까지 적의 편으로 몰아넣는 순간, 그 언어는 참여를 요청하는 말에서 정체성을 심문하는 말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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