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美·中 분담금 미납에 '파산 위기'…8월 현금 고갈 우려

  • 美, 42억달러 체납…중국도 4억달러 미납

  • 전문가 "美는 분담금 미납, 中은 납부 시스템 악용"

유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중국의 분담금 미납 및 지급 지연이 맞물리며 유엔이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엔 기본 재정의 42%를 분담하는 미국과 중국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분담금 납부를 미루면서 유엔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이 "파산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 조직의 재정 붕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유엔은 8월 중순 현금이 바닥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절차가 본격화되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미국은 현재 42억8400만 달러(약 6조4000억원)를 체납 중이다. 정규 예산 체납액은 20억3700만 달러, 평화유지 예산 체납액은 22억4700만 달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을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규정하고, 고강도 구조조정이 이행돼야 체납액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추가 인력 감축, 비즈니스석 출장 축소, 기계 번역 활용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 규정상 회원국의 체납액이 직전 2년 치 분담금을 넘어서면 총회 투표권이 박탈된다. 체납이 이어질 경우 미국은 이르면 2027년 투표권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에 이어 유엔 2위 기여국이 된 중국도 재정난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최근 왕이 외교부장의 유엔 방문 기간 평화유지 비용으로 8억44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를 납부했지만, 여전히 4억5500만 달러(약 6900억원)를 체납 중이다.

WSJ은 중국이 대외적으로는 '사실상 유엔 최대 재정 기여국'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분담금 지급을 늦춰 유엔의 재정난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과거 매년 초 수개월 안에 분담금을 완납했지만, 2022년부터는 최종 납부 시기를 회계연도 말로 미루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중의 분담금 체납과 지급 지연을 자국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유엔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조디 해넘 유엔재단 선임 이사는 "미국은 마땅히 내야 할 세금(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고, 중국은 지난 몇 년간 결제 시스템을 악용해왔다"고 말했다.

WSJ은 중국이 개발도상국 연합체인 77개국그룹(G77)과의 연대를 활용해 유엔 예산 논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중국이 유엔 인도주의 프로그램에는 최소한의 자금만 지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의 독특한 회계 규정도 재정난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엔은 연말까지 쓰지 않은 자금을 회원국들이 내야 할 분담금 기준에 따라 환급 신용으로 돌려준다. 문제는 실제 납부되지 않은 분담금도 장부상 미사용 예산으로 처리돼 환급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에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현금 2억9900만 달러가 환급 신용으로 잡혔다. 내년에는 이 규모가 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 회원국들에 보낸 서한에서 "존재하지 않는 현금을 돌려주라고 요구받는 카프카식 순환에 갇혀 있다"며 관련 규정 개편을 촉구한 바 있다.

유엔은 재정난에 대응해 대규모 긴축에 나섰다. 사무국 직원 3000명을 감원하고 통역 시간을 줄였으며, 뉴욕 본부 건물 유지·보수도 연기하고 있다.

또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철수 시기를 앞당기고 평화유지 예산을 삭감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등 평화유지군에 병력을 파견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비용 상환도 미뤄지고 있다.

유엔 내부에서는 자금 고갈이 현실화할 경우 직원 급여 지급이 중단되고 식량 및 안보 프로그램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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