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아이의 날,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황금연휴를 실력 연휴로 바꾸는 마법." 

2026년 어린이날, 한 학원의 홍보 문구다. 아이를 위한 날인데, 카피 속 수혜자는 학부모다. 더 정확히는, 불안이다. 

올해 어린이날 학원가 풍경은 낯설지 않다. 특강을 홍보하는 학원들은 "학습 지속성을 유지하고 학부모님의 휴식 시간을 확보해 드린다"고 덧붙였다. 아이의 날이지만, 아이는 문장의 주어가 아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조사에서 10명 중 4명의 아이가 방과 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친구들과 놀기"를 꼽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아이는 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학원으로 갔다.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학원과 과외를 자유로운 놀이의 가장 큰 장벽으로 지목했다. 아이들은 놀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허락되지 않는다. 

그 시간은 고스란히 공부로 채워진다. 초등 고학년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하루 평균 2시간 47분을 더 공부한다. 중학생은 3시간 12분, 고등학생은 3시간 33분. 학교 밖 학습 시간까지 합산하면 하루 총 학습량은 OECD 평균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더 오래 공부한다고 더 잘하는 것도 아니다. 2022년 PISA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은 일본보다 훨씬 오래 공부하고도 읽기, 수학, 과학 모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유니세프 조사에서 한국 아동의 정신건강 순위는 OECD·EU 36개국 중 34위, 신체 건강은 40개국 중 28위다. 반면 학업 역량은 4위다. 이 간극이 지금 한국 아이들의 초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가장 지쳐 있는 아이들. 아동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45.3점이다. 절반에도 못 미친다.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다. 초등 고학년의 절반이 방과 후 스마트기기를 두 시간 이상 사용한다. 10명 중 4명은 스스로 멈추기 어렵다고 답했다. 혼자 있는 아이일수록 수치는 높아진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뛰어놀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 돌봄이 빠진 자리에, 알고리즘이 들어선 것이다. 

예전 골목에는 목적 없는 시간이 있었다. 해 질 때까지 이유 없이 뛰어다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그냥 웃던 시간. 쓸모없어 보이지만, 실은 아이의 감정과 상상력과 회복력이 자라는 토양이었다. 아이는 빈틈 없이 채워진 스케줄 속에서 크지 않는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자란다. 놀이는 사치가 아니라 성장 그 자체다. 

부모를 탓하기는 어렵다. 어린이날에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한 어머니는 말한다. "나중에 보충 강의가 잡힐 바에는 그냥 학원 가는 게 낫다." 이 문장 안에는 욕심이 아니라 구조적 공포가 있다. 혼자 쉬면 뒤처진다는 두려움, 남들이 다 가니까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압박. 학원 산업은 그 불안 위에서 정교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그 불안이 집단화될 때 어린이날은 조용히 소멸한다. 쉬라고 만든 날이, 아무도 쉬지 못하는 날이 된다. 

1923년 방정환은 어린이날 선언문에서 이렇게 썼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 주시오." 

103년이 지난 지금, 이 문장들은 당부가 아니라 고발처럼 읽힌다.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잘 버티는 법"을 먼저 가르쳐왔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일찍. 그러나 올려다본다는 것은 아이를 경쟁의 단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존재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나라가, 정작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것은 하루의 휴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이다. 
초등학교가 대부분 임시공휴일로 정해진 지난 4일 한 어린이가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2026 54 AJP 유나현
초등학교가 대부분 임시공휴일로 정해진 지난 4일 한 어린이가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2026. 5.4. (AJP 유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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