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사과문 발표와 대표 해임에도 불매 움직임이 이어지자 그룹 총수가 직접 고개를 숙인 것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 시리즈' 텀블러 판매 행사를 진행했다. 홍보물에는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였다. '탱크'는 1980년 광주 당시 계엄군의 진압 장면을, '책상에 탁!'은 1987년 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허위 발표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스타벅스코리아는 행사를 중단하고 사과했다.
신세계 측에 따르면 이번 마케팅은 스타벅스코리아 이커머스팀 제안으로 시작됐고, 팀장과 담당 본부장, 대표이사 보고 라인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신세계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포렌식, 교차 조사, 저장장치 회수 등을 통해 경위를 확인했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사전 모의나 고의성을 입증할 정황은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먼저 고의였을 가능성을 가정해보자. 이 경우 핵심 심리는 '은밀한 조롱의 쾌감'일 수 있다. 공개적으로는 브랜드 홍보 문구처럼 보이지만, 특정 맥락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처럼 배치하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우연과 말장난의 외피를 쓰지만, 안쪽에서는 "알 사람은 안다"는 식의 내부자적 우월감을 얻는다.
이런 심리에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 작동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사람들이 해로운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기 위해 책임을 축소하거나 결과를 가볍게 해석한다고 봤다. 만약 담당자가 역사적 상처를 알면서도 해당 문구를 배치했다면, 그는 "이 정도는 농담",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은 모를 것"이라는 식으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반사회적 장난의 심리다. 모두가 엄숙하게 여기는 주제를 일부러 건드려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때 목적은 설득이 아니라 자극이다.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를 시험하는 쾌감이다. 만약 고의였다면 이 사건은 단순 마케팅 실패가 아니라 역사적 고통을 장난감처럼 다룬 행위가 된다.
신세계 측은 현재까지 고의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를 봐야 한다. 이 경우엔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무서울 수 있다. 악의가 없었는데도 이런 문구가 나왔다면, 개인의 일탈보다 조직의 무감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 측은 관련 직원들이 기존 텀블러 홍보 문구였던 '가방에 쏙'과 운율을 맞추는 과정에서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만들었고, 생성형 AI 등을 참고했을 뿐 5·18과의 연관성은 인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담당자는 역사적 의미보다 문구의 리듬과 온라인 프로모션의 효율에 시선이 쏠려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케팅에서는 짧고, 튀고, 기억에 남는 문구가 선호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의미보단 소리와 감각으로 먼저 인식될 수 있다. '가방에 쏙'에 맞춰 '책상에 탁'을 떠올리는 것도 그런 운율 맞추기에 갇힌 사고였을 수 있다. 하지만 날짜, 상품명, 사회적 맥락이 결합하면 그 문구는 가벼운 말장난이 아니게 된다.
여기에는 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가 작동했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집중한 목표 밖의 정보를 쉽게 놓친다. 담당자가 "운율이 맞는가", "상품 특성이 드러나는가", "행사 문구로 눈에 띄는가"에만 집중했다면 5월 18일과 탱크, 책상이라는 단어가 만드는 역사적 연상은 시야 밖으로 밀려났을 수 있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도 고려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이 문구가 처음부터 '텀블러 프로모션'이라는 틀 안에서 검토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번 '상품 홍보물'이라는 프레임이 잡히면, 이후 사람들은 그 안에서만 문구를 읽는다. 외부에서는 "5·18에 탱크와 책상에 탁이 왜 함께 있느냐"가 먼저 보이지만, 내부자는 '탱크 텀블러 행사 문구'로만 본다. 같은 문장을 봐도 어떤 틀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보이는 것이다.
검수 과정에서는 책임 분산과 이의 제기 부재도 의심해볼 수 있다. 보고 라인이 많다고 해서 검수가 촘촘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각 단계의 담당자가 "앞에서 봤겠지", "윗선에서 판단하겠지", "내 부분만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전체 의미를 보는 사람은 사라진다. 조직 안에서는 승인자가 많을수록 책임이 희석되기도 한다.
집단 안에서 반대 의견이 쉽게 나오지 않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회의나 보고 과정에서 누군가 불편함을 느꼈더라도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닐까", "이미 방향이 정해졌는데 굳이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면 검수는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도 몰랐다는 것을 넘어, 누군가 알았더라도 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생성형 AI를 참고했다는 설명도 살펴봐야 한다. AI는 문구를 빠르게 제안할 수 있지만,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감수성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사용자가 '운율 맞는 짧은 문구'를 요구했다면 AI는 의미의 무게보다 언어적 유사성을 우선해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AI가 문구를 만들었든 참고됐든, 책임은 이를 채택하고 통과시킨 인간 조직에 남는다.
논란 직후 일부 임직원이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신세계 측 설명도 눈여겨볼 만하다. 홍보물이 나간 뒤에도 일부 구성원이 이를 온라인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였다면, 조직의 감수성 결핍은 제작 단계뿐 아니라 사후 대응 단계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고의 여부는 단정할 수 없다. 신세계 측은 일부 이커머스팀 직원 3명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했고, 사내 메신저 대화 기록이 서버에 1주일만 저장돼 초기 기획 단계의 대화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힌 상태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 놓여 있다. 고의였다면 역사적 고통을 은밀한 조롱의 소재로 삼은 것이고, 고의가 아니었다면 무지와 절차적 둔감함을 드러낸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스타벅스에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 문구를 만들었는가'보다 '왜 아무도 이 문구를 멈추지 못했는가'다. 마케팅은 눈에 띄는 문구를 만드는 일이지만, 어떤 말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선을 아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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