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이두희 국방부 차관, 일본의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사무차관, 가노 고지 방위심의관이 참석한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이는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 한일 관계의 중심축이 경제 협력을 넘어 안보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는 경제 분야에서 빠르게 복원됐다. 반도체 공급망 협력, 첨단 산업 분야 교류, 투자 확대 등 실질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양국은 다시 협력의 기반을 다져왔다. 경제는 언제나 현실을 가장 먼저 반영하는 영역이다. 이해가 맞으면 협력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지금 나타나는 안보 협력 강화 흐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고, 그 변화가 양국의 생존 조건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안보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질적으로 고도화됐고, 지역 내 군사적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이 겹치며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라는 점에서 이러한 불안정성은 곧 경제 문제로 직결된다. 안보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는 구조로 들어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협력은 단순한 외교 선택이 아니다.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해상 교통로 안전 확보, 위기 상황 정보 공유, 비상 대응 체계 구축은 어느 한 나라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서의 불안정성은 양국 모두에게 동일한 위험을 안겨준다. 협력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곧 리스크를 줄이는 길이다.
북한 문제 역시 양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핵과 미사일 위협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보 체계, 탐지 능력, 대응 시스템 등에서의 협력은 실질적 안보 능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미일 협력 구조 속에서 한일 간 공조가 강화될수록 전체 대응 체계는 더욱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안보 협력은 경제 협력과도 연결된다. 공급망 안정성은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전략 산업에서의 협력은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능력을 좌우한다. 경제와 안보는 이제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구조로 결합되고 있다.
물론 협력의 방식과 범위는 신중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수준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해가 일치하는 분야부터 협력을 강화하고, 부담이 큰 사안은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협력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지속 가능성이다.
또한 협력은 명확한 기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익과 직결된 분야를 중심으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하며, 상호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가 유지돼야 한다. 일방적인 부담이나 정치적 논란을 키우는 방식은 오히려 협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국제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협력의 범위를 넓히지 않으면 대응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한일 관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경제에서 시작된 협력이 안보로 이어지고, 다시 산업과 기술 협력으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협력의 틀을 재정비할 때, 한일 관계는 단순한 양자 관계를 넘어 지역 안정과 공동 번영을 이끄는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경제에 이어 안보까지 이어지는 협력의 확장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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