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협정인 '아브라함 협정' 참여를 압박하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26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더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종전 담판과 맞물려 지난 23일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중동국 정상들과의 전화회의에서 아브라함 협정 참여를 제안했다.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는 이 요구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빈 살만 왕세자가 이번 통화로 더욱 "격분"했다고 전하며 "(트럼프에게) '노'(NO)라고 100번이나 말했고, 앞으로 또 100번을 더 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당시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한 일련의 협정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사우디 등 다른 중동 국가로 협정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왔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11월 방미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아브라함 협정 참여를 요청받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타임스는 이번 통화가 빈 살만 왕세자에게 좌절감을 안겼다고 전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압박에는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있다. 중동 국가들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유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중동 내 영향력이 큰 사우디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전제로 한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아브라함 협정 참여의 우선 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앞서 사우디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미국과의 방위 조약을 대가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검토하며 한때 합의에 근접한 바 있다. 그러나 사우디와 미국 당국자들은 당시 협상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확약 거부로 결렬됐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사우디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며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가는 길에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한데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자 전쟁과 이란 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에 대한 사우디 내 여론이 악화한 점도 사우디의 입장을 더 강경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더타임스는 특히 이란 전쟁이 이란을 중동 지역의 위협으로 재확인시켰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역시 미국을 분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일조한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짚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국장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사우디를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이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완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요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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