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20여년만에 '차화정' 넘어선 AI·반도체·증시 삼각동맹

  • 원천 기술 자립·자본시장 체질 개선으로 '퍼스트 무버' 도약해야

26일 하나은행 직원들이 코스피 8000포인트 돌파 기념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하나은행 직원들이 코스피 8000포인트 돌파 기념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에서 201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차화정은 한국 경제의 외연을 넓히고 수출 강국의 위상을 다지며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산업 지형은 새롭게 재편됐다.

이제 우리 경제와 사회를 관통하는 새로운 화두로 인공지능(AI), 반도체, 그리고 증시가 부상하고 있다. 과거 차화정이 양적 성장의 주역이었다면, AI·반도체·증시로 이어지는 '삼각동맹'은 대한민국 경제가 새로운 질적 성장이자 구조적 도약을 이룰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AI 패권을 쥐기 위해 전방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무자비한 자본 경쟁은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반도체의 폭발적인 수요를 낳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거시경제의 든든한 완충 장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이유다.

AI 경쟁에서 촉발되어 반도체 공급으로 이어진 이 거대한 움직임은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재평가로 연결되고 있다. AI라는 기술의 진보가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부르고, 오랜 시간 준비했던 산업의 결실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드는 선순환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성과에 도취해 안주할 여유는 없다. 글로벌 시장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주목하는 까닭은 AI라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기 전,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끊임없는 혁신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면 여전히 AI 파운데이션 모델, 소프트웨어 생태계, 시스템반도체 설계, 극나노 반도체 공정 장비 기술 등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과거 수많은 산업 성장 사례에서 학습했듯이, 원천 기술의 자립 없는 하드웨어 공급망 역할은 글로벌 경기 사이클이나 공급망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과거 차화정 시대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어 공급하는 것'으로 승부했다면, 지금의 혁신은 독자적인 생태계를 스스로 구축해 나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산업적 혁신이 깊게 뿌리를 내리려면 이를 뒷받침할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과 지속적인 활황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최근의 증시 상승세가 단발성 이벤트나 투기적 바람에 그친다면, 미래 성장을 위한 동력은 금세 고갈될 것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증시 선진화 정책을 더 과감하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 시장의 투명성과 매력도를 근본적으로 높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 증시가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거듭날 때, 전 세계의 '스마트 머니'가 한국 시장으로 모여들 것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해외 자본의 유입은 우리 기업들이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고위험·고수익의 미래 원천 기술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금융시장의 안정이 산업의 장기 혁신을 유도하고, 그 혁신이 다시 주주 가치 제고로 이어지는 단단한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국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20여 년 만에 찾아온 초격차 성장의 기로에 서 있다. 정부는 규제 혁신과 인프라 지원으로 판을 깔아주고,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독보적인 기술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 AI, 반도체, 증시의 삼각동맹을 성공적으로 결속해 낼 때, 우리 경제는 더 이상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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